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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의 회고록]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14)

3부 채색 (彩色) ⑭ 소용돌이 속에 거쳐 간 요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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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뿔과 송곳니를 함께 지닌 맹수의 화석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1992. 7. 29. ~ 1993. 3. 16.)

  

1993년에 문민정부가 출범하기 전 1992년 7월 29일자 인사 발령에 따라 나는 제33대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직에서 제9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으로 전보됐다. 그때는 노태우 정부 말기여서 1992년 12월 18일 제14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돼 다음 날 김영삼 씨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됐다. 그의 취임식은 1993년 2월 25일로 예정돼 있었다.


나의 7개월 남짓한 중앙수사부장 재직 중에 내가 상사로 모신 법무부 장관은 4명, 검찰총장은 3명이나 된다. 1992년 10월 9일 김기춘 장관 후임으로 대법관 출신인 이정우(李正雨) 씨가, 1993년 2월 26일 박희태(朴熺太) 씨가, 1993년 3월 8일 현직 검찰총장이었던 김두희(金斗喜) 씨가 각 법무부 장관직에 취임했다. 정구영 검찰총장이 임기를 마친 다음 그의 뒤를 이었던 김두희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에 기용되면서 그 후임으로 대검 차장검사인 박종철(朴鍾喆) 씨가 검찰총장으로 승진 임용됐으므로 그 숫자의 합계가 7이다. 노태우 정부가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로 이어지기까지 숨 막히게 돌아가는 법무 검찰 수뇌부의 개편이 이러했다.


1961년에 대검찰청에 중앙수사국이란 기구가 발족된 이래 1973년에 이 조직은 대검찰청 특별수사부로 이름을 바꾼 8년 뒤, 1981년 4월에 다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로 확대 개편됐다. 내가 법무부 법무과장직을 마치고 서울지방검찰청의 특별수사 제3부장으로 임명된 그해였다.

 

이 조직이 30년을 넘기면서 검찰의 숱한 비화를 남기며 이어져 내려오다가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인 그해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중앙수사부를 폐지하는 정부 조직 개편내용이 대통령 당선인에게 보고되었다. 박 대통령 재임 중인 2013년 4월 23일 중앙수사부의 현판 하강식이 있었으므로 역사적으로만 본다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라는 조직은 1981년 4월부터 2013년 4월까지 만 32년간 존속했던 검찰총장 직할 수사기구였다.


초대 이종남 씨로부터 31대 김경수 씨에 이르기까지 31명의 검사가 이 조직의 수장이었다. 사람마다 재직 기간이 다르기는 하나 평균적으로는 1년 정도 이 직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명단을 훑어보니 일세를 풍미했던 당대의 명검사들이 그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았음을 알겠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최초 발족 당시에는 제1과 내지 제4과를 두어 각 과가 독자적으로 수사하고 공소를 제기할 수 있었다. 즉, 검사인 각 과의 과장이 서울지방검찰청의 부장검사 겸직 발령을 받아 수사하고, 공소를 제기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이었다.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의 개정으로 중앙수사부 출범 3년 뒤인 1984년에 과학수사운용과가 새로 설치되었고, 1991년 8월 1일 과학수사지도과가 다시 생겼다. 직접 수사가 아닌 수사 지원 기능이 추가된 것이다.

이런 조직이 1998년 3월에 대대적으로 개편돼 과학수사지도과와 과학수사운용과 등 두 과는 대검찰청 총무부로 소속이 변경됐다. 중앙수사부 제4과가 폐지되면서 수사기획관으로 명칭이 변경됐으며, 범죄정보관리과가 새로 신설됐으므로 숫자로는 한 과가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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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3일 열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현판 강하식’. 중수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제공=연합뉴스>

 

 

나의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기획단을 꾸려 법무 검찰 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한 내용은 이미 언급한 한 바 있다. 그 장기계획에는 중앙수사부의 개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이 들어 있었다. 나의 대검 차장 재직 중 직접 수사 기능을 축소하고, 자체 수사와 일선 검찰청 특별수사부에 대한 총괄 조정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수사기획관을 두는 직제 개편을 해 뒀었다. 그러나 이런 조치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중앙수사부의 직접 수사 기능이 결국 검찰의 아킬레스건이 돼 이 조직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중앙수사부에서 수사를 담당하는 각 과의 직제를 보면 공통적으로 "검찰총장이 명하는 범죄 사건의 수사"라는 15글자가 명시돼 있다. 수사와 공소를 제기하는 검사의 이름은 검찰총장의 성명과 다르겠지만 이 15글자의 뜻만 풀이하면 검찰총장이 곧 주임 검사라는 뜻이다. 이런 수사가 필요한 경우가 전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으나 과연 검찰총장이 직접 나서서 명령하는 수사가 늘 발생한다고 기대하기는 어렵고, 우리 검찰의 조직 원리에 비춰 보면 이런 일이 자주 생겨서는 안 된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에 따라 독립관청인 전국의 모든 검사가 검찰총장의 직무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 법리이기는 하나, 검찰총장의 직무상 지휘는 대검의 소관 부서를 통해 수사를 담당하는 지방검찰청의 검사장에게 전달돼야 하며 이런 지휘체계가 정상적이다. 그러나 이런 지휘체계와 달리 대검찰청의 수장(首長)인 검찰총장이 그 소속 검사를 직접 지휘해 수사를 진행한다면 일사불란한 수사에 상응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수사에 따른 지휘 책임은 고스란히 검찰총장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수사라는 것은 그 결과를 예측해 벌이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결과가 있을지 도사 같은 점쟁이가 아닌 한 결과를 알 수는 없다. 아니, 불가능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수사라는 것인데, 검찰총장이 직접 나서서 칼을 휘두른다고 해서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국민은 칭찬에 매우 인색하다. 성정이 극히 괴팍해 사소한 잘못을 크게 꾸짖을망정, 역사적인 평가를 받을 만한 수사 공적에 대하여는 이를 당연히 여기고 한마디의 칭찬도 없다. 그것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국민의 속성이다.


칭찬받을 일은 별로 없고, 비난받을 가능성, 아니 개연성만 존재하는 이런 수사라는 이름의 검찰 활동에 검찰총장이 직접 뛰어드는 것이 곧 중앙수사부의 수사이다. 지방검찰청의 수사가 잘못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검찰총장의 책임으로 귀속될 것이다. 그러나 중앙수사부의 수사 결과는 최종적이고도 직접적이므로 이것이 바로 중앙수사부의 아킬레스건이다.

 

대검 중앙수사부는 총장 직할 수사기구
대검의 수장인 총장이 직접 수사 지휘
날카로운 뿔과 송곳니를 함께 지녀
결국은 검찰의 아킬레스건으로 되어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원회서 폐지 건의

2013년 4월 중앙수사부 현판 내려
창설 만 32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재임 기간은 참으로 어지러운 세상
재임 7개월간 장관 4명·총장 3명 모셔
시절을 잘못 만난 ‘중앙수사부장’으로

  

옛말에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 했다. 입술이 없으면 찬바람에 곧바로 이가 드러나 시려 오는데 무슨 대책이 있겠는가? 사정이 이와 같으므로 중앙수사부란 수사기관은 장수(長壽)를 바라기 어려운 것이 그 태생적 한계였다. 검찰총장을 향해 직접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려고 잠정적으로 수사기획관에게 입술 역할을 맡기려 한 것이 나의 대검 차장 시절의 생각이었으나 다가오는 크나큰 시련을 오래도록 막을 수는 없었다.


풀을 먹이로 삼아 되새김질하는 소와 양 같은 초식동물은 날카로운 윗송곳니가 없는 대신에 적을 물리칠 강건한 뿔이 있고,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호랑이 같은 육식동물은 살을 물어뜯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있으나 뿔이 없다.


검찰이란 수사기관의 주인이라고 자처하는 국민은 날카로운 송곳니와 무서운 뿔을 함께 가지고 태어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었을까? 아마도 전대미문의 괴수(怪獸)로 생각했을 것임이 거의 틀림없다. 이리하여 화려한 명칭으로 막강한 수사력을 한껏 발휘하던 중앙수사부는 20세기 말의 화석(化石)으로 역사 속에 묻히게 된 것이다.


정구영 총장의 퇴임 전까지 중앙수사부에서 수사 또는 지휘한 사건으로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던 대형 사건이 여러 개 있어서 이에 관한 내용이 내 업무 일지 소상히 기록돼 있으나 여기에 쓸 필요는 없다. 국민의 칭찬을 받은 바 없고, 사소한 질책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일선 지방검찰청에서 벌이는 각종 수사 상황을 철저히 점검해 어떤 질책도 받지 않도록 철저히 지도·감독하는 것이 중앙수사부 본연의 임무라고 다짐하면서 업무를 추진했다.

이미 법무 검찰 수뇌부의 이동 내용에서 본 바와 같이 나의 중앙수사부장 재임 기간은 말 그대로 참 어지러운 세상이었다. 내가 서울지방검찰청에 특별수사 제3·1부장을 역임하는 동안 이종남 검사장께서 나를 보고 '시절을 잘못 만난 특별수사부장'이라고 적절히 지적했듯이 이 시절의 중앙수사부장 역시 '시절을 잘못 만난 중앙수사부장'이 틀림없을 것이다.

지방검찰청의 특별수사 담당 부장검사들만을 따로 불러 모아 전국 특별수사부장 회의를 여러 번 개최해 일선 수사의 감독 기능을 강화하는 데 힘써 그들의 수사 능력을 함양시키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다. 국민은 특별수사에 대한 칭찬에 인색했으나 나는 그렇지 않았다. 일선의 특별수사부에서 보람된 수사 결과를 이루어 냈을 때는 기대 이상의 격려를 해 줬다.

언젠가 나의 검찰 후배인 서영제 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이 쓴 글을 읽었는데, 자신이 일선 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에서 가짜 산삼 사건을 수사할 때 그 가짜 산삼을 살 돈이 없어 수사가 난관에 봉착할 즈음, 대검 중앙수사부장이 거금을 선뜻 내려보내 그 어려운 수사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고 쓴 글이었다.

나는 기억에 남은 것이 전혀 없고, 그 일도 나의 업무 수첩에는 기록돼 있지 않다. 그 후배가 거짓말을 만들어 글을 썼을 리 없으니 내가 이런 말을 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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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3월 17자로 제작된 나의 중앙수사부장 재직기념패에 새겨진 명단은 다음과 같다.

수사 제1과장 김영철(金永喆). 수사 제2과장 김학재(金鶴在).
수사 제3과장 정홍원(鄭烘原). 수사 제4과장 배재욱(裵在昱).
과학수사지도과장 안대희(安大熙). 과학수사운영과장 조재천(趙在天).


<정리=박솔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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