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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홍의 영화이야기

[고석홍의 영화이야기] IPTV와 일본영화 '용의자 X의 헌신'

고석홍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부장검사)

작년 가을 부산지검에 근무할 때 처음 신청한 IPTV, 혼자 지내는 모처럼의 지방생활이니 만큼 당시에는 영화를 많이 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바쁘고 주말이면 서울로 올라오다 보니 영화 볼 시간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올해 법무연수원에 발령받고 IPTV를 서울로 이전시키고 나면서 주말에 가끔 영화를 시청할 시간도 가지게 되었다.

틈 내어 IPTV 영화목록을 살펴보았더니, 과거 비디오대여점 시절의 오래된 대중영화가 대부분이고 내가 좋아하는 유형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영화의 경우는 약간 달랐다. 그 동안 일본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 야즈시로 오즈, 미조구치 겐지, 이마무라 쇼헤이 등의 영화와 오시이 마모루, 테츠야 오사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걸작 애니메이션에 치우쳐 기타노 다케시, 주조 이타미, 이와이 슈운지, 최양일(재일동포) 감독들의 작품 일부 등에 국한된 일본 현대 영화 결핍을 어느 정도 보충할 수 있게 되었다.

IPTV를 통해 시청한 인상적인 일본영화 가운데 범죄와 관련하여 감독 이름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감독이 있다.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아주 독특한 작품의 감독, 니시타니 히로시(西谷弘)다. 그는 감독한 영화가 3편에 불과해, ‘하얀거탑’, ‘미녀와 야수’, ‘갈릴레오’, ‘엔진’, ‘현청(懸廳)의 별’, ‘천체관측’, ‘링-라센’이라는 히트 드라마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데, 미장센, 감정묘사는 물론 엑스트라의 움직임, 소도구 마저 치밀하게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8년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은 현대 일본 3대 미스테리 소설가 중 최고로 일컬어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원작을 소재로 하였는데 그는 물질문명과 인간성의 상관관계를 비판적으로 묘사한 미스테리 작품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폭 넓은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남자의 시신이 발견되고 그의 행적과 함께 전처가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그녀의 완벽한 알리바이와 진실반응에 ‘갈릴레오’라는 별명의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 교수가 경찰의 요청으로 개입하고 용의자의 옆집에 사는 수학 천재 ‘이시가미’(유카와의 대학동창)가 그녀의 뒤에서 알리바이를 치밀하게 조작하고 있다. 영화는 두 천재의 대결과 더불어 이시가미의 헌신을 섬세하게 그러나 드라이하게 묘사하고 있다.

현대 일본영화를 보면 감독의 역량이 우리나라보다 결코 높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훌륭한 원작 소설 등에 바탕을 두고 영화를 만들다 보니 우리보다 아이디어와 소재가 독특하고 창의적이며 구성도 대단히 치밀하다. 창의성의 빈곤으로 점점 문화가 미약해지는 우리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럽다. 자본주의 발달 과정에서 돈버는 데 열중해온 점은 우리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인문적 창의성을 소홀히 한 데 반해 일본이 문학, 예술과 과학 등에서 창의력과 교양도 함께 꾸준히 발전시켜온 것을 보면서 미래에 우리 젊은 세대들이 이웃나라 문화로 더욱 빨려들어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