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0.]
I. 자본시장법상 부실공시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의 개요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상 공시제도는 증권시장 내 정보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증권거래의 공정성을 확보하여 종국적으로는 투자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자본시장법에서는 공시제도의 실효적 운영을 위해 여러 제재 규정을 두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민법상 불법행위책임의 요건을 다소 완화한 손해배상책임 규정입니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a) 손해배상청구권자가 중요사항의 거짓 기재 등을 증명하면(같은 법 제162조 제1항 및 제170조 제1항), (b) 손해액은 ‘주식 취득가격-변론종결 시의 주식가격’으로 추정되고(같은 법 제162조 제3항 및 제170조 제2항; 변론종결 전 주식 처분 시에는 ‘주식 취득가격-처분가격’), (c) 대표이사 등이 손해의 전부·일부와 문제된 공시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같은 법 제162조 제4항 및 제170조 제3항)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됩니다. 실무에서는 위 (c)의 인과관계 쟁점, 그 중에서도 부실공시가 밝혀진 이후 언제 정상주가가 형성되었는지가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로 다루어져 왔습니다.
II. 부실공시에 따른 손해액 산정에 관한 기존 대법원판례 - ‘정상주가’ 증명에 따른 손해액 추정의 복멸
위 (c)와 관련하여, 이른바 ‘정상주가’의 증명에 따른 항변이 활용된 사례들이 있었고, 대법원도 위 항변에 따른 손해액 추정의 일부 복멸을 인정하여 왔습니다(대법원 2016. 10. 27. 선고 2015다218099 판결, 대법원 2016. 12. 15. 선고 2015다243163 판결 등 참조).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거짓 기재가 밝혀진 이후 그로 인한 충격이 가라앉고 허위정보로 인하여 부양된 부분이 모두 제거되어 다시 정상적인 주가가 형성되면 그 정상주가 형성일 이후의 주가변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업보고서 등의 거짓 기재와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려워 손해배상액에 포함되지 않음
* 따라서 ‘정상주가가 형성되고 그 형성된 정상주가가 증명된 경우’ 손해배상액은 ‘취득가액과 정상주가 형성일의 주가 간의 차액’으로 산정됨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부실공시를 믿고 B 회사 주식 1주를 15만 원에 취득하였는데,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부실공시에 따른 충격이 가라앉고 허위정보로 인하여 부양된 부분이 모두 제거되어 주가가 10만 원(=정상주가)으로 다시 형성되었고, 이후 허위공시와는 무관한 다른 사정(가령 해당 산업의 새로운 악재, 금리변동 등)으로 인하여 변론종결 시 주가가 7만 원인 경우, A가 변론종결 시까지 해당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면 A의 손해는 8만 원(=15만 원-7만 원)이 아니라 5만 원(=15만 원-10만 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상주가를 증명하는 것은, 추정된 손해의 일부(3만 원)와 문제된 공시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점을 밝힘으로써 손해액 추정을 일부 범위에서 복멸하는 것입니다.
다만 기존 판결에서는 각 사안에서의 주가 추이 등에 기초하여 정상주가를 얼마로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개별적인 판단이 내려졌을 뿐, 정상주가를 밝히기 위하여 어떠한 사항들을 어느 수준으로 증명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까지는 제시된 바 없었는데, 최근 이에 대한 일응의 기준을 제시하는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대법원 2022. 9. 7. 선고 2022다228056 판결, 이하 ‘대상판결’).
III. 대상판결의 취지: ‘허위공시로 부양된 부분이 남아있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정도만으로는 정상주가라는 증명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없음
대상판결 사안의 주요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분식된 재무재표 공시(2012. 3. 16.~2013. 8. 14.)
② 정상(수정) 재무제표 공시(2013. 11. 14.)
③ 증권선물위원회, 한국거래소의 분식회계 사실 공표 및 한국거래소의 매매거래정지 조치(2014. 12. 4.)
④ 한국거래소의 매매거래정지 해제(2015. 12. 8.)
제1심은 ④ 시점 무렵의 주가를 정상주가로 판단하였으나, 원심은 ② 시점 무렵의 주가를 정상주가로 파악하였습니다.
대상판결에서, 대법원은 원심이 정상주가로 인정한 위 ② 시점의 주가에 대하여 단순히 허위공시로 부양된 부분이 남아 있는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이유만으로는 정상주가의 증명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주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위 ② 시점에는 비록 잘못된 기재가 정정되긴 하였으나 아직 증권선물위원회, 한국거래소의 분식회계 적발이 발표되지 않아서, 피고 회사의 신뢰성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주가에 온전히 반영되었다고 볼 수 없음
* 위 ② 시점 직후에는 주가에 큰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약간 상승하였음
* 매매거래정지 조치가 해제된 ④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주가가 급락하였는데, 이를 보면 ② 시점의 주가는 분식회계로 부양된 부분이 모두 제거된 것이었다고 볼 수 없음
대상판결은 손해액 추정의 복멸을 위한 정상주가의 증명과 관련하여 ‘정상공시 직후 형성된 주가를 정상주가로 보려면 허위공시로 부양된 부분이 남아있는지가 불분명한 정도에 그쳐서는 아니 되고 반드시 피고 회사 측에서 부실공시의 주가에 대한 영향이 제거되었음을 분명하게 증명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 첫 판결로서, 앞으로 같은 유형의 손해배상책임 사건에서 지침이 되는 판례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권순익 변호사 (soonik.kwon@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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