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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라운지] '공익단체'로 체제 재정비 여성변호사회 박보영 회장

"여성변호사회, 친목단체에서 공익단체로 변화해야"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지난 92년 발족해 120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는 거대한 변호사 단체다. 법정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나 서울지방변호사회를 제외하면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여성변호사회는 그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여성 변호사들의 친목단체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최근 여성변호사회가 서서히 탈바꿈하고 있다. 법조계 내의 압력단체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올해 1월 회장에 취임한 박보영 변호사가 있다.

지난달 29일 서초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박보영(51·사법연수원 16기) 변호사는 차분하고 조용한 말씨, 다소곳한 몸가짐으로 첫 인상이 무척 여성스러웠지만,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당차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친목단체의 성격을 탈색하고 법조계의 공익단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체계를 정비하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었다. "과거 여성법조인회가 있었는데, 1992년 여성변호사회로 분리되면서 정식 발족한 지 20년 가까이 됐어요. 하지만 한국여자의사회에 비하면 역사나 규모가 뒤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는 회장 취임 후 임시총회를 열어 여성변호사회의 정관을 바꾸었다. 그동안 선배들이 차례대로 회장을 맡아오던 방식에서 이사회가 회장을 추대하고 총회가 이를 인준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또 여성변호사회 사업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 총무와 재무 등 10개 분야에 이사를 두고 매월 이사회를 열게 했다. 최근에는 여성변호사회를 사단법인으로 만드는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조직화가 돼 있어야 사업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고, 후원금에 대한 세금처리도 가능하기 때문에 회원들의 회비와 외부 지원을 받기가 용이합니다."

박 변호사는 조직정비가 어느 정도 끝나면 공익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설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사업은 성폭력피해여성과 다문화가정에 대한 지원이다. 여성 재소자 등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열악한 환경에 있는 여성들도 보듬어 안아야 할 대상이다.

◇ 여성법조인 '육아'에 발목, "사회가 재평가하고 책임져 줘야"= 그는 법조계에서 여성 법조인들의 고위직 진출이 더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이 되기에) 적당한 연령의 여성 법조인의 수가 적다는 건 인정하지만, 여성의 목소리가 대변돼야 한다는 의미에서 고위직에 여성 법조인의 정원이 반드시 확보돼야 합니다. 인적자원이 부족하다는 말씀이 있는데, 한정된 자원이라도 잘 활용해 주길 바래요. 조경란 서울고법 부장판사 같은 분은 남다른 재판능력을 갖추고 있어 대법관에 적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변호사회는 지난 3월 "법조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여성법조인의 고위직 진출을 장려하라"고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박 변호사는 그동안 여성들이 법조계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이유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육아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육아에 시간을 빼앗겨 경력이 단절되고 주춤하는 사이 남성들은 연구하고 책을 쓰고 업적을 쌓습니다. 초임 때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던 여성판사도 한참 아이 키울 때는 '정신이 어디에 가 있느냐?'는 핀잔을 받을 정도입니다. 사회가 육아에 대해 다시 평가하고 책임져줘야 합니다."



◇ 자녀 셋 모두 대안학교 진학=
자녀 육아를 어떻게 했냐고 물었더니, "저는 좋은 엄마가 못 됩니다"라는 대답이 대뜸 돌아왔다. 그도 이 땅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여느 여성처럼 자녀에 대한 미안함, 부채 의식을 갖고 있는 듯 했다. 그는 세 자녀를 모두 대안학교에 입학시켰다. "제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애들한테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고, 그렇다고 방임할 수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인품이 훌륭하신 대안학교 설립자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어 그 학교에 진학시켰어요." 이같은 결정에는 유년 시절 경험이 한 몫 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그는 평범한 학생이었으나, 4학년 때 좋은 선생님을 만난 뒤 공부가 재미있고 학교생활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고 했다. 또 버스회사를 운영하는 비교적 여유로운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공부 욕심에 고향인 전남 순천을 떠나 전주여고에 입학했는데, 처음 6개월 동안은 객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남몰래 운 기억도 많다고 했다.

"애들은 잠시 빗나가더라도 다시 돌아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애가 방황하면 차후 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업을 가질 때 장애요인이 될까봐 멀리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애들도 공부나 행동으로 부모를 어렵게 한 적도 있지만, 통과의례라고 생각하고 멀리 보는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 국내에서 손꼽히는 가사사건 전문가= 박 변호사는 배석판사 시절과 단독판사 시절, 부장판사 시절 이렇게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서울가정법원에서 근무해 가사소송 전문가로 손꼽힌다. 98년 서울가정법원 단독시절 '재산분할 실태조사' 논문을 통해, 나이가 많은 전업주부도 재산분할 비율이 30~40%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통계로 밝혀 이후 전업주부의 재산분할 비율을 50%까지 확대하도록 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는 법관을 천직으로 알고 살았지만 2004년 돌연 법원을 떠났다. "초임 부장 근무를 광주에서 마치고 서울가정법원으로 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판단하는 것에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졌어요. 하루에도 몇 십번씩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 무서워진 거죠. 그러던 차에 개인적인 사정이 겹쳐 사표를 냈습니다."

변호사를 개업한 이후에는 보람있는 일이 더 많았다고 했다. "우리에겐 사소한 법률지식이나 문제 해결방식이 생각 밖으로 어떤 사람들에겐 정말 소중한 것이었어요." 주변 사람들은 박 변호사가 사건의뢰인과 교감하면서 심리적으로 안정시켜주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박 변호사는 법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을 이끌어 내 주목을 받았다.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재판장 한숙희 부장판사)가 선고한 '장래에 수령할 퇴직연금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판결이다. 이 판결은 '향후 수령할 퇴직연금은 여명을 확정할 수 없으므로 바로 분할대상 재산에 포함시킬 수 없고, 다만 재산분할 방법에 참작할 수는 있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2002스36)와 배치된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부부가 모두 항소를 하지 않아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면서 대법원 판단을 받지 못하게 된 점은 아쉬워했다. "쌍방이 다 항소를 안 했다는 것은 패소한 남편 측에서도 퇴직연금이 분할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사소송 전문가답게 박 변호사는 현재의 가사 분야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결혼제도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 이혼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아 사회적으로 큰 병폐가 되고 있다"면서 "숙려기간을 두고 상담을 받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이혼제도와 관련해서는 부부가 의무적으로 대화를 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결혼을 앞두고는 오랜 기간 알아가는 과정이 있지만, 이혼할 때는 오늘까지 서로 잘 해주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도망가서 소장 보내고, 재판 진행 중에는 일체 대화를 안 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정폭력이 심각한 경우는 예외로 해야겠지만, 일정한 기간 동안 대화를 의무적으로 하게 해 이를 마친 부부만 이혼을 하게 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합니다."



◇ 이홍훈 전 대법관·이창구 전 대구고법원장 가장 존경= 그에게는 존경하는 법조인이 두 분 있다. 이홍훈 전 대법관과 이창구 전 대구고등법원장이다. "이 전 대법관님은 실력이나 인품이 뛰어나고 뵐 때마다 성인을 뵙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옆에 있으면 모든 면에서 한 단계 상승하는 느낌이 었어요. 항상 상대방을 존중해 주시고 깍듯이 해주시면서 사고를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철학적인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95년 성남지원 근무시절 이 전 대법관이 지원장으로 근무했었다. "당시 지원장님께서 사회적 약자에게 조금의 혜택을 더주는 이른바 '적극적 평등주의'를 말씀하시면서 영장 업무를 빼셨는데 불이익으로 받아들이기는커녕 배려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창구 전 원장과는 서울고법 근무 때 배석으로 근무한 인연이 있다. "이 전 원장님은 정말 우리가 이상으로 삼는 법관형이세요. 실력도 출중하셨지만 재판 하나하나에 대해 너무 좋은 판결을 내리시는거에요. 재판 과정이나 판결 쓰는 과정에 대해 무척 많이 배웠습니다." 박 변호사는 최근 사춘기에 있는 막내아들이 드럼을 사달라고 해 고민하다가 이 전 원장의 조언을 듣고 사줄 정도로 멘토로 따르고 의지하고 있다고 했다.

◇ 차와 108배 즐기며, 주말이면 공연 관람= 박 변호사의 취미는 '차'와 '108배'다. "어렸을 때부터 녹차를 마셔왔어요. 유명한 차들의 산지인 곳에서 자랐으니까요. 혼자 차를 마시면 시간이 정지되는 느낌이에요. 여럿이 대화하며 맛을 느끼면서 마시는 것도 좋지만 혼자 차를 마시는 그 시간이 주는 안도감, 굳이 명상이라 말하긴 뭣하지만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참 좋아요"하며 조용히 미소를 머금는다. 108배는 광주에 근무할 때 강민구 대구지법 부장판사(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108배를 하면서 당뇨를 치료했다며 코트넷에 올린 글을 보고 시작했다. 박 변호사는 매일 저녁 108배를 하고, 명상에 잠긴다. 3년 전 계단에서 넘어져 발목을 다친 이후에는 오체투지(五體投地)를 33배씩 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차와 예술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법조인의 향기를 느끼게 하는 박 변호사와 한참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의 가을 향이 천천히 스며드는 듯 했다.

<글=정성윤 기자·사진=좌영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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