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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출판, 공연, 전시 기획까지 '문화 사업가' 윤학 변호사

"세상을 보는 시선을 조금만 더 키우자고 말해주고 싶어요"

미국변호사
지난달 16일 서초동 복합문화 공연장 화이트홀에서 만난 윤학 변호사(55·사법연수원 15기)는 마침 갤러리를 찾아온 수녀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이 사과 그림에서 진짜 사과 향기가 나는 것 같지 않아요?" 화이트홀 1층 갤러리에 걸린 사과 그림 앞에서 사뭇 진지한 얼굴로 묻는 그에게 정말 향기가 난다고 답하자 "그림은 보기만 해서는 제대로 느낄 수 없어요. 사과 향기를 느꼈다면 감성 지수가 높은 겁니다"라고 말하며 소년처럼 웃었다. 출판 사업과 변호사 업을 병행하던 그가 2007년에 서초동 법조 타운 한복판에 화이트홀을 차려 문화 공연 사업가로 변신한 지도 벌써 5년째. 30년간 사과 그림을 그려온 화가 이광복의 '그리움 사과 이야기'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갤러리에서 그를 만나 삶의 철학과 인생 목표에 대해 들어봤다.

윤학 변호사는 하는 일이 많다. 달마다 발행하는 가톨릭 다이제스트에 직접 글을 쓰고 인터뷰도 한다. 공연 기획부터 전시, 강연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다. 할 말도 많은 사람이다. 묻기도 전에 얘기가 술술 이어졌다.


"답답해요. 사람들에게 어서 알려주고 싶어요. 남들과 다른 방법으로도 잘 살 수 있다고요, 세상을 보는 시선을 조금만 키워보자고, 논리의 세계만이 아니라 감성의 세계, 영혼의 세계에 대한 눈을 키우자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는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게 많아서 조바심이 나 있었다.

"삼풍아파트 앞을 지나다가 한 아주머니와 자동차 접촉 사고가 난 적이 있습니다. 분명 아주머니 잘못인데 사과는 안 하고 잘못한 것이 없다며 우기더라고요. 함께 차에서 내린 아들로 보이는 젊은 남학생도 아주머니 편만 들고요. 겨우 수습하고서 뒷좌석에 딸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해 보니 겁이 나더군요. 내 딸이 저런 남자 만날까 봐요. 내 딸만 잘 키운다고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는 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바쁜 변호사 일을 하면서도 덥석 가톨릭 다이제스트를 맡겠다고 나섰다. 인수 당시 독자가 500명뿐인 다 쓰러져가는 잡지사를 운영하느라 한 달에 손해가 1000여만원씩 났고 직접 홍보까지 하느라 전국을 돌아다녀야 했다. 마감 때마다 밤을 새우고 해 뜨는 걸 보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그날들을 '힘들어야 당연한데 이상하게 기쁘고 행복했던 날들'이라고 회고했다.

"변호사 일은 오히려 쉬웠죠. 논리라는 것은 어찌 보면 정해진 길이 있어요.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글의 세계는 저에겐 큰 도전이었죠. 여러 번 써보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어려웠지만, 재미가 있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 독자의 느낌, 이런 걸 생각하면 법률 일 할 때보다 훨씬 기뻐요. 지금도 매번 두근거립니다."

내친김에 공연에도 손을 뻗었다. 320석 규모로 시작한 공연장이 잘 돼, 지금은 인근에 새 공연장을 짓고 있다.

"어느 날 대학로에 가서 유명한 공연을 아내와 함께 봤는데, 이념적이고 한쪽으로 치우쳐 있더라고요. 제가 보기엔 아쉬운 부분이 많았는데 많은 사람이 그걸 좋다고 칭찬하는 걸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집사람에게 공연장을 운영하겠다고 했죠."

그가 처음부터 문화 사업가가 되기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사법시험 볼 때는 정치도 해보고 싶고 대법원장도 해보고 싶었어요. 막연히 출세하고 싶은 마음이었죠. 그런데 고시공부를 하다가 어떤 책에서 '경쟁의 가치'와 '비경쟁의 가치'의 차이를 알게 됐습니다. 경쟁의 가치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죠. 대법원장은 내가 되지 않아도 누군가는 차지할 자리거든요. 그러나 비경쟁의 가치, 그러니까 사랑 같은 건 무한합니다. 나도 가지고 다른 사람들도 가질 수 있는 거죠. 베토벤이 나온다고 모차르트가 안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자리가 무한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공부가 재밌고 써먹을 길이 보이더군요. 글을 쓰는 것도 비경쟁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 중의 하나지요. 글을 많이 쓰고 있는데 아직도 쓸 게 많아요"

항간에서는 그에 대해 잘 나가는 변호사를 접고 문화 사업가로 나선 사람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자신은 변호사 일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변호사 일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음악과 미술이나 법은 매한가지입니다. 작곡가가 만든 음악을 연주가가 해석하듯이 입법가가 만든 법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법률가입니다. 제대로 된 법해석은 제대로 된 법의식에서 나오고 법의식은 상식을 뛰어넘는 영적인 접근에서 생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법률 지식만 많아서는 그게 불가능하지요. 지식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식 위에 감정적 사고와 창의적인 사고를 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송무만 하는 건 송무 변호사지만, 균형을 맞추고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가는 것, 정의와 사랑을 실현하는 것. 이런 게 오히려 진정한 의미에서 변호사의 일이 아닌가요?"

그는 2005년 출간한 에세이 '잃어버린 신발 열 켤레'를 뮤지컬로 만드는 준비를 하고 있다. 또 가톨릭 다이제스트의 영어판을 준비하느라 미국을 자주 오간다. 자랑처럼 차곡차곡 쌓아놓은 계획을 들려주는 그에게 바빠서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자 "믿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할 일이 많아서 신이 나고 설렌다"고 했다.

"책 내고 공연하니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더군요. 화이트홀만 해도 그렇습니다. 처음엔 자동차 전시장이었죠. 1층이 갤러리가 되고 밖에 그림이 걸리니, 사람들이 지나가며 조금씩 그림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오고 가는 사람이 많으니 작아도 힘찬 물결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물결을 만들어 나가는 일에 인생을 바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그의 다짐처럼 빌딩과 출판사 이름을 흰물결이라고 짓고 화이트홀을 운영하게 되면서 자신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후배 법조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묻자, "법조인들은 튼튼한 논리적 사고를 해요. 지식이 있으니 감정적 사고와 영적인 사고도 단단하게 올릴 수 있죠. 법학으로 현실을 경험하고 거기에 창의적인 부분을 접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우월한 점이 있는데 문화·예술에 좀 더 많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아쉽습니다. 시험에서 백 점 맞는다고 법문화가 발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백 점 맞은 사람이 영적이고 정서적인 면을 충족시켜 나간다면 백 점을 활용할 수 있는 곳은 무한해질 수 있습니다. 비경쟁의 넓은 세계를 마음껏 유영하고 싶습니다. 그런 세계를 같이 할 사람들이 법조인 중에 더 늘어나길 바랍니다"고 강조했다.

딸 걱정에 시작한 가톨릭 다이제스트가 지금은 7만 명의 고정 독자층을 가진 잡지가 됐다. 초대장도 뿌리지 않는 공연이 매진 행렬이고, 8월 강연이 벌써 마감돼 대기자만 수십명이다. 잘 나가는 덕에 시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부동산 투기를 했다더라, 물려받은 유산이 많았다더라는 등 사실과 다른 소문 속에서 그는 성공의  비결로 '사랑'을 꼽았다.

"사랑하면 지혜가 생깁니다. 지혜가 생기니까 일을 하게 되더군요. 사람들이 글과 공연으로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고민하니까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연주자를 선정할 때도 무대에 서는 것 자체를 사랑하는 음악가를 섭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깁니다. 그저 형식적인 공연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해요."

<글=홍세미 기자, 사진=홍세미·좌영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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