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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 (백세희 변호사 著, 호밀밭 펴냄)

법률가의 시선으로 본 대중문화 콘텐츠 속 소수자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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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제작사나 전시기획사 등의 의뢰로 문화예술 콘텐츠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를 다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콘텐츠 그 자체의 사회적 가치를 들여다보게 된다. 의뢰인의 요청대로 권리관계는 정리해 주더라도 그 작품이 갖는 함의가 과연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고 있는지, 쉽게 말해 ‘정말 좋은 작품’인지는 별개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콘텐츠 시장에서 변호사 직함을 달고 나름대로 교통정리를 하는 선수로 뛰고 있긴 하지만, 나 역시 결국엔 ‘소비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소비하는 이 콘텐츠, 과연 온당한 것일까? 누군가는 소외되고 불편함을 느끼며 울며 겨자 먹기로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내용은 아닐까?

하루아침에 장애가 생겨 휠체어로 지하철을 타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거나 어느 날 아침에 아버지가 갑자기 커밍아웃하는 식의 경험을 직접 하지 않는 이상, 주류에 속하는 이른바 ‘평범한’ 콘텐츠 소비자들은 미디어라는 간접 경험을 통해 소수자 문제를 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류에 편승하는 미디어는 본디 입체적인 존재인 개별 소수자를 같은 성향의 단일 집단으로 ‘납작하게’ 묘사하는 편리한 방식을 선택하고, 때로는 그들의 존재를 ‘투명하게’ 지워버리곤 한다. 대중문화 콘텐츠 속에서 그들은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이 되기 일쑤다. 이 책의 제목은 바로 미디어 속에서 부당하게 묘사되는 소수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책은 대한민국 미디어가 얼마나 무신경하게 소수자를 천편일률적으로 재현하고 있는지를 고발하는 21개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글마다 적어도 한두 개 이상의 영화·드라마·웹툰 등을 분석하고 있으니, 이 책은 상당히 많은 작품을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오로지 흠 있는 작품이라는 비난을 위해 콘텐츠들을 소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작품을 찾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재미와 연출, 메시지 전달 면에서 훌륭한 평가를 받은 작품도 소수자 관점에서 보면 허점이 있을 수 있다는 걸 환기했다고 여겨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변호사가 쓴 책이니만큼 소수자를 대하는 현실 제도에 대한 설명도 빠지지 않는다. 지난 4월 대법원은 군대 내에서의 동성애를 처벌하는 '군형법' 조항에 대한 기존의 해석을 폐기했다. 정당 대표가 장애인의 이동권 시위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해 논란이 일기도 했고, 유명 트랜스젠더 연예인까지 가세해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불씨가 잠시 되살아나기도 했다. 하지만 팬데믹 상황도 지겨워지고 정권교체 이후의 정치적 격변까지 더해진 혼란 속에서 소수자 문제는 다시 뒷전으로 미뤄진 것만 같다. 집필 초기의 ‘이미 많이 좋아졌는데 이 문제에 대해 굳이 나까지 나서서 책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민망해질 정도로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이런 문제의식에 많은 독자분이 공감해 주어 최근 중쇄를 찍게 되었다. 욕심이지만, 더 많은 독자와 함께하고 싶다. 같은 문제의식을 지닌 이들이 늘어날수록 대중문화 콘텐츠로부터 소외되는 이들은 줄어들지 않을까.


백세희 변호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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