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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산책

[클래식 산책] 오페라와 대본

하죽봉 변호사(서울변회 클래식동호회장)

가곡이나 오페라는 가사 또는 대본이 기본이다. 악흥에 따라 작곡된 곡에 가사를 덧붙이는 예는 극히 드물며 오페라는 반드시 대본이 선행되어야 한다. 오페라는 음악과 연극의 결합 형식이므로 희곡을 오페라의 대본으로 그대로 쓰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장과 막이 구분된 희곡이 오페라 대본으로 쓰인 예로 피가로의 결혼(모차르트), 세비야의 이발사(롯시니), 쉴러의 돈 카를로(베르디), 세익스피어의 맥베드, 오텔로, 폴스타프(베르디)를 들지만 원작과 대본에 차이가 많다.

연극 대본을 거의 그대로 오페라 대본으로 쓴 대표적인 오페라가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인데, 카라얀, 압바도, 뒤투아의 CD와 가디너와 불레즈의 DVD 등이 시중에 나와 있어 쉽게 구할 수 있다. 이 오페라는 주인공의 아리아나 중창 및 합창이 없어서 종래의 오페라에 익숙한 이에게는 이런 오페라도 있냐고 어리둥절할 작품이다. 상징주의 시인 모리스 메테를링크는 시로 된 무대극 대본을 썼고, 드뷔시는 이를 거의 그대로 오페라 대본으로 사용하였는데, 관현악 반주에 등장인물이 시를 읊는 듯하는 영창(詠唱)의 연속이지만 쉽게 빠져드는 묘한 작품이다. 메테를링크의 원작은 드뷔시 말고도 포레, 시벨리우스 및 쇤베르크에게 영감을 주어서 교향시 등의 동명 작품이 되고 있다. 상징주의 음악의 대표작인 이 곡을 이해하려면 대본을 읽으며 그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하는데 원문인 불어 외에 영어 번역도 붙어 있으니 쉽게 접할 수 있다.

대부분의 오페라가 소설이나 역사적 사실을 가사화한 대본을 바탕으로 한 데 비하여 시로 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기존 오페라의 틀을 깨뜨린 획기적인 작품이지만 오페라의 형식과 전통을 지키면서 대본이 시로 된 것이 차이코프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이다. 푸쉬킨의 동명 장편시를 작곡자가 발췌하여 대본으로 한 이 오페라도 반드시 들어야 할 곡이다.

70세가 넘는 베르디가 대본에 감탄하여 다시 붓을 들어 작곡한 오텔로와 폴스타프의 대본을 쓴 아리고 보이토는 스스로 「메피스토펠레스」를 작곡하여 오페라 작곡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는 한 작품의 대본이 되기에는 아까운지 구노의 「파우스트」,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 외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까지 나오게 하였다. 보이토의 이 오페라도 요즘은 쉽게 구할 수 있다.

스스로 대본을 집필한 작곡가도 있으니 대표적인 예가 바그너이다. 오페라의 대본(libretto)은 가사의 운율성을 살려야 하므로 압운법(rhyming)이 기본요소의 하나인데 바그너는 시인도 아니면서 이탈리아어가 아닌 독일어로도 훌륭한 리브레토가 될 수 있다는 신념하에 방대한 작품의 대본을 직접 써 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윤이상은 심청, 나비의 꿈 같은 오페라를 작곡하였으나 대본이 독일어로 되어 있는데, 요즘 마르코 폴로, 진시황이라는 오페라로 이름이 알려진 중국의 작곡가 탄둔은 중국어를 쓰면서도 성공한 예이다. 우리 말은 운율을 맞추기 어렵고 발음 자체가 딱딱해 좋은 오페라가 나올 기초가 되지 않는다고 하나 세계에서 시집이 제일 많이 팔린다는 나라인만큼 시인들이 좋은 대본을 내어서 작곡가를 고무시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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