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클래식 산책

[클래식 산책] 연주는 또 하나의 창작

하죽봉 변호사(서울변회 클래식동호회장)

문학, 미술, 연극, 영화, 서예, 건축 등 예술의 여느 장르와 음악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소설이나 시는 글로 써서 발표하면 그대로 독자들이 읽을 수 있고, 그림이나 조각은 작품이 만들어지면 바로 감상할 수 있으며, 서예나 건축도 마찬가지다. 음악은 작곡이라는 창작을 연주를 통하여 재현하여야 한다. 연극과 영화는 희곡 또는 대본의 작성과 무대화 또는 영상화라는 과정이 복합화 되어 있어서 무대화와 영상화를 창작으로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희곡 또는 대본만 읽고서도 충분한 감상이 될 수도 있다.

음악의 경우 간단한 노래나 짧은 기악곡은 어느 정도 음악에 소질이 있으면 바로 악보를 읽어서 감상이 가능하지만 아마추어 대부분은 연주를 통하지 아니한 감상은 불가능하고 이 점에서 다른 장르와 확실히 다르다고 하겠다.

음악전문가는 연주를 듣지 아니하고 악보만 보고서도 감상이 가능할까?

베토벤은 청각이 완전히 망가지고서도 작곡을 계속하였고, 만년에 합창교향곡의 직접 지휘를 마치고서도 청중의 환호를 듣지 못하였다고 하는데 청각의 도움을 받지 아니하고서도 자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초인적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닐까?

젊은 음악 학도를 만나서 물어보면 현악기, 관악기 등 십 수종의 악기가 합주하는 관현악곡이나 거기에 성악이 보태지는 오라토리오나 오페라는 악기 및 음성의 음감이나 음색의 차이에 의한 미묘한 조화(화음)는 역시 귀로 듣고 뇌로 판단해야 된다고 하며, 가곡이나 기악독주곡(소나타)도 연주가의 해석에 따라 감흥이 다르다고 한다. 따라서 연주는 작곡에 이은 제2의 창작이고 우리는 위대한 작곡가의 작품을 훌륭한 연주를 통하여 감상함으로써 희열이나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작곡가도 자기 작품의 연주에 신경이 쓰이는지, 지휘자나 악단(오케스트라)을 지명하는 경우도 있다. 바그너가 젊은 한스 폰 뷜로브를 자기 오페라의 지휘자로 전속 고용하였다가 친구 리스트의 딸인 뷜로브의 부인과 눈이 맞아 재혼하였고, 그 사이에 난 외동아들의 자손들이 현재 바그너 재단의 운영권을 두고 서로 싸우고 있어 화제이다.

각설하고 음악이 작곡과 연주의 이중 창작이라고 하면, 작곡가와 연주가는 감상자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감상 당시에는 연주자의 수준, 기교, 능력에만 신경이 쓰이므로 작곡가의 존재는 잊혀지기 마련이나 연주가 끝나고 나서는 작곡가의 위대함을 다시 상기시키게 되므로 결국 연주는 작곡의 제2의 창작으로 부를 수 있지만 역시 작곡에는 부차적이고 종속적이다.

오늘날 기술의 발달로 연주가 거의 원음 그대로 녹음되고, 영구보존이 되므로 제2의 창작인 연주 중에서 최고의 명연, 자기가 좋아하는 연주를 언제든지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카루소가 전무후무한 테너라고 하여도 그가 남긴 조악한 녹음으로는 진가를 알기 어렵지만 파바로티나 카라얀은 죽어서도 훌륭한 연주를 녹음으로 남겨 놓고 있어서 우리 귀를 즐겁게 만들고 있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