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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홍의 영화이야기

[고석홍의 영화이야기] '시(詩)'와 '무셰트(Mouchette)'

고석홍 부장검사

지난 달 이창동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영화 '시(詩)'로 각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우리 영화가 최고 권위의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염원했던 작품상을 수상하지 못해 아쉬움이 크지만, 영화의 소재 및 주제가 높이 평가된 점에 비추어 조만간 우리나라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리라 생각된다.

윤간 당하고 자살한 여중생의 비통한 마음과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을 다한 아마추어 시인 미자(윤정희 분)가 쓴 시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죽은 소녀의 목소리로 잔잔하게 읊어질 때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미자가 아니라 미자의 외양을 빌린 시의 신(神)임을 느꼈다. 시의 신이 소녀의 목소리가 되어 시를 노래할 때 시를 창작한 미자라는 존재는 영화 화면에 더 이상 필요 없기에 흔적없이 사라진다. 어린 여중생이 되어 보고자 그녀의 삶의 궤적을 더듬고 타인과 억지로 성행위까지 해보는 미자의 노력이 시인의 사명임을 감독은 말한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전작 '초록물고기(1997)', '박하사탕(1999)', '오아시스(2002)', '밀양(2007)'에서처럼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희미한 불빛처럼 점점 사라져 가는 시의 슬픈 운명을 보여준다(이를 표현한 시 낭송회 부분 분량을 절반으로 줄였더라면 영화가 더욱 빛났으리라). 하지만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도 불편한 진실은 죽은 소녀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해준 사람은 부모도 아닌 시인 미자 밖에 없었다는 슬픈 현실이다(소녀의 모친은 윤간한 학생, 그 부모에게 항의하거나 사건화 하는 등으로 딸의 통한을 풀어주려는 노력을 한 바도 없고 작은 돈을 받고 합의한다.).

이 영화는 나에게 1967년 베니스 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하고 칸 영화제 작품상 후보였던 로버트 브레송(Robert Bresson) 감독의 '무셰트(Mouchette)'를 연상하게 만든다. 두 영화 모두 순수한 소녀가 성폭행 당하고 자살하는 내용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시'에서 죽음이 영화 출발점이라면 '무셰트'에서는 죽음이 영화의 종착역이다. 어린 소녀 무셰트는 지독한 가난과 병든 어머니와 갓 태어난 동생을 돌봐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 아버지로부터 학대 당하고 학교 선생과 급우들로부터 모욕 당하는 힘든 삶을 살고 있다. 홀로 귀가하면서 통과하는 숲과 어머니가 유일한 친구지만 어머니가 사망하고 숲속에서 밀렵꾼에게 강간 당한 후 동네 사람들로부터 멸시 당하자 무셰트는 자살을 택한다.

'사형수 탈출하다(1956)', '소매치기(1959)', '당나귀 발타자르(1966)', '돈(1983)' 등 수많은 명작의 거장 감독 브레송, 그의 영화 특색처럼 무셰트는 영화 전편이 하나의 그림이고 시(詩)다. 무셰트를 보고나면 또렷한 장면 속에 어린 소녀가 겪는 고통이 바늘처럼 관객의 가슴에 박힌다.

조두순 사건, 김길태 사건의 끔찍함이 다 가시기도 전에 여아가 납치되어 성폭행 당한 사건이 또 발생해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범죄를 접해야 하나? 시와 무셰트 속 어린 소녀의 슬픔보다 더 비참한 사건들을 우리 주위의 현실로 목격하면서 문명사회 속의 방치된 야만이 부끄럽고 창피하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