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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홍의 영화이야기

[고석홍의 영화이야기] 히치콕 감독의 최고 걸작, ‘현기증(Vertigo)’

고석홍 부장검사

접할수록 의미와 깊이가 더해지고 새롭게 해석되며 시공을 초월하여 사랑을 받는 작품을 우리는 걸작이라고 한다. 20대 후반 나이에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58년 작품 '현기증(Vertigo)'을 처음 접하고 받은 나의 놀라움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9년 작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을 접할 때에 비견되는 수준이었다. 영화 역사상 10대 걸작으로 선정되어 경외와 이슈의 중심이 되어온 '현기증'을 볼 때마다 '어려운 소재와 내용을 이렇게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하는 느낌이 들었다. 첫 장면부터 끝 장면까지 자신이 원하는 구도와 세세한 사항이 결정되지 않으면 영화 촬영을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히치콕 감독, 그에게 '현기증'은 자신의 여성관을 모두 드러낸 개인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초반 크레디트 장면에서 여인의 눈을 클로즈업 하고 환각을 묘사하는 장면과 주인공 존(James Stewart 분)이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직전 환각에 빠지는 두 번째 장면 모두, 작곡가 버나드 허만(Bernard Herman)의 탁월한 음악을 배경으로 애니메이션化 되어 묘사되는 것을 보면서 히치콕의 천재성을 느낄 수 있다. 건물 지붕위로 함께 범인을 추격하던 경찰이 추락사하는 시작 장면은 그로 인해 퇴직하게 된 경찰관 존이 겪는 트라우마(Trauma), 죄책감, 고소공포증(Acrophobia)의 발생 원인을 간단명료하게 보여주는 표현의 정수이다.

존은 재벌의 사위인 옛날 급우로부터 '자신의 처 마들렌(Kim Novak 분)이 죽은 사람이 빙의한 것처럼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으니 미행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녀를 미행하던 중 그녀의 자태에 매혹되어 사랑에 빠진 존은 그녀의 암시에 이끌려 성당 종탑으로 들어갔으나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그녀를 뒤쫓지 못하고 그녀는 추락사한다. 존의 증언으로 사건은 종결되지만 존은 그 충격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퇴원 후 마들렌과 비슷한 외모의 주디(Kim Novak 분)를 발견하고 존은 그녀를 마들렌처럼 변모시키려는 집착을 보이고 주디가 사랑 때문에 그 요구를 수용하면서 존에게 비극이 반복된다.

고소공포증, 죄책감, 인과응보, 우정, 기만, 배신, 사랑, 집착, 상실감, 페티시즘(Fetishism), 이상형(여성), 여성심리, 영적 체험, 살인, 자살, 완전범죄, 신비주의와 전설, 배금주의, 본질과 이미지, 욕망과 허무함, 위선, 정신질환, 사법제도, 제도의 모순 등 다루기 어려운 많은 소재와 내용을 이 영화처럼 완벽하면서도 조화롭게 다룬 영화도 드물다. 또한 영상, 언어, 구조를 도구로 관객의 심리를 완벽하게 조작하는 수준은 그의 1954년 걸작 '이창(Rear Window)'에 필적한다.

거대한 세쿼이아 나무 숲, 금문교, 해변 등 샌프란시스코의 명소를 배경으로 금발미인 Kim Novak을 보는 행복한 기분이 남자주인공의 집착으로 허무한 비극으로 끝날 때 그 느낌의 씁쓸함이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 주위에서 집착으로 인한 범죄와 비극을 자주 목격해온 나로서는 영화 내용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우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