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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산책

[클래식 산책] 레퀴엠

하죽봉 변호사(서울변회 클래식동호회장)

레코드 목록서를 보면 오페라 다음의 장르는 종교곡, 즉 미사곡이다.

주로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오페라를 들은 후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경건한 자세를 가다듬기 위하여 미사곡을 듣도록 배려한 것이 아닐까. 짧지만 종교곡의 진수를 보여주는 미사곡으로 모차르트의 Ave Verum Corpus(아! 거룩하게도 우리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시니)나 Laudate Dominum(주님을 찬양할지어다)을 들으면 마음의 평온함을 넘어 종교적인 법열의 경지까지 이른다. 레코드 목록서에 종교곡의 장르가 아니고 초기 음악 편에 들어가 있는 그레고리안 성가는 또 어떤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곡도 즐겁고 쾌활하지만 듣는 이를 침잠시키게 하는 이 곡의 매력은 정말 무한하다. 이 성가는 무반주로 된 연주가 훨씬 더 심금을 두드린다.

종교곡 중 진혼 미사곡이 있다. Requiem aeternam dona eis(망자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로 시작하는 가사문의 첫 단어를 따서 레퀴엠이라고 부른다. 동양권에서 진혼곡이라고 하나 진혼은 죽음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망자의 혼을 진정시킨다는 뜻이 강하므로 망자(및 유족)를 위로하고 주님에게 맡긴다는 의미로 위혼곡, 위혼미사라고 부르는 것이 어떨까 한다. 레퀴엠은 오케겜, 빅토리아, 케루비니, 모차르트, 베르디, 베를리오즈, 드보르작, 브람스 포레의 작품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일반적으로 연주되는 것은 모차르트, 베르디, 브람스 및 포레의 작품이다.

레퀴엠은 미사곡이므로 가사가 라틴어로 되어 있다. 이 가사는 미사 고유문과 통상문의 구별이 있지만 전문적이므로 생략하고 작곡자에 따라서 넣고 빠지는 가사 문이 다르게 되어 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연주자에 따라서 마지막 콤무니온(성체배령송)이 빠진 연주도 있다.

라틴어로 된 가사만 써야 한다는 법칙을 깨뜨린 획기적인 작품이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정확하게는 독일어 가사로 된 레퀴엠)이다.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신약성경 중에서 7개의 구절을 뽑아 곡을 부친 탓인지 가사가 쉽게 이해되는 특징을 가진 고금의 명작 중 하나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레퀴엠은 많이 작곡되었는데, 브리튼의 전쟁레퀴엠은 미사문을 사용하지 아니한 것이고, 뮤지컬 작곡가로 유명한 웨버의 「피에 예수」는 미사문 중 하나만 뽑은 것으로 방송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여러 레퀴엠 중에서도 제일가는 명곡을 꼽으라면 영화 아마데우스의 영향 탓인지 모차르트를 드는 사람이 많다. 여러 미사곡을 남긴 모차르트는 레퀴엠에서 비로소 미사곡의 장르 중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한다. 필자는 미사문을 사용한 포레와 신약성경 구절을 따온 브람스의 레퀴엠이 곡의 본질을 살린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레퀴엠의 본질은 앞서 말한 대로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를 구별하지 아니하고 위로하는 데 있다. 따라서 낮게 깔리는 음악이어야 하는데 모차르트나 베르디는 분노의 날(Dies Irae) 등에서 관악기가 요동치듯 크게 울려 감정을 고조시키기도 하지만 어딘가 정밀함을 깨는 느낌이 들어서 자주 손이 가지 아니한다.

존경하고 아끼는 이가 세상을 떠날 때, 삶이 신산하다고 느낄 때, 만사가 덧없다고 생각될 때에 포레나 브람스의 레퀴엠을 들어보시라. 서러움이나 시름이 어느 듯 가시고 마음에 평화가 슬며시 들어와 있는 것을 알게 될테니.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