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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홍의 영화이야기

[고석홍의 영화이야기]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조두순 사건

고석홍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부장검사)

지난 9월27일 스위스 국제공항에서 취리히 영화제 수상을 위해 잠시 들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체포되었다는 뉴스가 전 세계에 보도되었다. 1977년 미국 LA에서 13세 소녀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혐의로 구속되었지만 보석이 되자 출국하여 미국 사법당국에 지명수배된 지 32년 만에 체포돼 미국으로 송환될 운명에 놓였다. 그의 체포 보도를 보면서 거장의 새삼스러운 불명예가 안타까우면서도 한편, 미국 정부의 집요함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폴란스키 감독은 1933년 파리에서 태어나 폴란드로 돌아가 발발한 2차 세계대전으로 게토에 수용되어 있던 중 자신만 탈출하고 부모와 여동생은 아우슈비츠로 보내져 아버지만 살아남는 비극을 경험한다. 1962년 ‘물속의 칼’(Knife in the water)이라는 독특한 스릴러물로 세계무대에 등장한 후 카트리느 드뉘브 주연의 1965년 ‘혐오’(Repulsion)로 천재성을 세계에 알리더니 1967년 ‘박쥐성의 무도회’(Fearless Vampire Killers, or Pardon Me but Your Teeth are in My Neck)로 장르 변신과 그 영화 여주인공 샤론 테이트와의 결혼으로 전 세계 뉴스를 장식하고 할리우드로 진출한다. 그 후 미아 패로우 주연의 ‘악마의 씨’(Rosemary Baby, 1968)로 컬트 무비의 지평을 열어 커리어의 정점을 향해 가던 중 1969년 살인마 교주 찰스 맨슨을 추종하는 광신도들에 의해 임신한 부인과 친구들이 난도질당해 끔찍하게 살해되는 사건으로 정신적 붕괴를 겪는다. 그리고 후속 작품도 빛을 잃으면서 잊혀지는 듯했지만 1974년 잭 니콜슨 주연의 불멸의 걸작 ‘차이나타운’(Chinatown 1974)으로 전 세계의 갈채를 받아 회생했지만 13세 소녀와 섹스 혐의로 인해 유럽으로 도망한 후 ‘테스’(Tess 1979), ‘실종자’(Frantic 1988), ‘비터 문’(Bitter moon, 1992), ‘진실’(Death and the Maiden 1994) 등을 감독하다가 69세의 나이에 또다시 ‘피아니스트’(Pianist, 2002)라는 걸작을 만들어 다시금 전 세계를 놀라게 한다. 그렇지만 아내가 묻힌 미국 땅을 밟고자 했지만 그의 간청은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폴란스키처럼 두 번이나 가족을 잃는 비참지절을 겪은 천재가 있을까? 천재 예술가와 문호들의 수많은 기행과 인격파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폴란스키에게도 그런 인간적 연민이 느껴진다.

최근 우리나라는 조두순이라는 이름으로 시끄럽다. 그 동안 국민 법 감정과 유리되었다고 비판받아온 법원의 양형이 수면위에 올라와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이다. 나는 2008년 11월 ‘영화로 본 강간죄‘라는 칼럼에서, 강간죄는 피해 여성의 인간 존엄성을 말살하고 그녀에게 끔찍한 고문이며 평생 극복 불가능한 정신장애를 입히는 인격살인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 사법제도는 8세 여아에게 성폭행도 모자라 끔찍한 방법으로 영구장애까지 입힌 범인에게 국민 법 감정과 꽤 어긋난 형량을 결정하였다. 우리가 OECD 가입국이라거나 G20 회원국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선량한 사람을 더 보호하고 악랄한 사람을 더 엄벌해야 하는 것이 형사적 정의(正義)라고 볼 때, 피고인·피의자의 인권에 치우친 나머지 선량한 국민의 법감정이 외면되어 온 것은 아닐까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폴란스키 감독의 사례를 통해 조두순 사건을 보면서 한 나라의 처벌의지가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느꼈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