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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산책

[클래식 산책] 범 패

유현정 변호사(서울변회 클래식동호회)

흔히 성악 하면 오페라 아리아를 떠올린다. 우리가 오페라 아리아로 가장 많이 듣는 것은 이탈리아 벨칸토 창법인데, 성악은 사람의 목소리를 악기로 하여 연주하는 음악으로 반드시 오페라 아리아에 한정되지 않는다. 각 나라, 각 민족마다 고유한 성악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3대 성악이 있다고 한다. 가곡, 판소리, 범패. 가곡과 판소리는 많이 들어보았는데 ‘범패’는 생소하다. 범패는 전통 불교음악이다. 신라시대 당에서 들여와 불렀고, 수입국인 당과 어깨를 겨룰 정도로 그 수준이 매우 높았는데, 일본의 기록에 따르면 그 당시 3대 범패 중 하나인 ‘향풍’이 신라에서 불렀던 범패였다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숭유억불정책과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그 명맥이 끊기다시피 하였는데, 오히려 외국에서 그 소리를 알아보고 극찬하였고, 1970년대 외국유학파들이 국내에 들어와 조사를 시작하여 소리를 찾아내고 인간문화재를 지정하고 최근에는 ‘영산재’라는 이름으로 무대공연을 하면서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다. 가곡은 소위 서양음악이 들어온 후 시작되었고 판소리는 조선 중기 이후 시작되었으니 신라시대부터 시작된 범패가 우리 국악의 원류라 할 수도 있겠다.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소개로 우리나라 범패의 일인자이신 조계종 어장 동주 원명 큰스님의 범패 강의를 듣게 되었다. 스님께서는 범패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하신 후 몇 가지 시범을 들려주셨는데, 짧게 들었어도 그 깊고 청아한 소리가 다양하고 울림이 깊고 묘하게 흐르면서 가슴 깊이 큰 감동을 주었다. 범패는 종교음악이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공덕이 쌓여야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있다 한다. 단순히 목소리로 연습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깊이와 감동이 더한 것인가.

우리나라의 범패에 대하여 외국 사람들이 먼저 그 가치를 알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예술에는 정말 국경이 따로 없는 것이구나. 범패는 굉장히 어려워서 하루 12시간 이상씩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배울 수가 없다 하니, 연습 자체로 구도의 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종교적 수행이 쌓여야 그 깊이가 나타난다니,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소리이기에 불교신자가 아닌 나 같은 사람들도, 그리고 1970년대 대한민국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였던 외국 사람들에게까지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근대 이전의 형식을 갖춘 음악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종교음악으로 존재하였다. 음악가가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당당히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은 근대 이후이다. 당시 소리로 만들어진 예술은, 특히 국교가 있던 국가에서는 종교적 틀 안에서 당시 사람들의 감성을 담아내고 표현하였으리라. 이를 종교가 다르다고 아예 배척해버리면 소중한 문화유산의 중요부분을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현재 취향에 국한되거나 얽매이지 않고 마음을 열고 다른 종류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면 얼마나 삶이 풍성해질 것인가. 마치 외국 사람들이 생소한 우리나라의 범패에 귀를 열고 그 가치를 알아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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