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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곤 회고록] 제2화 : 선거에 당선되다 (1)

2001년 ‘ICTY 상임재판관’ 선거 출마
첫 도전에 당선… ‘최연소’ 기록도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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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 선거에 당선되다 (1)

 

 

“대한민국의 권오곤 씨”

 2001년 3월 14일 뉴욕의 유엔총회장. 유엔총회 제55회기의 제95차 임시 총회에 191개 유엔 회원국의 대표들이 모여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의 상임 재판관 14명을 뽑는 선거였다. 당시 선거운동을 담당하던 우리 외교관들은 1차 투표에서 7~8명 정도가 당선되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2차 투표부터는 투표할 수 있는 표 수가 현저히 줄어서 선거운동 과정에서 얻은 지지 약속의 이행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1차 투표에서 당선되지 않으면 당선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1차 투표 결과를 읽고 있던 핀란드 출신의 하리 홀 케리 (Harri Holkeri) 유엔총회 의장은 벌써 10명째 당선자의 이름을 발표하고 있었다. 프랑스 후보였다. “아, 어려운가 보다!”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그때였다. 11번째의 당선자였다.

“대한민국의 권오곤 씨, 109표. (Mr. O-Gon Kwon, Republic of Korea, One hundred and nine.)”

와우, 당선되다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옆의 선준영 대사를 비롯한 외교관들과 나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만세!” 모두들 서로 얼싸안으며 내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 와중에 우리 외교관들 사이에서 나의 예상 득표수를 가지고 10불씩 걸었던 내기에서 득표수를 정확하게 맞춰 ‘상금’을 타게 된 내 고등학교 동기 문태영 참사관도 축하 인사를 받았다.

당선은 실로 예상 밖의 일이었다. 약 보름간의 선거운동을 위하여 뉴욕에 도착하였을 때, 서울 법대 후배로서 한국 유엔대표부에서 내 선거운동을 담당한 이기철 1등서기관은 내게 “선배님 약력을 보니 지금까지 떨어져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쓴맛을 보실 수도 있겠습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기철 서기관은 나중에 내가 ICTY 재판관으로 근무하고 있던 중에 네덜란드 대사로 부임해 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던 이 서기관이 선거일 바로 전날에는 내게 “어쩌면 당선될지도 모르겠습니다”고 말했다.


치열한 국제재판관 선거,
보통 1년 전 후 보자 결정해 선거운동 시작

한국은 두달 전에야 후보자 지명
총력 전 끝에 1차 투표서 당선 쾌거


사실 내가 ICTY 재판관 선거에 출마한 것은, 무모하다고까지 할 수는 없더라도, 실로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국제재판관은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높고, 그 나라의 국격도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국제재판관 선거는 경쟁이 심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후보를 낼 생각이었으면, 적어도 선거일 1년 전에는 후보자를 결정해서, 선거운동을 시작했어야 했다. 그러나 외교부가 나를 후보자로 내세우기로 결정하고 후보자 지명서를 제출한 것은 불과 선거 두 달 전인 2001년 1월 8일이었다. 더구나 ICTY는 8년 전인 1993년에 창설되었고, 재판관들의 임기는 4년이어서, 이번 선거는 세 번째 임기의 재판관들을 뽑는 선거였는데, 대부분의 현직 재판관들이 ‘업무의 연속성’을 강조하며 다시 출마하였기 때문에, 나와 같은 ‘신참’이 새로 비집고 들어가 당선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쨌든, 선거에서 당선되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선거운동에 관여했던 모든 관계자들과 함께 기분 좋게 만찬을 가졌다. 다음 날 새벽 호텔에서 눈을 떴을 때, 더럭 겁이 나면서 다음과 같은 독백이 절로 나왔다 :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서울에 있던 아내도 나로부터 전화로 당선 소식을 듣고 내게는 우선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갑자기 외국에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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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선거에서 새로 당선된 재판관 6인 (왼쪽부터 네덜란드, 몰타, 독일, 한국, 이집트, 미국 재판관, 2001년 11월 22일 신임 재판관 선서식이 개최되는 제1법정에 들어가기 직전에 재판관 출입문 앞에서 찍은 모습)

 


국제재판관의 선출 방식 및 임기
대부분의 국제재판소 재판관들은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다. 유엔이 설립한 ICTY와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 재판관은 유엔총회에서 선거로 당선되고, 유엔의 주된 재판소인 국제사법재판소(ICJ) 재판관은 유엔총회 및 안보리 두 기관에서 동시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모두 당선되어야 한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의 경우에는 독자의 당사국총회(Assembly of State Parties)에서 3분의 2 이상의 득표를 하여야 당선된다. 물론 크메르루주 특별재판소(ECCC)의 국제재판관과 같이 선거 절차 없이 임명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보통 각국 정부가 추천한 후보들을 유엔의 법률국(Office of the Legal Adviser)의 인터뷰 등을 거쳐 유엔 사무총장이 임명한다.

ICTY 상임 재판관(permanent judge)의 임기는 4년으로, 재선될 수 있다. ICJ, ICC 등 일반적인 국제재판소 재판관의 임기는 9년이지만, ICTY는 임시 재판소였던 점을 감안하여 그렇게 정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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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당일 유엔 총회 회의장(1차 선거 결과 발표 직전, 유엔TV 캡처)

 

재판관의 자격과 후보의 추천
ICTY 법률(Statute) 제13조는 “재판관은 높은 도덕성, 공정성 및 성실성을 갖춘 사람으로서 각 본국에서 최고 사법직에 임명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모두 변호사 자격자로 제한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후보가 될 수 있는 셈이다.

ICJ, ICC의 경우에는 국가 내에서의 후보 지명을 본국의 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재판관 전원으로 구성된 그룹(national group)이 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추천 절차를 규정하고 있기도 하지만, ICTY 법률은 이러한 국내 추천 절차에 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작은 나라’에서는 나중에 본선에서의 어려움이 있을지언정, 자국 후보가 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큰 나라’에서는 본선에서의 경쟁력은 높더라도, 우선 자국 후보가 되는 데에 경쟁이 심한 것 같다. 일례로 2001년도 ICTY 재판관 선거 시에 미국 후보는 클린턴 정부에 의해서 David Scheffer가 지명되었는데, 부시 대통령 취임 후 후보가 Theodor Meron으로 교체된 바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2023년도에 있을 ICC 재판관 선거에 나설 후보 선출에 경쟁이 심했던 것을 보면 이제 우리나라도 ‘큰 나라’가 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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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발표를 듣고 있는 한국대표부-유엔TV 캡쳐, 앞줄 왼쪽부터 선준영 대사, 필자, 이호진 차석 대사, 뒷줄 왼쪽부터 김두영 외교부 국제법규과장, 권태면 참사관, 하나 건너 문태영 참사관, 서 있는 최종현 서기관(후일 내게 송별 리셉션을 열어준 네덜란드 대사)

 

선거 절차
2001년도 선거 시에는 총 25명의 후보가 접수되었다. 유엔총회에서의 선거에서는 회원국의 재적 과반수의 표를 얻어야 당선된다. 선거 당시 유엔 회원국은 191개국이었기 때문에, 당선에 필요한 재적 과반수는 96표였다. 투표는, 몇 차례를 치르던 간에, 재적 과반수를 얻은 후보를 당선된 것으로 선언한 다음, 나머지 후보들 중에서 나머지 정원을 뽑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즉, 1차 투표에서는 후보자 전원을 기재한 투표용지에, 각국 대표가 14명까지의 후보에게 투표를 할 수 있다. 15명 이상의 후보자에게 투표된 용지는 무효로 되지만, 13명 이하의 후보자에게 투표된 것은 무방하다. 여기에서 96표 이상을 얻은 후보는 당선된 것으로 선언된다. 1차 투표 결과가 발표된 다음 즉시 그 자리에서 이어지는 2차 투표에서는, 1차 투표에서의 당선자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의 명단을 기재한 투표용지를 새로 만들어, 더 뽑아야 될 나머지 재판관의 숫자만큼의 후보자에게 투표를 하게 된다. 이런 형식으로 마지막 재판관도 과반수를 얻을 때까지 투표를 계속하게 된다.

1993년도 최초의 재판관 선거에서는 11명의 재판관을 뽑기 위하여 3일간에 걸쳐 총 9차례의 투표가 있었고, 1998년도의 두 번째 선거에서는 4차례의 투표가 있었다. 14명의 재판관을 뽑은 2001년도의 선거에서는 총 7차례의 투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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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결과
이번 선거에 입후보한 25명 후보자의 이름, 국적 및 주요 경력은 <표>에서 보는 바와 같다. 기존 14명의 ICTY 재판관들 중 재선에 나선 사람들은 11명이고, 나머지 세 나라에서는 현직을 교체해서 후보를 추천했다. 기존 14명의 ICTY 재판관들 중 재선에 나선 사람들은 11명이고, 나머지 세 나라에서는 현직을 교체해서 후보를 추천했다.

선거 결과를 요약하자면, 1차 투표에서 12명, 4차 투표에서 1명, 7차 투표에서 마지막 1명이 당선되었다. 현직 재판관 중 8명(이태리, 호주, 자메이카, 중국, 영국, 프랑스, 가이아나, 잠비아)이 재선되었고, 신규 재판관이 6명 당선되었다. 신규 재판관 중 2명(미국, 이집트)은 현직 재판관과 동일 국적의 후보가 교체 출마하여 당선된 것이기 때문에, 처음으로 재판관을 배출한 나라는 네 나라(몰타, 독일, 네덜란드, 한국)뿐이었다. 현직 재판관 중에서는 3명(콜롬비아, 포르투갈, 모로코)이 낙선하였고, 현직을 교체해서 출마하였다가 낙선한 후보(말레이시아)도 1명 있다. 당선된 재판관 중의 최연장자는 가이아나의 샤하부딘 재판관(70세)이었고, 최연소자는 48세의 나였다.


권오곤 전 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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