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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심리 중 임기 종료됐을 때 마음 무거웠다”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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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던 사건이 기억에 남는데,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탄핵 심판의 경우 중간에 임기가 종료돼 최종 결론까지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웠던 만큼 남은 분들에게 어려운 책무를 부득이 넘기고 떠나게 되어 마음이 매우 무거웠습니다."

지난 2017년 1월 31일 제5대 헌법재판소장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박한철(69·사법연수원 13기) 전 헌법재판소장이 지난달 31일 동국대 법대 연구실에서 가진 법률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사건은 재판 진행의 어려움은 물론 사건기록만 17만 쪽이 넘어 기록 양이 방대해 무척 힘들었습니다. 기록을 쌓아 놓으면 10여 미터(m)가 될 정도여서 재판소장실이 기록으로 가득 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변론을 18차례 진행했는데, 1회 변론 때마다 거의 1만 쪽에 가까운 기록을 읽어야 했고 정치권에서도 치열하게 다투던 사항이었기에 재판 진행도 다른 사건에 비해 훨씬 힘들었습니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심판정에서 엄격한 증거조사 절차에 따른 서증조사는 물론 중요한 증인들에 대한 신문도 철저하게 시행했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직접 들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19일 정부가 통합진보당을 상대로 낸 해산심판사건(2013헌다1)에서 재판관 8대1의 의견으로 인용 결정했다. 헌재는 통합진보당이 대한민국 헌법에 반하는 정당이기 때문에 해산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는 "정당이 어떠한 이념을 따르든 되도록 이를 용인하고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한다는 것이 우리 헌법의 정신입니다. 하지만 극좌나 극우 정당처럼 헌법의 기본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경우에는 이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헌법이 설정하고 있는 명확한 경계선이기도 합니다.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사건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내용과 중요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결정입니다."

박 전 소장은 다음으로 기억에 많이 남는 사건을 묻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을 꼽았다.

"사건의 비중도 그렇지만, 특히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국가적 위기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결론을 내지 않을 수 없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집중 심리를 위해 3번의 준비절차를 별도로 진행했고 1주에 2번 이상 재판을 진행하면서 강행군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사건의 무게가 중한만큼 엄격한 절차 진행은 물론 또 신중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습니다. 또 당시 소장과 재판관 한 분의 임기 만료가 목전에 도달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자칫 재판이 지연돼 7명의 재판관이 진행할 경우, 심리 진행은 가능하지만, 국론이 극도로 분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선고한다고 해서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염려됐습니다. 당시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서는 그때의 정치 지형상 후임 재판관 임명을 관철하기도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재판소 또한 국가 위기와 혼란 초래에 대한 책임을 면키 어려웠을 것입니다. 당시 퇴임사에서 무거운 마음을 내비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부산 출신인 박 전 소장은 제물포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3년 부산지검 검사로 임관해 법무부 검찰4과 검사, 헌재 파견 연구관, 대검찰청 기획조정부 기획 과장, 서울지검 형사5부장, 대전지검 차장, 서울중앙지검 3차장, 법무부 정책홍보관리실장, 울산지검장, 대검 공안부장, 서울동부지검장 등을 역임했다. 2011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의 지명으로 재판관에 임명된 박 전 소장은 2013년 4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검찰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헌재소장이 됐다. 2017년 퇴임 후 서울대 로스쿨에서 초빙교수, 서울시립대 로스쿨 및 법학연구소 석좌연구위원 교수, 동국대 법대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박수연·안재명 기자 sypark·j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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