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법조산업이 답보 상태에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법조인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해외로 건너가 현지 로펌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창업이나 투자 분야에 과감하게 도전하기도 한다. 법원을 나와 경영인으로서 제2의 경력을 이어가는 법조인의 사례가 늘고 있으며, 검찰 출신으로서 전문성을 살려 준법 경영, 포렌식 등에 매진하는 법조인도 있다.
미국, 일본 등 해외 로펌으로 이직해 활동 반경을 넓히는 변호사가 늘고 있다.
정경화(44·사법연수원 39기) 변호사는 법무법인 태평양 국재중재팀을 거쳐 현재 미국 로펌 코빙턴 앤 벌링(Covington & Burling) 뉴욕사무소에서 근무 중이다. 지난해 중재전문지 GAR(Global Arbitration Review)과 후즈후리걸(Who's Who Legal)이 선정한 '퓨처 리더스(Future Leaders)'에 국제중재 전문가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변호사로서 일본 로펌 '아츠미 앤 사카이(Astumi & Sakai)'에서 근무하는 송영섭(41·변호사시험 2회) 변호사는 "한국에서 근무하며 일본 회사들과 업무를 한 경험이 있었고, 변호사로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일본 로펌으로 이직을 감행했다"고 말했다.
창업에 도전하며 기업가로 변신하는 법조인도 있다.
박성연(31·변호사시험 7회) 오디세이랩 대표는 변호사 출신으로 로펌에서 기업법무를 수행하다 창업에 도전했다. 2021년 8월 1인 사업자의 온라인 마케팅을 돕는 플랫폼 '지켜점주'를 출시했다.
서울중앙지검장과 서울남부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법무·검찰 요직을 두루 거친 이정수(54·26기) 변호사는 지난 8월 법률신문에 '중앙N남부 법률사무소'를 신설하고 변호사로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광고를 내면서 '개업인사'가 아닌 '창업인사'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M&A, 투자 등 자본 시장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법조인도 있다.
김남규(47·34기) 라데팡스파트너스 대표는 삼성에스원 준법경영팀장, KCGI 부사장 등으로 근무하다 2021년 라데팡스파트너스를 설립했다. 금융계 전문가로 평가받는 오승재(44·38기) 변호사는 금융기업 법무팀을 거쳐 2021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문 평가기관 서스틴베스트에 합류했다. 전무이사로서 실무를 이끌고 있다.
최근 우리 군이 개발하는 무기가 각광받으며, 무기 수출 등 국재 중재에 앞장서 온 법조인도 주목받고 있다.
손광익(48·군법 15회) 동인 변호사는 20여 년 동안 육군과 국방부, 방위사업청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무기 수출 등 방위산업 분야에서 국제 중재 업무 등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손 변호사는 방위사업청 국제중재 국외소송 업무를 담당하면서 K9 자주포를 노르웨이에 수출하는 사업에 참여했다. 또 현재 우리 군의 주력 잠수함인 '장보고-Ⅱ'와 관련된 국제 중재 사건에서도 활약한 바 있다. 현재는 동인에 합류해 방위사업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그는 "국내 방산업체들은 해외 정부나 방산기업들과 분쟁이 있을 때 영국의 중재 전문 로펌을 많이 선임한다. 하지만 대부분 영미법계에 정통한 변호사 들이기 때문에 한국의 대륙법체계를 이해하는 국내 변호사들이 활약한다면, 국내 기업들이 훨씬 편리하게 중재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경영 도전하는 판사 출신 늘어 = 법원에서 판사로 근무하다 경영인으로서 제2의 도전을 시작하는 법조인도 늘었다.
대표적으로 김상헌(60·19기) 우아한형제들 부회장이 있다. 김 부회장은 LG 부사장(법무팀장)을 거쳐 2007년 NHN(네이버)의 경영관리본부장·대표이사를 맡아 '라인'의 상장 등을 주도했다. 2017년부터 우아한형제들 사외이사로 활동하다가 2021년 딜리버리히어로와의 합병 과정에서 부회장으로 합류했다.
강한승(55·23기) 쿠팡 경영관리총괄 대표이사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 주미대사관 사법협력관, 울산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상사 전담 등을 거쳐 청와대 법무비서관 등 요직을 지냈다. 2013년부터 김앤장 변호사로 활동하다 2020년부터 쿠팡 경영관리총괄 대표를 맡고 있다.
주요 기업의 임원에도 판사 출신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김경환(53·25기) 부사장(법무실 법무팀장), 신명훈(58·23기) 부사장, 안덕호(55·23기) 부사장, 이정환(52·27기) 부사장, 조웅(51·29기) 부사장, 이상우(51·30기) 부사장 등이 판사 출신이다. 박병삼(57·27기) KT 부사장(윤리경영실장)과 서정현(52·33기) KT 상무(법무실 법무3담당), 함윤식(53·27기) 우아한형제들 부사장 등도 있다.
법원 재판연구원 출신으로 IT스타트업을 창업한 법조인도 있다.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의 최초롱(36·45기) 대표는 2013년 제55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2016년 서울고법 재판연구원(로클럭)을 지냈다. 이후 변호사로 활동하다 2018년 집단소송 관련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화난사람들'을 창업했다.
◇ 검사 출신…전문성 살려 '준법 경영', '포렌식' = 검사 출신으로 전문성을 살려 준법 경영, 포렌식 등에 매진하는 사례도 있다.
강호성(59·22기) CJ 경영지원대표, 김영문(58·24기) 한국동서발전 사장, 오세헌(64·14기) 현대중공업한국조선해양 사장, 홍석조(70·8기) BGF그룹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기업들이 준법경영을 강조함에 따라 전직 검사들이 사외이사로 활동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김준규(68·11기) 전 검찰총장이 삼성카드, 조상철(54·23기) 전 서울고검장이 롯데쇼핑, 윤웅걸(57·21기) 전 전주지검장이 두산, 조희진(61·19기) 전 서울동부지검장이 GS건설에 사외이사로 있다.
검찰 출신 변호사들은 전문성을 살려 디지털포렌식 등으로 전문 분야를 확장하는 추세다. 대형로펌들에서도 최근 몇 년 새 디지털포렌식 전문팀을 꾸리고 포렌식 실무 경험이 있는 검찰 출신 변호사들이 관련 사건을 대응하도록 하고 있다.
신년기획 특별취재팀
홍수정·이용경·홍윤지·박선정·임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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