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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만나는 법] 넷플릭스 코리아 정책 법무 총괄 정교화 변호사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지지 않는 마이너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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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에서 태어나고 자란 서울토박이에요. 외가 쪽은 북에서 월남하셨구요. 아버지가 공부를 잘하셔서 서울법대를 가셨고 고시 공부를 하고 싶어 하셨는데 집안 사정이 안 좋아서 은행에 들어가셨어요. 그러고선 산업은행 주재원으로 영국에 나가셨고 그 일로 저도 1980년대에 두 차례에 걸쳐 영국에서 살았어요. 초등학교 2학년부터 5학년, 중학교 3학년부터 고3까지였죠. 그런데 그 경험이 제 삶에 제법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한국이 국제 사회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을 때여서 저는 늘 중국 사람이냐 일본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았죠. 코리아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잘 모를 정도였어요. 현지 책을 보는데 박정희 대통령을 ‘dictator’(독재자)라고 표현한 것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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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력 ]

서울 명일여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정교화 변호사는 1996년 제3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9년 서울중앙지법에서 처음 법복을 입었다. 4년 뒤 법원을 떠나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적을 옮긴 후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등을 지낸 정 변호사는 2018년 11월부터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표변호사를 역임했다. 그는 2021년 4월부터 넷플릭스 코리아에서 정책 법무 총괄을 맡고 있다.

인터뷰 시작하자마자 정교화(50·사법연수원 28기) 변호사가 들려준 이야기는, 지금 그가 한국 넷플릭스에서 정책 법무 총괄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 소이연을 풀 수 있는 중요한 단서처럼 다가왔다. 성장기에 외국에서 생생하게 실감했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각성과 고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메타적 시선이 내면에서의 지향을 점진적으로 추동해 한국이 제작한 매력적인 콘텐츠를 세계인들에게 전달하는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리딩 기업으로 자신을 이끌었던 것은 아닌지. 나는 정 변호사의 삶에서 우연의 필연이라는 세렌디피티를 확인한 느낌이었다. 논리적이면서도 주어부와 술어부가 정밀하게 호응하는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저는 고3에 한국에 돌아와서 주재원 자녀 특례입학으로 법대를 갔어요. 정원 외로 별도의 시험을 봐서 들어간 거죠. 그러고선 사법시험에 합격했는데, 법대 진학과 사법시험은 아버지의 권유였어요. 아버지는 늘 여자도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법대를 가면 길이 많을 거라고 하셨어요. 저는 사실 법학이나 법조인에 대해 고루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공부에 대해서 일절 간섭을 안 하시던 아버지가 법대를 권하시면서 여성으로서 라이선스가 있으면 좋다고 하셨고, 저도 그것에 동의를 해서 사법시험을 보게 되었어요.”

말을 듣고 보니 자율성을 존중했던 아버지가 딸아이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에 현실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조언을 해준 셈이다. 그러니까 정 변호사에게 아버지는 ‘키다리 아저씨’나 어린 왕자의 ‘사막여우’처럼 멘토십을 발휘해 인사이트를 안겨준 존재였달까. 정 변호사는 문학적 소양이 다분했던 아버지로부터는 섬세한 인문적 기질을, 그리고 약대를 나오신 어머니로부터는 이성적이면서도 실리적인 품성을 물려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태생적으로 이상적인 밸런스를 갖추었던 셈.

정 변호사는 법원 판사로 법률가의 커리어를 시작한다. 판사로 진로를 결정한 데는 물론 연수원 성적도 탁월했지만 좀 단순해 보이는 동기가 있었단다. 연수원 때부터 영어 실력으로 유명했는데 ‘영어 잘하는 변호사’라는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이 마뜩치 않았다는 것. 자신은 여자이고 외국에서 살다 왔고 또 남자들이 압도했던 대학 출신으로서 주변인이라는 자의식이 있었기에 법조 경력의 시작은 오히려 중심에서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법원이 법조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고. 법원에서 일하는 동안 정 변호사는 많은 성장을 경험했고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그런데 돌연 그는 4년 만에 법원을 나와 김앤장에 들어간다.

“순환 근무 일환으로 지방에 가는 시기였는데요. 그때 아버지가 언젠가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어요. 아버지가 런던에서 은행의 자회사를 만드는 일을 하실 때 법적 자문을 하는 이들이 모두 외국변호사여서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국제업무를 하는 한국 변호사가 있으면 참 좋았겠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 거예요. 연수원 시절부터 통상에 관심이 있기도 했구요. 그래서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변호사를 시작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김앤장에 들어갔고 16년 동안 주로 국제 중재 업무를 맡았어요.”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 정신’
김앤장, MS 거쳐 넷플릭스로
상생과 공존, 통합에 많은 관심


그렇게 법조에서 20년을 보내고 난 정 변호사는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한국 법조시장이 작다고 느꼈어요. 시장이 큰 외국에선 변호사들이 로펌에서 로펌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커리어를 쌓기도 하는데, 한국은 그걸 기대하기 어려웠어요. 당시 4차 산업혁명이나 AI 같은 것들이 화두였는데, 그때 마침 마이크로소프트에 자리가 난 거예요. 저에겐 혁신의 아이콘인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데보다는 이미 40년이라는 연혁을 갖춘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새로운 혁신을 창출하는 미션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법조를 떠나 글로벌 기업에 들어갈 때 자신으로서는 국제중재 분야에서 쌓아온 소중한 커리어를 내려놓는 것이었기에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고 했다. 하지만 새로운 영역에 대한 호기심과 모험심이 이미 익숙해진 세간의 인정과 안정감을 압도했던 것일까. 정 변호사는 자신을 가리켜 남들보다 앞서서 길을 가는 파이오니어 같은 존재는 아니지만 마이너리티로서의 도전 정신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도전 정신은 다시 OTT라는 새로운 영역을 선두에서 개척하는 기업 넷플릭스를 향했다.

“넷플릭스는 다른 글로벌 기업과는 달리 콘텐츠라는 상품을 세계 각지에서 현지인들이 제작, 담당한다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세계 각지에서 만든 다양한 콘텐츠를 다시 전 세계인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에 끌렸죠. 글로컬리즘이라고 할까요. 이와 함께 ‘규칙이 필요 없는’ 넷플릭스 특유의 문화도 마음에 들었어요. 그게 뭐냐면 훌륭한 인재들을 모아놓으면 자잘한 규칙 같은 건 필요 없다는 넷플릭스만의 철학이에요. 여기서 훌륭하다는 건 업무에 대한 전문성뿐 아니라 윤리적인 감성과 책임감까지 포함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일은 잘 되게 되어 있다는 거죠. 요컨대 다른 회사들이 ‘직원은 가족이다’라는 말을 한다면, 우리는 가족이 아니고 프로농구팀이라고 표현해요. 각자의 포지션에서 재능을 발휘하면서 협업할 때 하고 필요하다면 트레이드도 하는 거죠. 저는 이런 자잘한 규칙이나 승인이 필요 없고 자율적이고 수평적이면서 책임감을 강조하는 넷플릭스 문화가 마음에 들었어요.”

여기서 정 변호사가 필시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나 인문적 감수성은 성찰이나 고독, 독서 등 고요한 통찰의 경험 속에서 성장하기도 하는데, 넷플릭스는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기업이라는 속성상 사용자들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콘텐츠를 제한 없이 제공하고 있다. 어린아이부터 노년층까지 일반 대중이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동영상에 너무나도 쉽게 노출되어 있는 것. 넷플릭스는 더군다나 이와 같은 환경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의 수익 모델을 만든 기업이다.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중독적인 콘텐츠가 인간의 지적 능력이나 비판적 지성, 상상력 등을 퇴행시킬 수 있는데, 이에 대해 넷플릭스는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물었다.

“저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 자체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더구나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보고, 나와 다른 시각을 이해할 수도 있죠. 하지만 말씀하신 지적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사회적인 공생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에도 이롭다고 보거든요.”

내친김에 OTT 시장에서 넷플릭스가 갖고 있는 지배적인 지위와 독과점, 수익의 배분 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세간의 의구심에 대해서도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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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잘 알고 있어요. 넷플릭스가 코로나가 확산되던 시기에 크게 성장한 건 맞아요. 하지만 우리 회사 역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회사예요. 디즈니플러스, 쿠팡플레이, 티빙, 왓챠, 애플TV 등 쟁쟁한 국내외 회사들과 생존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넷플릭스 혼자 시장을 지배하거나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독과점은 소비자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장기적으로 독이라고 생각하고 넷플릭스도 그걸 지향하고 있지 않아요. 기업은 기본적으로는 이윤을 추구하는 게 목적이지만 사회적인 환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성장 동력과 지속 가능한 경영이 확보되거든요. 넷플릭스도 그래서 콘텐트 제작자들, 그리고 원작자들과 상생하기 위해 지원과 투자를 계속 늘리고 있어요. 특히 한국에서 제작되는 콘텐츠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요. 더빙과 자막 작업도 30여개국 언어로 세심하게 신경 쓰면서 진심을 갖고 하고 있어요. 이런 작업을 통해 개인적으론 한국의 우수한 콘텐츠를 세계에 알리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는 흑백을 판결하는 판사에서 변신을 거듭해 이제는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혁신 기업에서 정책과 법무를 총괄하는 막중한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유독 여러 층위에서 갈등지수가 고조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 법원과 국제중재, 기업을 경험한 이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정 변호사는 퍼블릭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지 고민이 많다고 했다.

“어느 사회든 갈등은 있는데, 지금은 과거에 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과 자기 목소리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고 저마다 자기 목소리만 내려다 보니 갈등이 고조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목소리를 냈으면 상대방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기업 입장에서도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기업 문화와 제품에 반영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넷플릭스도 다양한 목소리와 가치 등을 반영한 콘텐츠들을 제공하는 데 관심이 많아요.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추기 위해 회사의 구성원 역시 여성, 소수자 등을 포함해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다양성과 포용성은 키우기 위한 기업의 노력이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하다고 봐요.”

정 변호사는 상생과 공존, 통합에 유독 많은 관심을 드러냈다. 예컨대 같이 어울려 사는 게 왜 중요한지, 장애인 현황은 어떤지, 여권 운동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 그런 것들이 보편적인 교육을 통해 사회 일반의 상식이나 감수성으로 장착되면 좋겠다는 것이다.

정교화 변호사에게 10년 후에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처럼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10년 후를 생각하기보다는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자 태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원칙을 갖고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했다. 자신을 마이너리티라고 했지만 현재의 의미를 알고 그것에 최선을 다하는 한 그는 지지 않는 질 수가 없는 무적(無敵)의 마이너리티일 것이다.


김도언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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