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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산책

[클래식 산책] 진정한 공감

유현정 변호사(서울변회 클래식동호회)

2010년 9월22일 수요일 저녁 7시30분 런던의 허 마제스티 극장(HER MAJESTY'S THEATRE)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무대의 막이 올랐다.

뮤지컬은 고전음악인 클래식이나 오페라에 비해 가볍고 집중이 되지 않는 편이어서 일부러 찾아가지는 않았었다. 게다가 오페라의 유령은 2가지 버전의 영화로 보아서 그 줄거리를 익히 알고 있었는데, 법률가라는 직업적 특성 때문인지 개연성이 적거나 이야기 전개가 탄탄하지 않으면 별로 호감을 느끼지 못하는데다가 영화 속 유령은 매우 매력적이어서 유령이 아닌 라울을 선택하는 크리스틴의 결정이나 크리스틴에게 자신과 살든지 아니면 라울의 죽음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던 유령이 크리스틴의 입맞춤에 바로 크리스틴과 라울을 놓아준 점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음악은 무척 기대되었고, 특히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없는 영화와는 달리 한정된 시간에 한정된 하나의 무대에서 그 이야기를 어떻게 펼쳐갈지 궁금하기도 해서 친구가 같이 가자고 했을 때 두말없이 좋다고 했다.

브로드웨이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극장은 관객들로 꽉 찼고, 화려한 무대가 펼쳐졌다. 좌석이 운 좋게 맨 앞자리여서 바로 눈앞에서 배우들의 열연이 펼쳐졌고, 내 좌석 바로 아래 있는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팬텀은 스콧 데이비즈(Scott Davies)라는 배우가 열연하였는데, 그 배우는 영화 속 팬텀과는 정반대였다. 늙고 키 작고 뚱뚱하고 못생겼다. 처음에는 약간 실망스러웠다. 주인공 팬텀이 매력적일 것이라는 기대를 여지없이 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팬텀의 연기에 빠져들었고, 스토리의 빈약함은 팬텀의 연기로 충분히 커버되고도 남았다. 팬텀을 이해하지만 사랑을 포기할 수 없는 크리스틴의 입장과 크리스틴에게 이해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던, 그리고 크리스틴의 사랑을 지켜주고자 했던 팬텀의 고뇌가 팬텀의 몸짓과 표정, 수없이 흘리는 땀, 심지어 노래하면서 분수처럼 튀는 침 속에서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노래를 아주 잘 한다기보다는 눈빛, 말투, 몸짓, 속삭임 그 하나하나가 온 세상을 빨아들일 듯 했고 팬텀의 고뇌를 너무나 당연하게 내 것인 것 같이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순간의 정적이 흐른 후 무대가 마무리되면서 자신의 어쩔 수 없는 신체적, 사회적 조건 때문에 평범한 삶이나 사랑을 모두 포기해야만 했던 팬텀의 심정이 그대로 가슴에 남았다. 진정한 공감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재주가 뛰어나기보다는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설득력 있게 무한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재판을 하다보면 '법대로 할' 경우 오히려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화해나 조정이 많이 이루어지는데, 특히 화해나 조정과정에서 논리도 중요하지만 공감형성을 통한 설득에도 노력을 기울여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