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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만나는 법] 양건 전 감사원장, “은퇴 이후의 삶, 고위공직자의 가장 아름답고 모범적인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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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알 너머로 반짝이는 안광이 예사롭지 않았다. 낡은 서가에서 100년 동안의 고독을 깨고 나와서는 태초의 햇볕과 마주친 견유학파의 깊고 그윽한 눈동자였달까. 역시나 그가 말문을 열었을 때 넉넉한 미소와 함께 현자의 문기(文氣)가 바투 드러났다. 양건 전 감사원장(75)은 동대문야구장에서 고2때 야구선수로 출전해 안타를 쳤던 이야기부터 꺼냈다. 물경 58년 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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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력 ]

함경북도 청진 출신인 양건(75) 전 감사원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 텍사스대학교 대학원에서 비교법학 석사, 서울대 대학원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숭전대 법학과 교수, 한양대 법대 교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입법위원회 위원장, 한양대 법과대 학장, 한국교육법학회장, 한국공법학회장, 대검찰청 감찰위원회 부위원장, 국민권익위원장, 세계옴부즈맨협회 아시아지역 부회장, 한양대 로스쿨 교수 등을 지낸 뒤 2011년 제22대 감사원장을 역임했다. 1987년 한국공법학회 학술장려상, 2002년 제6회 한국법학원 법학논문상을 수상했다. 헌법학 대가 고(故) 김철수 전 서울대 명예교수의 제자 중 한 사람이다.

“그날 아버지도 경기장에 오셨는데, 제가 빗맞은 안타를 쳤던 기억이 나요. 저희 때는 고등학교 시절을 즐겁게 보냈어요. 2학년 때까지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놀고 3학년 때 바짝 입시공부를 하는 식이었어요. 저도 3학년이 돼서야 입시 준비를 했어요. 그러다가 대학에 가니까 철이 나더라구요. 의식 속에 지적 각성과 함께 어떤 분열이 일어났지요.”

양 전 감사원장은 함경북도 청진 출생이다. 할아버지 때 만주 용정에 정착했는데, 해방 이후 청진에 내려왔단다. 아버지는 문방구를 수입하는 합자회사를 운영했고 국제적인 감각이 있는 분이었다. 그러다가 교유하던 지인들이 사상 문제에 연루되자 월남을 결심한다. 양 전 원장은 그 날짜를 정확히 기억한다. 첫돌이었던 1948년 9월 9일이었고 어머님의 등에 업혀 한탄강을 건넜단다. 남쪽으로 내려온 이후 아버지는 화공약품을 수입하는 업체를 운영하며 권속을 돌봤다. 외가 쪽은 명문가로 어머니는 광명여고를 졸업하고 청진에서 은행원으로 재직했다고 한다. 교육열이 남다른데다 양건 자신이 워낙 영특했기에 서울사대부속국민학교와 경기중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다.

양건 전 감사원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초대 국민권익위원장을 맡고 이 대통령의 집권 후반부에는 감사원장으로 임명되었다. 보통 법관이나 법조인 출신들이 맡아온 감사원장을 학자 출신으로서는 처음 맡게 된 것. 공직생활 외엔 평생 대학의 강단을 지킨 그 선택의 배경에는 뭐가 있는지 궁금했다.

“대학 시절 제 안에 두 가지 상반된 욕구가 있었어요. 글을 쓰는 문사가 되고 싶은 마음과 함께 정치적인 행동가에 대한 야망이 있었죠. 그래서 정치에 뜻을 품기도 했지만 결국엔 정치에 뛰어들진 않았어요. 소심한 측면도 있었고요. 그런데 가만 보니 정치와 가장 가까운 법학이 헌법이더라구요. 그래서 헌법학을 공부하게 됐죠. 그 무렵 나중에 노동부 장관을 지내는 노동법 전문가 이영희 선배가 학회 서클을 지도했는데 그분으로부터 제법 영향을 받았어요. 그 선배가 일본 원서를 읽어보라고 권해서 일어 공부를 위해 청계천 헌책방에 나가 사전이나 원서를 구입해 읽는 동안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때의 즐거움에 눈을 뜨게 된 거예요. 그게 학문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죠. 동숭동에서만 6년을 공부했는데, 돌아보면 그 시절이 제 삶에서 가장 순정했던 순간이었어요.”

감사원장 양건은 취임하자마자 야심차게 대대적인 사학재단 감사에 돌입한다. 당시 대학 한 학기 등록금이 1천만 원을 돌파하면서 대학의 방만한 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질 대로 높아졌을 때였다. 당시 이야길 들려달라고 했다.

“국공립·사립대학을 전면적으로 감사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고 감사인력만 400명 이상을 투입했어요. 제가 한양대 교수였고 MB는 고대 출신이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두 대학에서 유독 감사에 비협조적이고 저항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저는 고대와 한양대의 감사가 이번 감사의 전체 성패를 좌우한다고 봤어요. 그래서 더 철저히 했죠. 제가 발심(發心)이 어려운데 한번 발심하면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어요. 감사가 지지부진하자 각 팀장들을 토요일에 소집해서는 고대 담당 팀장을 지목하면서 엄하게 다그치기도 했어요. 결국 사학감사의 결과와 반응이 모두 좋게 나왔죠. MB가 고마운 것이, 결과가 좋아서이기도 했겠지만 개입을 안 했어요. 취임해서 시작한 감사이고 성과도 있어서 보람을 느낀 일이었어요.”

양 전 원장이 공직을 맡은 건 4년 정도다. 그 나머지 시간을 그는 헌법학자로 살았다. 헌법 연구의 권위자로서 한국의 국체, 통치 체제에 대한 생각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1987년에 제정된 현행헌법은 5년 단임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는 과연 현재 우리 사회와 국가 시스템에 가장 효율적인 통치 체제를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대통령 5년 단임제는

국정 연속성에 심각한 문제


“저는 어떤 제도가 가장 리스크가 적느냐를 따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재 5년 단임제는 국정의 연속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그리고 4년에 한 번씩 뽑는 국회의원 임기와도 어긋나서 여소야대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과 함께 비효율을 피할 수 없어요. 그래서 5년 단임제는 반드시 고쳐야 해요. 저는 결국 그 나라의 정치 문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각제를 많이들 얘기하는데, 같은 내각제라고 해도 북유럽과 서유럽, 남유럽이 다 다르거든요. 내각제는 선거를 통해 의석수에 따라 일원적으로 정부가 구성되고 거기서 정당성이 나와요. 그런데 대통령제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따로 치러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원적인 정당성이 나오게 돼요. 여소야대 상황 같은 게 그것이죠. 이런 구조는 타협적인 정치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요. 통치체제의 문제는 국지적인 관점에서 볼 게 아니라 지구적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고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를 드러내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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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내고 감사원장을 지낸 그의 눈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감사원과 권익위원회 위원장 사이의 힘겨루기가 어떻게 비쳐지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논평하기가 상당히 미묘하고 까다로운 사안이었을 게 분명한데, 그는 너무나도 정확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총평을 내놓았다.

“초대 위원장으로서 권익위에 애착이 있는데요. 저는 먼저 권익위원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정확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권익위는 총리실 직속 행정기관이지만 사정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사무적으로는 독립기관이에요. 원론적으로 위원장의 임기는 지켜지는 게 맞아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원론만 말하는 게 맞지 않을 때가 있어요. 권익위는 사정 기능을 가진 독립기관이기 때문에 정치인 출신이 위원장을 맡는 게 부적절해요. 그런데 현재 위원장도 그렇고 보수정권에서도 정치인 출신들이 권익위원장에 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거기에 문제의 불씨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감사원장을 하다가 정부와 마찰을 빚고 중도 사퇴한 후 정치로 직행한 최재형 원장의 케이스는 어떻게 봐야 하냐고 물었다. 아울러 지금의 정치 상황에 대한 비평도 부탁했다. 


최재형에 가해진 시련은

내가 겪은 것보다 훨씬 심한 것


“감사원장이 임기를 채우지 않고 중도에 사퇴한 후 정치에 참여하는 게 정상적이지는 않죠. 그런데 최재형 원장 케이스는, 내가 가만 보니 좀 특별한 게 있어요. 이건 나의 느낌인데, 최 원장의 정치 참여는 사적인 야망이 아니라 하나의 윤리적 결단이나 소명의식의 소산으로 보여요. 최 원장이 추진한 탈원전 정책 감사에 가해진 시련은 내가 겪은 것보다 훨씬 심한 것인데 그것에 맞서는 걸 보면서 용기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1987년 이래 지난 정부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일련의 정치가 최악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정치는 경제적 이익까지를 포함하는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에요. 그리고 상대방을 죽이려 드는 적대 정치죠. 정치는 공의를 보면서 해야 하는데, 이런 정치로는 정말 길이 안 보여요.”


지금은 불확실성의 시대

 법은 질서 유지를 가장 상위 목표로


비관적 전망에 따른 당연한 입장이겠지만 그는 혹여 공직제의가 오더라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실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설 때 모종의 제안이 있었는데 수용하지 않았다고. 정치와 공직이 과연 어떤 의미를 발생시킬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말도 했다. 일순 그의 초상에 그가 탐독했다는 최인훈 소설 《회색인》의 주인공 독고준의 고독이 겹쳤다. 이상과 현실을 교직하는 인간의 길에 대한 깊은 응시와 성찰, 그리고 침사 끝에 이 영민한 헌법학자가 알아버린 진실은 무엇일까.

“제가 볼 때 지금은 불확실성의 시대예요. 이런 상황에서 법은 질서 유지를 가장 상위 목표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이유에서 법조인은 기본적으로는 보수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게 맞아요. 법이 진보를 말할 때는 진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세력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할 때만 예외적으로 허용돼야 해요. 미국에서 인종차별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때 대법원에서 차별이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해결한 것이 그런 사례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놓아두고 싶다


알려진 것처럼 그는 정권이 바뀌는 와중에 정치적 논란과 외압과 관련해 감사원장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퇴진했다. 그때의 상황에 대한 입장을 털어놓으면 어떻겠느냐고 내심 유도했는데, 양 전 원장은 초탈한 듯한 눈빛과 목소리로 그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지나간 일에 대해 구구절절 언급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했다.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다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놓아두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화제를 돌린다.

“제가 은퇴하고 10년차인데, 법이론서와 법철학 책, 산문집 등 세 권의 책을 냈어요. 책을 쓰는 게 참 행복했어요. 대학에 있을 때는 저 자신이 학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그제서야 학자가 됐구나라는 느낌이 들더라구요.(웃음)”

그는 돌연 다시 야구 이야기를 꺼냈다. KBO에서 잠실야구장을 돔구장으로 개축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당신은 그걸 반대한다고 했다. 그가 이유로 든 게 뭐냐면 야구장을 지붕으로 덮어버리면 하늘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야구는 하늘을 보는 스포츠인데 그 매력이 사라진다고.

짐작컨대 양건 전 감사원장은 비관적 낭만주의자이면서 지적 에스프리가 빛나는 현실주의자이고 또 아이디얼리스트로도 보였다. 그 세 가지 지향이 그의 영육 안에서 통합되어 미증유의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은퇴한 자리가 현직보다 빛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인이 아닐까 싶었다.

그가 지난 8월 펴낸 산문집 제목은 《하산길》이다. 삶이라는 등정을 마치고 이제 내려오는 길에 대해서, 그 길의 새삼스러운 풍경에 대해서 깊고 높은 사유가 가득한,문학적 기품이 미만(彌滿)한 귀한 증언집이다. 그는 만 한 살 때 어머니 등에 업혀 강을 건너 이곳에 다다랐다. 내가 생각할 때 그가 올랐던 가장 높은 고지는 어머니의 등이었을 테다. 그리고 그 등에서 내려온 후 그는 자기 몫의 삶을 피하지 않고 충실하게 감당했다. 하산길의 아름다움은 그가 올랐던 곳의 의미를 아는 이에게만 잘 보이는 법이다.


 

김도언 시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