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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홍의 영화이야기

[고석홍의 영화이야기] 히치콕 감독의 첫 미국 영화, 레베카(Rebecca)

고석홍 부장검사

영화가 시작되면 카메라는 영국 최고의 저택인 맨덜리의 진입로부터 저택 현관까지 트래킹하고, 여주인공 조안 폰테인은 카메라의 움직임과 함께 그 저택과의 인연에 대해 신비로운 목소리로 서술한다. 조안 폰테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관객은 그녀가 그곳에서 겪은 일이 무엇일까 몹시 궁금해진다.

화면은 바뀌어 맥스(로렌스 올리비에 분)라는 대부호가 프랑스 몬테카를로 해변 절벽 위에서 자살을 시도하려는 듯 서있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젊은 조안 폰테인이 그 장면을 목격하고 이를 제지하고자 접근하자 맥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온을 되찾으며 자기 길을 간다. 맥스는 무슨 일로 자살까지 생각하고 있는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미국의 유명한 제작자 데이비드 오 셀즈닉의 설득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처음 건너가 1940년 처음 감독한 영화 레베카는 이렇듯 초반부터 관객에게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시작한다. 히치콕 감독은 이 영화로 그 해 아카데미 영화제 11개 부문 후보로 올라 최우수 작품상과 촬영상을 수상하였는데 그것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아카데미 작품상이다. 재미있는 점은 그해 작품상 후보로 그가 영국에서 감독한 '해외통신원(Foreign Correspondent)'도 경합하였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당시 여류 소설가 다프네 뒤 모리에의 음산한 2류 유령 소설을 소재로 하였는데 대저택의 웅장하면서도 음산한 이미지와 배경 음악은 후대 서스펜스 영화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유령 같은 존재인 레베카의 과거, 그녀의 전 남편 맥스의 불안한 행동, 미심쩍은 집사 댄버스 부인, 범죄에 대한 망령과 의심, 비겁함과 광기 등 영화 전편은 어두운 그림자와 안개로 둘러싸이고 히치콕 감독은 자신이 준비한 결론을 향해 복선과 암시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이 영화는 히치콕 영화 중 독일 표현주의 미학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작품으로 레베카 모습을 일절 나타내지 않고서도 관객으로 하여금 레베카에 대한 망령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수렁에 빠진 금발 미인 조안 폰테인을 보면서 그레이스 켈리를 비롯한 금발의 고전 미인을 살인과 공포의 위험 속에 내던져 관객으로 하여금 극심한 불안을 느끼게 만드는 히치콕의 전략과 취향이 이 영화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느끼게 해준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접한 청소년기에 느낀 신비감은 세월이 흘러도 별로 줄어들지 아니하여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보게 되었는데 40대 후반에 다시 보니 진부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원작의 진부성에 기인한 것이지 감독의 역량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매일 30도가 넘는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더위가 조금 수그러진 밤 시간에 선풍기,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이 영화를 보는 것도 훌륭한 피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