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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로펌에 휴머니즘을 심는다, 윤재윤 '세종' 대표 변호사

법관 30년의 화두는 '인간은 정말 어떤 존재인가'

지난 2월 윤재윤 춘천지방법원장은 30년간의 법관 생활을 접고 법무법인 세종 대표 변호사로 새롭게 출발했다. 인문학자가 꿈이었다는 윤 대표는 인간에 대한 깊어지는 관심이 변신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는 법무법인 세종을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따뜻한 로펌으로 만드는 것이 새로운 꿈이라고 말한다. "신임 대표로서 시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로펌이 되는데 일조 할 것입니다. 아울러 세종만의 독특한 휴머니즘 문화를 일구겠습니다." 그의 '인생 2막'을 들어봤다.

"한창 고시공부를 해야할 때 피의자가 돼 도피생활을 했으니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거리의 지게꾼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다행히 나중에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를 받았지만 사법연수원 수료 후 임관할 때도 이 사건이 문제가 될까봐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지난달 23일 서울 명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윤재윤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59·사법연수원 11기)는 처음으로 꺼내는 이야기라며 입을 열었다. 윤 대표가 대학교 4학년 때 동업자의 배신으로 사업이 부도나면서 부친이 구속되고, 부친을 돕던 윤 대표도 공범으로 몰려 피의자 신분이 됐다고 한다. 1년 간 도피생활을 하면서 폐결핵이라는 중병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윤 대표는 당시의 고난을 인생의 소중한 경험으로 받아들였다. "그때의 어려움들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재판을 받는다는 것을 생생하게 체험했기 때문에 판사 업무를 진지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죠. 삶의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 특히 피고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윤 대표는 늘 '고통도 자산이다'고 말한다. 그의 수필집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 중 한 구절을 들려줬다. "고통은 우리를 멈춰 세워 우리로 하여금 다른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초월의 소리이다. 고통은 현금이 아닌 금괴와 같아서 당장은 사용할 수 없고 쓸모없어 보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사람의 영혼을 진정으로 부유하게 하는 보물이다."

그런 경험들 때문일까. 윤 대표는 냉철한 법률가의 이미지보다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인문학자의 이미지가 더 어울린다. "법대 보다 사회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어요. 아버님의 소원을 거스를 용기가 없어서 법대에 진학했지만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이 법관 생활의 화두가 됐습니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인본주의적인 사고로 이어졌다. 그에게는 형사피고인도 존중받아야하는 사람이었고, 재판은 항상 조심스럽고 어려운 것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한다는 일'이 주는 중압감에서는 언제나 자유로울 수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고, 인식과 판단 능력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40대 이전까지는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은 마땅히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재판을 하면서 나무라기도 했지요. 하지만 50대에 이르러서는 그들이 단순히 범죄자이기 전에 사회적인 환경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어요. 인간이 인간을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인지를 깨닫게 되면서 날이 갈수록 재판하는 것이 힘들어졌죠. 30년간 법관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결론은 인간은 누구나 존귀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이런 신념은 구체적인 재판 절차에서 개선 방안을 찾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윤 대표가 강조하고 있는 '치유(治癒)적 사법'이 그것이다. "2000년 초반 우연히 '치유적 사법'에 대한 미국의 논문을 읽고 '드디어 만났구나'하는 감동을 느꼈어요. 당장 아마존에서 관련 서적을 구해서 읽었지요. 재판 절차는 당사자에게 치유적 효과를 주거나, 아니면 반 치유적 효과를 줍니다. 재판 과정에서 재판장의 말 한마디와 표정이 당사자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재판의 신뢰를 결정짓습니다. 재판 절차에서 당사자의 상처와 분노를 조금이라도 줄여주는 치유적 태도가 필요합니다."

윤 대표는 아무리 중한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이라도 인간적인 면이 있으며, 법조인들은 이를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범행을 할 때 공범을 말린 흔적이 있다면 그것도 귀한 것이라고 봅니다. 형을 선고하는 과정에서도 비난하는 차가운 표정으로 하는 것과, 피고인의 장점을 찾아보고, 희망을 얘기해주는 것은 상당히 차이가 날 것입니다."

윤 대표는 '치유적 사법'을 모든 법조 영역에서 실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판사나 검사 뿐 아니라 변호사들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당사자들은 법관이나 검사와 달리 변호사들에게는 거리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변호사들이야말로 '치유적 사법' 운동을 추진해갈 수 있는 핵심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치유적 사법의 실천을 개개의 법관 수준에서 머물도록 할 것이 아니라 사법시스템에 제도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윤대표는 1984년 서울가정법원 판사 시절에 자신이 창안한 '소년자원보호자제도'에 대해 큰 보람을 느낀다. "본드를 흡입하고 물건을 훔친 소년이었어요. 80세가 넘은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아이였는데, 이 아이를 소년원으로 보내자니 혼자 계실 할머니가 걱정스러웠고, 그렇다고 다시 집으로 보내자니 재범의 위험성이 너무 컸죠. 그래서 당시 '십대들의 쪽지'라는 잡지를 발행한 고(故) 김형모씨에게 이 아이를 맡겼죠. 결과가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친한 변호사, 같은 교회 신도들에게 아이들을 맡겼고, 이후 이를 제도화해서 소년자원보호자제도를 도입한 거죠. 처음 모집한 자원보호자만 200명이었습니다." 윤 대표의 첫 '치유적 사법'이었던 셈이다.

윤 대표는 법관으로서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건설 전문재판부 재판장을 지내면서 저술한 '건설분쟁관계법'이 건설소송 분야의 필독서가 됐고, 10여년 간 신문과 잡지에 연재한 칼럼들을 모아 수필집도 출간했다. 2006년에는 언론중재사례를 다룬 '언론분쟁과 법'으로 철우언론법상을 받기도 했다.

법조계 대변혁의 시기, 그는 후배들에게 법조인의 사회적 가치를 잊지 말고 항상 겸손하고 여유를 가지라고 부탁한다. "법조인은 유머가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유머의 어원은 겸손과 여유, 자기 초월이라고 합니다. 유머는 자신에 대해서 웃는 것이에요. 자기를 넘는 것이죠. 겸손하고 따스해야 합니다. 자신과 타인에 대해서 여유를 가지고 무엇이든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 막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서울 출생 △경기고·서울법대 △사시 21회(연수원 11기) △서울가정법원 판사 △서울민사지법 판사 △마산지법 거창지원장 △서울고법 판사 △법원행정처 조사심의관 △인천지법 부장판사 △서울지법 남부지원 부장판사 △서울지법 부장판사 △부산고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춘천지방법원장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글=임순현 기자, 사진=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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