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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만나는 법] 김정현 법무법인 창경 변호사

굳고 정한 갈매나무 같은 자존감으로 무장한 문화예술 사건의 감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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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고미술사학과를 나와서 준학예사로 일한 경력을 두고 많은 분들이 부모님도 비슷한 분야에 종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시는데, 전혀 아니에요. 저희 집은 서민 가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청각 장애가 있으신 아버지는 오랫동안 택시 기사 일을 하셨고 어머니는 작은 식당을 하셨으니까요. 저는 서울 대림동에서 태어나 몇 번 이사를 다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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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력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고려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4년 제3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 같은 해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율촌에서 문화·예술 분야에 특화된 사건을 주로 수행하며 경력을 쌓았다. 2019년 창경 법률사무소를 창업했다. 준(準)학예사 자격증을 보유한 김 변호사는 예술·디자인 등 문화콘텐츠 전반을 아울러 탄탄한 배경지식과 실무 능력을 겸비했다는 평을 받는다.

김정현 변호사(39·변호사시험 3회)가 들려준 성장 환경을 듣고는 사실 적잖게 놀랐다. 그가 학부에서 고고미술사학(서울대) 같은, 실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학문을 공부하고, 로스쿨로 진로를 바꿔 변시를 거쳐 변호사가 되었다는 사전 정보를 들었을 때, 나는 그냥 막연히 좋은 집안에서 비슷한 문화적 유전자를 가진 부모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으며 필요한 교양을 쌓고 현실 세계에 안착한, 우리가 흔히 보아온 성인 동화의 일정한 패턴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장애까지 있었던 부모 밑에서 자랐다는 것. 놀라움은 곧 경외심으로 바뀌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저와 제 동생을 주말마다 미술관과 박물관 전시관 등에 데리고 다니셨어요. 학원을 못 보내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였다고 나중에 말씀하시더군요. 부모님은 남에게 폐 끼치지 말고, 비교하지 말고,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심어주셨습니다. 제 의견을 늘 존중해 주셨고 부족하지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셨어요. 부모님은 어려운 생계의 짐을 짊어지고 계셨음에도 한 번도 저와 동생에게 내색을 하지 않으셨구요. 정직하게 자기 소임을 다하시는 분들이었는데, 그게 제 정서와 성향에 좋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아닌 게 아니라 인터뷰어에게 대응하는 김정현 변호사의 말투와 매너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단정하면서도 반듯했고 체화된 듯한 기품을 시종여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게 어떤 경우에는 다소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는데, 드라마나 영화에서 변호사 역을 완벽히 재현하는 배우를 상대하고 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니까 삼엄한 긴장과 노력으로 NG를 내지 않는 프로를 마주한 느낌. 나는 가만 상상해 보았다. 택시 일을 마친 아빠와 식당 문을 닫은 엄마와 나중에 변호사와 의사로 성장하는 두 딸아이가 늦은 저녁, 작은 집 식탁에 앉아, 각자가 최선을 다해서 살아낸 하루를 돌아보고 나누고 서로 고생했다고 격려하는 장면을. 그 집 벽에는 ‘가화만사성’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는데, 김정현 변호사는 그 다섯글자가 지금도 자기 삶의 지향 같은 거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에게, 로스쿨 다닐 때 학부에서 법학을 이미 공부한 동기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인 어려움은 없었는지, 그리고 임신 8개월차에 치렀다는 변호사 시험 과정에서 어떤 것들이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는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또 쿨한 대답이 돌아온다.

“특별히 아쉬운 것은 없었어요. 저는 원래 타인과 저를 비교하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출발점이 다른 것이라 생각했고, 대학 시절을 의미있게 보냈으니 그냥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로스쿨 첫 학기에 학점이 안 나와 걱정을 좀 했지만, 적응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니 성적은 자연스럽게 올라갔습니다. 첫 아이 임신 8개월차에 변시를 봤는데, 집과 학교만을 오가던 시절이었어요. 교수님들과 동기들이 정말 많은 배려를 해줬고 지금도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변호사 시험은 별도 교실을 배정받아 혼자서 봤는데, 그러다 보니 페이스 조절과 졸음을 참는 것이 힘들더라구요. 교실 뒤에 간이침대를 마련해 주실 정도로 많은 배려를 받았는데 물론 시험 때는 시간이 아까워 누워보진 못했습니다(웃음). 로스쿨 졸업 후에 저와 같은 고민을 했던 여러 기혼 후배님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본인의 건강 상태와 주변 환경을 깊이 숙고해 보시고 결정하시기 바란다고 말해줬습니다. 저는 평소 아이가 많은 화목한 가정을 꿈꿔 왔기 때문에 아이를 일찍 갖는 결정을 했지만, 뱃속의 아이와 함께 변시를 준비하며 조마조마했던 순간도 분명히 있었거든요. 다행히 제 경우에는 저도 태아도 건강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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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변호사 활동과 시작을 같이 한 육아는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일과의 밸런스는 또 어떻게 맞추고 있을까. (김 변호사는 첫 아이를 낳고 4년 뒤 둘째를 얻었다.) 이 질문은 같은 고민에서 솔루션을 얻지 못해 결정을 기피하거나 유예만 하고 있을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에게 참고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던진 것이었는데, 예의 솔직하면서도 당당한 답이 돌아왔다.

“육아는 여전히 부족하고 늘 고민하고 노력하는 부분인데요. 사실 제가 육아를 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준이에요. 부모님들께서 거의 맡아 주시고 있고, 당연히 남편도 함께 키워요. 남편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데까지 다 썼죠.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지금까지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었기에 혼자 무언가를 이루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가능한 많이 갖기 위해 일하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려고 애쓰는데요, 이를테면 일이 많을 때는 새벽에 출근하고, 저녁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거나, 가능한 직장 근처에서 외식을 하는 것도 소소한 노하우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틀림이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확히 구분하고, 자신과 타인이 처한 현실, 그리고 열정과 욕망을 읽으면서 겸허하면서도 당당하게 당면한 문제를 풀어보려는 이에게는 지혜의 신 아테나로부터 선물 같은 것이 당도하는 모양이다.

부모님은 남에게 폐 끼치지 말고, 비교하지 말고,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심어줘
문화예술 사건은 언제든 언론에 보도될 수 있다는 점 고려해야

김 변호사는 변시 합격 후 대형로펌 율촌에서 일하다가 동료 변호사와 법무법인 창경을 설립해 지금은 12인의 구성원을 두고 있는 경제공동체의 대표이기도 하다. 개인으로서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의 실습과 큐레이터 경험을 자신의 전문성으로 특화시켜 문화예술 관련 사건을 주로 맡아왔다. 그는 사건이 마무리될 때마다 많은 감사 인사를 받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야말로 사건 수행 과정에서 작품과 삶을 통해 치유되고 위로를 받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설명해달라고 했다.

“저작권 사건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사건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창작 경위나 구체적인 배경 설명을 들을 때가 많아요. 작가 분의 생각이나 철학 같은 것들요. 그 과정에서 전시장에서 잘 느끼지 못했던 작품과의 교감이 일어날 때가 종종 있어요. 음악을 하는 분들한테도 사건이 아니었으면 절대 알지 못했던 사연을 접하고 새로운 각성과 감동을 할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제 종교가 불교는 아니지만 불화 작업을 하던 작가님께서 종교적 경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런 게 제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더라구요.”

김 변호사는 예전의 어떤 인터뷰에서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문화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고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법률 전문가의 역할은 더 커지고 있다”면서 “문화·예술, 엔터테인먼트 등 무형의 창작 세계에는 고유한 특성과 언어가 존재한다”는 말로 이 분야의 특질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는 그 특성과 언어를 알아차렸다는 것일 텐데,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문화예술 분야의 의뢰인들에겐 크리에이티브한 면모가 있고, 전형성이 없다는 게 특성인데, 그런 점을 고려해 사건을 맡았을 때 훨씬 구체적으로 질의하고,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자세가 필요해요. 이런 의뢰인의 차원이 다른 사상이나 예술 철학적 함의를 읽어내어 그것을 서면 위에 반영해서 재판부를 설득하는 것이 제가 하는 일이죠. 변호사 입장에서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이런 걸 섬세하게 감별하고 읽어내고 표현해서 피드백할 때는 보람을 느껴요.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문화예술 사건들은 언제든 대중의 관심을 받을 가능성이 있고 언론에 보도될 수 있다는 사정까지도 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하이데거는 일찍이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다. 언어가 소멸된 곳에서 존재 역시 붕괴한다. 그곳은 침묵과 부재의 세계일 뿐이고 소통의 주체도 상대도 없다.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는 내밀한 호응 속에서 진실을 공유하는데, 그것이 미학적으로 이상화된 상황을 하이데거는 “존재가 말을 걸어온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가 작가와 작품의 감별사이자 평론가이자 해석학자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존재가 아닐까 싶었다. 하여 많은 문화예술의 창작자들에게 아마도 김정현 변호사와 법무법인 창경은 섬세하면서도 적확한 언어로 말을 걸어오는 드물고 아름다운 ‘존재의 집’이 아닐까 싶었던 것.

그렇다면 이제 막 기성세대로 진입하고 있는 김 변호사는 인생의 어떤 행로를 바꾸는 과정이라든지 어떤 사안을 선택하고 결정할 때 가장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기준이나 가치, 철학은 무엇일까. 앞으로도 그 앞에 그런 순간은 수없이 많이 당도할 테니까. 역시나 명료한 답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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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성향상 감상주의를 좀 경계하는 면이 있고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어떤 선택이나 결정을 할 때 제가 잘 해낼 수 있는 것인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습니다. 전문가로서 제가 가진 경험이나 지식을 활용해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김정현 변호사에게 10년 후에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아울러 지금 아홉 살, 다섯 살인 두 남매의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가장 심어주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도.

“법무법인 창경이 더욱 발전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아요. 우리는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젊은 로펌입니다. 일 잘하는 로펌이라는 점을 감사하게도 다른 사람들도 알아주고 있구요. 지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 더욱 훌륭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펌으로 성장시키고 싶어요. 그리고 아이들에겐 지식적인 부분보다 삶의 태도나 지혜로움을 알려주고 싶어요. 지금은 그런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어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당당하지만 무례하지 않는 태도를 가지면 좋겠어요. 넘어지더라도 앞을 향해 나아가는 힘이 있기를 바랍니다.”

김정현 변호사는 다른 맥락의 대화에서 “아이를 대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늘 제 자신이 행복하고 즐거운 엄마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고 “아이들이 독립적인 개체로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자유롭게 잘 살아나갈 것이라고 믿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이것은 견고하면서도 타인을 억압하지 않는, 시인 백석이 노래한 굳고도 정한 “갈매나무 같은” 자존감을 가진 이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일 것이다.

나는 이 인터뷰 원고가 김정현 변호사에 대한 응원가로도 읽히길 바라지만, 푸른 보석 같은 인재를 낳고 기른, 위대한 평범의 힘을 보여주신 부모님에 대한 존경을 담은 헌사로도 읽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쳤다.


김도언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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