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굴하다, 몽리자, 구거···. 모두 현행 민법에 있는 표현이다. 그 뜻을 아는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 민법은 모든 법의 기본법으로 여겨진다. 1958년 제정된 민법은 65년간 일부 개정만 이뤄졌을 뿐 일본식 표현, 어색한 비문도 아직 그대로다. 언제까지 국민이 의미조차 모르는 표현으로 이뤄진 법을 따라야 할까? 새로운 시대에 맞는 민법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 법률신문은 대한민국 민법 제정 65년을 맞아 ‘민법, 이젠 바꾸자’ 시리즈를 시작한다.
“‘심굴하다’가 무슨 뜻이에요?”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용자가 뜻을 묻는 질문을 올리자 “살면서 처음 들어본다”, “생소한 단어”라는 답변이 주를 이뤘다.
이 표현은 대한민국 민법 제241조 ‘토지소유자는 인접지의 지반이 붕괴할 정도로 자기의 토지를 심굴(深掘)하지 못한다’에 있다. 땅을 깊게 판다는 의미를 지녔지만 국어사전을 찾아도 뜻이 나오지 않는다.
몽리자(제233조, 이익을 얻는 사람), 구거(제229조, 작은 도랑), 통정한(제208조, 남에게 자기의 의사를 표현한), 수지·목근(제240조, 수목가지·수목뿌리), 승역지와 요역지(제293조, 다른 토지의 편익에 제공되는 토지와 다른 토지로부터 편익을 얻는 토지), 최고하다(제88조, 일정한 행위를 하도록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의사를 통지하다) ···. 언뜻 보아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단어가 2023년 대한민국 민법전에 수두룩하다. 오타도 있다. 민법 제959조의15 제4항은 ‘가정법원은 임의후견임감독인이 선임된 경우에도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 임의후견감독인을 추가로 선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임의후견임감독인은 ‘임의후견감독인’의 오타다.
차호동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지난 13일자 법률신문 14면 칼럼(월요법창- 이색렬 어쩔티비)에서 “민법은 국민, 시민의 일상생활을 위한 기본법”이라며 “그러니 국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최소한의 룰을 지키면서 자유롭게 마음껏 지낼 수 있는 놀이터(sandbox)가 되어 주어야 할 것이지만 지금의 민법은 문장부터 국민의 모래주머니(sandbag)가 되어 아무리 읽어도 이해조차 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으니 과연 국민을 위한 법일까”라고 지적했다.
올해 1월 26일 법무부(장관 한동훈)는 ‘2023년 법무부 5대 핵심 추진과제’를 통해 민법과 상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제정 이후 65년간 유지되어 현재의 사회·경제적 가치 및 시대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1958년 2월 제정된 민법은 지난 65년 동안 일부개정 등만 34차례 이뤄져 왔다.
특별취재팀=박수연·한수현·이용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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