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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이젠 바꾸자] ‘민법은 비문(非文) 백화점’… 법조 안팎, “전면 개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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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올 1월 ‘2023년 법무부 5대 핵심 추진과제’로 민법과 상법 개정 계획을 밝힌 가운데, 비문과 일본식 표현 등이 섞인 민법 개정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민법은 일제 하에 적용됐던 일본민법전을 대체해 국민의 법생활이 안정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정됐으나 65년간 일부 개정 등만 이뤄졌을 뿐 전면 개정이 된 적은 없었다.


◇ ‘민법전은 암호 법전’ = 민법에는 심굴하다, 몽리자, 구거, 통정한 등 외에도 생소한 단어가 많다. 대석(제164조, 돈을 받고 빌려주는 좌석), 동전(제378조, 앞과 같음), 환금시가(제378조, 환율) 등이다. 제235조 등에서는 '상린자'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상린관계'라는 표현은 인접하고 있는 토지 소유자가 서로 어느 정도 자기 토지의 이용에 관한 내용을 제한해 상대방의 토지 이용을 원활하도록 하는 관계를 뜻한다. 법률가에게는 익숙한 단어일 수 있지만 일반인이 듣기에 바로 뜻이 와닿기 어려운 표현도 있다. 제107조 등에 나오는 ‘선의’는 자신의 행위가 법률관계의 발생, 소멸 및 그 효력에 영향을 미치는 사실을 모르는 일을 의미하지만 대다수는 착한 마음이나 좋은 뜻으로 이해하기 쉽다.

 

《민법의 비문》 저자인 김세중 전 국립국어원 공공언어지원단장은 지난 6일 법률신문 제15면에 게재된 칼럼(법조광장- 민법의 문장은 새로 태어나야)에서 △민법 제162조 제1항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에서 ‘완성하다’는 목적어를 요구하는 타동사인데 목적어 없이 쓰여 ‘완성된다’라고 쓰여야 하며 △‘조건이 성취한’, ‘상대방이 확정한’ 등 표현도 ‘조건이 성취된’, ‘상대방이 확정된’으로 수정되어야 하는 ‘비문’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에 좇은’, ‘~에 위반한’도 ‘~을 좇은’, ‘~을 위반한’이어야 하는데 조사가 잘못 쓰인 표현이고 △제77조 제2항 ‘사단법인은 사원이 없게 되거나 총회의 결의로도 해산한다’도 비문이며, △제31조 ‘법인은 법률의 규정에 의함이 아니면 성립하지 못한다’도 ‘무엇’이 아니라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법인은 법률의 규정에 의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못한다’고 수정되어야 한다고 했다.


◇ “전면 개정 꼭 필요” = 법조계 안팎에서는 민법 개정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크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은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어려운 용어와 만연체 등에서 비롯된 것인데, 사회제도가 법에 따라 변화하고 따라가는 만큼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며 “가장 많이 쓰이는 민법부터 시작해 다른 법들까지 전반적으로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고 최근 《읽기 쉬운 민법》을 펴낸 이진기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법을 개정한다고 해서 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전문용어 등을 쉽게 이해할 수는 없다”며 “다만 시민들 대다수가 법에 대해 관심이 많아진 만큼 최소한 민법의 규정을 읽으면 문장 자체에 대해선 이해할 수 있도록 민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일반인들도 보편적으로, 쉽게 민법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전면적인 개정이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세중 전 단장은 “비문,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 표현, 비문은 아니어도 낡은 어투, 오자 등이 민법에 있다”며 “문법도 사회적 규범임에도 문법에 안 맞는 문장,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을 법에 쓸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어사전에는 있더라도 국민 대다수가 쓰지 않는 표현도 민법전 곳곳에 있는데 오늘날의 언어습관에서 낯설고 어색한 어투도 고쳐야 한다”며 “(현재의 민법은) 문제점 백화점”이라고 했다.

 

다른 부장판사는 “대체하는 용어나 표현이 기존 표현을 담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당장 많은 표현을 바꾼다면 오히려 의미가 왜곡될 수도 있다”며 “용어의 정확한 전달을 위해서라도 차츰 변화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고법판사는 “조문 가운데 비문이나 띄어쓰기, 구시대적인 표현 등을 가다듬을 수는 있지만 (민법의) 내용 자체를 개정하는 문제는 법적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특별취재팀=박수연·한수현·이용경 기자 

sypark·shhan·yk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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