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고석홍의 영화이야기

[고석홍의 영화이야기] 무의식에 관한 히치콕 감독 영화, '스펠바운드(Spellbound)'

고석홍 부장검사

안소니 에드워즈(Anthony Edwards)라는 사람으로 행세하지만 사실은 철저히 기억상실증에 걸린 그레고리 펙(Gregory Peck)이 정신병원 원장으로 새로 부임한다. 원래 에드워즈의 유능함과 명성 때문에 펙은 정신과 여의사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과 급속도로 가까워지지만, 곡선과 백색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면서 그 실체가 드러나 마침내 에드워즈 살인범으로 쫓기게 된다. 버그만은 사랑하는 펙의 정체와 공포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그를 추격하고, 그가 겪는 몽환과 공포를 바탕으로 무의식 세계를 해석하여 진실을 밝혀낸다.

'마법에 걸린'이라고 해석되는 단어로 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45년 작품 '스펠바운드(Spellbound)'는 당시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가 펙이 겪는 괴상한 카드게임, 거대한 눈, 이상한 가위 등의 몽환을 미술 디자인으로 창작하여 세상의 주목을 받았는데 달리의 그림과 디자인은 자체만으로도 탁월한 예술작품이다. 또 독일 표현주의 기법의 현대적 느낌을 주는 영화 장면과 더불어 당시 새로 발명된 테레민(Theremin)이라는 전자악기의 오싹한 진동음의 유명한 영화주제곡에 아카데미상을 주어졌으며, 이후 테레민은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 장르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영화는, 1919년 로버트 비네(Robert Wiene)감독이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Das Kabinett Des Doktor Caligari)'로 몽유병과 심리학을 소개한 이후,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칼 융(Carl G. Jung)으로 대표되는 당시 뜨거운 주제인 무의식의 세계를 소개하여 대중의 관심을 받은 대표적인 영화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무의식에 대한 설명과 심리분석에 많은 시간이 할애된 결과 히치콕 감독의 특기인 서스펜스 유발이 미흡해져 당시 많은 평론가들이 실패작이라고도 평가하였다. 이후 1964년 히치콕은 '마니(Marnie)'라는 영화에서 도벽을 주제로 또다시 무의식 세계를 탐험했지만 역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이런 그의 노력은 켄 러셀(Ken Russell),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와 같이 무의식과 몽환을 주제로 한 신진 감독의 탄생에 크게 기여하였고, 이후 타인의 꿈속으로 들어가 다시 꿈을 꾸고 점점 무의식의 심연에 접근하여 타인 의식의 동인(動因)을 바꾸는 모험을 다루는 내용의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의 영화 '인셉션(Inception)'(2010)으로까지 발전한다. 인셉션은 히치콕의 무의식을 넘어, 알렉스 프로야스(Alex Proyas) 감독의 '다크 시티(Dark City)'(1998)와 와쇼스키(Wachowsky) 형제 감독의 '매트릭스(Matrix)'(1999)와 같이, 현실과 가상세계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한편, 스펠바운드의 어린 시절의 죄의식이라는 소재에 대하여는 어머니를 살해하였다는 죄의식이 성년의 기억과 꿈을 거짓으로 대체한다는 내용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David Cronenberg) 작품 '거미(Spider)'(2002)도 함께 볼 만한 영화이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