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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 일루미나(Illumina)의 그레일(GRAIL) 인수와 ‘Killer Acquisition’ 규제

[2022.10.05.]



일루미나는 세계 최대 유전자 분석장비 제조기업입니다. 그레일은 2016년 일루미나에서 분사한 유전자 분석기반 암 진단 기업입니다. 그레일은 혈액검사로 여러 암을 조기에 발견해내는 기술(Multi-Cancer Early Detection, ‘MCED’)을 개발하여 급격하게 성장하였고 일루미나는 2021. 8. 그레일을 100%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미국과 EU의 경쟁당국은 일루미나의 그레일 인수가 유전자 분석기기 시장의 경쟁을 제한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기업결합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EU 일반법원(General Court)은 지난 7. 13. “일정 매출액 기준을 넘지 않는 기업결합도, EU 기업결합 규정(EU Merger Regulation; ‘EUMR’)[1] 제22조에 따라 EU 집행위원회가 조사를 개시할 수 있다.”라고 판결하여, ‘Killer Acquisition’을 규제하고자 하는 경쟁당국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반면 미국은 2022. 9. 1.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제기한 반독점 청구소송에서 청구를 기각하며, 일루미나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각주1] 정식 명칭은 Council Regulation (EC) No. 139/2004 on the control concentrations between undertakings입니다.



1. “Killer Acquisition”과 기업결합 규제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경쟁당국은 기업결합을 통한 독과점 시장구조의 형성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결합을 신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자산총액 또는 매출액의 규모가 3,000억 원 이상인 기업이 자산총액 또는 매출액의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기업과 기업결합을 할 때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를 해야 합니다.[2] EU 역시 기업결합 당사자들의 전 세계 매출액이 50억 유로 이상이고, 기업결합 당사자 중 최소 두 기업 이상의 각 EU 내 매출액이 2억 5천만 유로 이상일 경우 기업결합 신고의무가 발생합니다.[3]


다만 형식적으로 자산총액 또는 매출액의 규모만을 기준으로 기업결합 신고의무를 부과할 경우 경쟁이 제한되는 기업결합이 방치될 우려가 있습니다. 장래 성장가능성이 높지만 당장 매출액 규모가 크지 않은 스타트업에 대한 인수ㆍ합병이 이에 해당합니다. 해당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가진 기업은 미리 그 회사를 인수하여 잠재적 경쟁자를 미리 제거(‘kill’)하고자 하는 유인이 있습니다. 이른바 'Killer Acquisition'입니다.


우리나라는 2020년 법 개정으로 ‘기업결합의 거래규모가 6,000억 원 이상’이고 ‘피취득회사가 국내에서 상당한 활동을 하는 경우’ 등에는 기업결합신고를 하도록 하였습니다.[4] 반면, EU는 입법 대신에 기존 EUMR 제22조 제1항의 해석을 통해 ‘Killer Acquisition’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각주2] 공정거래법 제9조, 제11조

[각주3] EUMR 제1조 제2항

[각주4] 공정거래법 제11조 제2항, 동법 시행령 제19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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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항을 문언 그대로 해석하면 EUMR 제1조에서 정한 매출액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라도, ① 회원국 간의 거래에 영향을 미치고, ② 회원국 내의 경쟁상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을 때에는, 그 회원국은 EU 집행위원회(EU Commission, 이하 ‘집행위원회’)에 기업결합에 대한 조사를 청구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조항이 도입된 당초 목적은, 경쟁법 체계를 갖추지 못한 회원국들을 대신해서 집행위원회가 조사를 해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대부분의 회원국이 경쟁법을 마련하여 직접 기업결합 조사를 했기 때문에 이 조항이 적용될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간 회원국들이 집행위원회에 조사를 청구하는 경우는, EUMR 제4조 제5항에 따라 여러 회원국의 국내법상 조사대상인 건을 집행위원회에 조사해 달라고 하는 경우였습니다. 따라서 집행위원회는 회원국 국내법상 조사대상이 아닌 경우에는, 제22조에 따른 조사 청구가 있더라도 조사하지 않는 관행을 장기간 형성하였습니다.


집행위원회는 2021. 3.부터 정책을 바꾸어, 제22조에 따라 ‘Killer Acquisition’을 규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즉, ‘매출액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회원국 국내법상으로도 조사대상이 아닌, 작은 기업에 대한 기업결합이라도, 집행위원회에 조사를 청구할 수 있다.’는 해석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5]


일루미나의 그레일 인수는 집행위원회가 제22조에 대한 변경된 해석을 처음으로 적용한 사건이었습니다. 제22조를 근거로 ‘매출액 요건에 미달하고, 회원국 국내법상으로도 문제되지 않는 기업결합에 대해서도 집행위원회가 조사’를 한 것입니다.


[각주5] 상세 내용은 집행위원회에서 발간한 "Commission Guidance on the application Of the referral mechanism set out in Article22 of the Merger Regulation to certain categories Of cases (2021.3.26,)” 참조

 

 

2. 일루미나/그레일 기업결합과 해외 규제현황

일루미나는 세계 유전자 분석기기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ext-generation sequencing, ‘NGS’) 장비의 주요 공급사 중 하나입니다. 그레일은 혈액, 타액, 소변 등에 존재하는 핵산 조각을 분석해 암 등 질병의 진행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액체생검기술 보유 기업입니다. 2016년 일루미나가 액체생검 사업부를 분할하면서 설립되었습니다. 최근 그레일은 NGS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혈액검사를 통해 여러 암을 조기에 발견해내는 기술(MCED)을 내세우며 급격히 성장했고,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1억 달러의 투자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에 일루미나는 2021. 8. 기존에 가지고 있던 그레일 지분 15% 외의 나머지 지분을 71억 달러(약 8조 원)에 인수하여 그레일을 100%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집행위원회는 2021. 2. 19. 일루미나/그레일 인수 건 조사를 희망하는 EU 회원국은 EUMR 제22조에 따라 집행위원회에게 조사청구를 하도록 안내(‘Invitation Letter’)하였습니다. 이에 프랑스 경쟁당국이 해당 건에 대해 집행위원회에 조사청구를 하였고 집행위원회는 2021. 4. 19. 조사를 개시하였습니다. EU 일반법원은 이러한 집행위원회의 조사절차가 정당하다고 하면서, “매출액 요건에 미달하고, 개별 회원국법상 조사대상이 아닌 기업결합의 경우에도, 회원국의 조사청구를 받은 경우 집행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주된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EUMR 제22조 제1항의 문언은 “어떤 기업결합이든(any concentration)”이라고 되어 있으므로, 조사청구 회원국의 국내법상 조사대상인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조사청구를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일루미나는 “EUMR 제22조에 대한 확립된 해석에 따르면, 조사청구(referral)를 하는 국가의 국내법상 조사권한이 있어야 EU에 대한 조사청구도 효력이 있는 것인데, 이 사건에서는 청구한 회원국들의 국내법상 조사권한이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이는 제22조의 문언에 없는 요건을 임의로 추가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조사청구기간도 문제도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일루미나는 “EUMR 제22조 제1항이 조사청구는 기업결합 사실이 관련 회원국에 알려진(made known) 때로부터 15일 내에 해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고, 이미 일루미나가 언론보도를 통해 기업결합을 발표해서 프랑스 경쟁당국이 기업결합을 안 때로부터 15일이 이미 경과한 시점에 프랑스 경쟁당국이 조사를 청구했다고 주장하였으나, 일반법원은 조사청구기간(15일)의 기산점인 ‘회원국에게 알려진(made known) 시점’을 달리 해석하였습니다. 각 회원국의 경쟁당국이 사전조사를 하기 충분한 시점에 회원국들에게 알려졌다고 보아야 하므로 집행위원회가 각 회원국에 Invitation Letter를 보냈을 때 비로소 알려졌다는 이유였습니다.


셋째, 집행위원회의 조사 개시 결정은 신뢰보호의 원칙을 위반하였다는 일루미나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일루미나는 EU의 경쟁담당 집행위원인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Margrethe Vestager)가 2020년 당시 회원국들에 곧 조사청구 제도에 변화가 있을 테니 당분간은 조사청구를 하지 않도록 권장했으므로, 일루미나 입장에서는 본인의 기업결합도 대상이 안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주장하였으나, 일반법원은 베스타게르 집행위원의 발언은 일루미나가 기업결합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확신을 형성할 만큼 명확한 것이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이번 판결은 EUMR 제1조의 매출액 요건에 미달하고, 개별 국내법상으로도 조사대상이 되지 않는 기업결합에 대해 집행위원회가 조사를 개시할 수 있는 선례를 명확히 구축한 것으로 보입니다. 베스타게르 집행위원은 EUMR 제22조를 ‘Killer Acquisition’의 조사에 활용하겠다고 발표하였고, 2021년에는 집행위원회가 이를 구체화한 가이드라인을 발간했는데, 최초로 일반법원에서 그 정당성이 인정된 것입니다.


특히 일루미나는 유럽 내 매출액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루미나의 기업결합에 대한 관할권이 인정된 것이어서, 기업결합을 추진하는 글로벌 기업의 EU 경쟁당국에 대한 대응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역시 일루미나의 그레일 인수 절차가 완료되기 전인 2021. 3. 일루미나를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MCED에 적합한 NGS 장비의 공급회사는 전 세계에서 일루미나가 유일하고, 일루미나가 그레일을 인수할 경우 일루미나가 그레일의 경쟁업체에 가격을 부당하게 인상하거나, 공급을 제한하거나, 제품 또는 서비스의 질을 하락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MCED 시장에서의 경쟁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FTC의 행정법판사(Administrative Law Judge) D. Michael Chappell은 2022. 9. 1. (1) 일루미나의 MCED용 NGS 장비 공급사로서의 독점적 지위는 그레일 인수 전부터 존재했고, (2) 일루미나의 표준 공급계약(Open Offer)이 일루미나의 미국 내 모든 NGS 장비 구매 고객에게 열려있는 점 등을 들어 연방거래위원회의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김지홍 변호사 (ghkim@jipyong.com)

장품 변호사 (pjang@jipyong.com)

안재민 변호사 (jmahn@jipyong.com)

이용익 외국변호사 (yilee@jipy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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