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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변호사

[책 읽어주는 변호사] 주류 미술사가 기록하지 않은 근대 여성 작가들의 삶과 작품

《여자의 미술관 자기다움을 완성한 근현대 여성 예술가들》(정하윤 著, 북트리거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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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상황으로 해외여행이 주춤하고 있지만, 해외여행 하던 때를 떠올려 보면 여행할 때 특히 유럽의 도시들을 비롯해 서양 국가들을 여행하는 경우 미술관은 여행의 필수코스다. 예컨대 파리에는 루브르, 오랑주리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등이 있고, 런던에는 대영박물관, 테이트모던, 내셔널 갤러리 등이 있다. 뉴욕의 경우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모마(MoMA)라 불리는 뉴욕현대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등이 있다. 본래 미술 작품에 관심이 많아 재미있게 미술관 투어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필자처럼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의 경우 일단 꼭 가야 한대서 가긴 가는데, 이 유명하고 아름답다는 작품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어렵고 모르겠는 마음이다. 그래서 항상 쉽고 재미있는 미술 입문서를 찾고 있는 입장인데, 조금 특별한 미술 입문서를 찾았다.

미술사학자 정하윤이 쓴 《여자의 미술관》은 '자기다움을 완성한 근현대 여성 미술가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미술이라는 예술 분야에 쉽게 다가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이 책은 '근현대 여성작가'를 주제로 삼아 미술가이면서 동시에 여성인 작가들의 개인적인 삶과 그들의 작품세계를 설명함으로써 쉽고 재미있게 작가들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시대별로 또는 사조별로 설명하지 않고, 여성 작가라는 점에 초점을 두고 그들의 삶을 통해 해당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책에는 총 15명의 근현대 여성 작가들이 등장한다. 프리다 칼로, 니키 드 생팔, 오노 요코 등 익숙한 작가가 있는 반면, 처음 들어본 작가들도 많았다. 또 외국 작가들 특히 서양의 작가들만 담고 있지 않고, 우리나라 여성 작가 3명의 이야기도 담고 있어 구성이 지역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적절히 균형감을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근현대 여성작가’를 주제로 삼아 미술가이면서 동시에 여성인 작가들의 개인적인 삶과 그들의 작품세계를 설명함으로써 쉽고 재미있게 작가들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주류 미술사가 주목하지 않은 여성 작가들을 소개하는 점도 흥미롭지만, 이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여성 작가들 한명 한명의 삶을 살펴보고 그 삶이 작품활동과 내용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이야기하는바, 작가들이 살아온 각기 다른 삶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다루는 만큼, 책은 곳곳에서 기존의 미술사가 남성중심으로 서술되어 온 점을 이야기한다(어느 분야든 역사적으로 여성은 주류에서 항상 쉽게 배제되어 왔다는 점을 다시 한번 느꼈다). 미술사에서 있었던 새로운 시도와 관련하여 실은 여성 작가가 이미 시도했던 것임에도 주목받지 못한 채 묻히고 나중에 다른 남성 작가의 이름만 남게 된 주류 미술사의 서술을 지적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예컨대 우크라이나 태생의 소니아 들로네(1885~1979)는 회화 작가였지만 동시에 패턴 디자이너이자 모델로도 활동하는 등 분야를 넘나들며 활약한 작가였다. 무엇보다 소니아 들로네는 자신의 회화 작품을 상업 미술에 접목하고 이를 사업으로 확장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다. 본인의 이름을 딴 ‘카사소니아’를 열어 자신이 회화에서 실험했던 패턴을 활용해 의상과 전등갓, 카펫 등의 인테리어 소품을 디자인하여 판매하기도 했으며, 수영복, 모자, 스카프, 코트로 만들어 팔았다. 미국과 파리에서 활동하는 영화배우들의 주문을 받을 정도로 마니아층을 확보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자신의 스튜디오를 오픈하여 텍스타일 디자인을 하고 프린팅하까지 했다. 소니아의 패턴은 파리, 미국, 네덜란드에까지 진출하게 되었고, 나아가 소니아는 ‘메종 소니아들로네’라는 일종의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을 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미술사에서는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경계가 흐려진 시기를 1980년대로 보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앤디 워홀이 이 경계를 최초로 흐려 놓은 예술가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팝아트의 선구자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소니아 들로네는 앤디 워홀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이렇게 상업미술과 순수미술의 구분을 없앴고 두 분야 모두에서 성공을 거뒀다. 저자는 주류 미술사에서 이를 주목하지 않았던 것일 뿐이라고 하며, ‘정통 미술사의 계보’라는 것이 얼마나 남성 미술가 위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는 사례라고 이야기한다.

또 같은 맥락에서 추상회화 작가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의 이야기도 주목하게 된다. 추상회화의 대표적 인물로는 바실리 칸딘스키, 피에트 몬드리안,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꼽히고, 미술사에서는 이들이 모더니즘 미술사에서 추상회화를 개척한 사람들로 설명하는데, 스웨덴의 힐마 아프 클린트는 이 세 사람보다 먼저 더 깊이 추상회화를 탐험한 인물이라고 한다. 힐마 클린트는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뒤 영적인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과학자들이 원소와 방사선, 전자파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을 발견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는 인식이 생겨나던 시기이기도 했다. 저자는 힐마 클린트는 이러한 배경에서 추상을 그리기 시작한 것 같다고 한다. 힐마 클린트의 작품은 자신의 영적 탐구의 결과를 담고 있는 추상회화인데,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그가 죽고 한참 뒤인 1986년에 이르러서야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2018년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다고 한다. 저자는 여전히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앞선 남성 미술가 3인만이 꼽히는 것이 아쉽다고 한다.


한편, 이 책은 이처럼 주류 미술사가 주목하지 않은 여성 작가들을 소개하는 점도 흥미롭지만, 이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여성 작가들 한명 한명의 삶을 살펴보고 그 삶이 작품활동과 내용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이야기하는바, 작가들이 살아온 각기 다른 삶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특히, 여성으로서 겪는 사회적 억압은 미술가라고 하여 비껴갈 수 없다. 이들이 겪은 사회적 억압이 작품 활동 및 작품 세계에 미친 영향을 살펴볼 수 있는데, 그래서 이렇게 15명의 여성 작가들의 삶을 보다 보면 어쩐지 작가들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책에 싣지 못한 다른 여성 작가들이 여전히 많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나서 다양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사를 쉽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 그 중에서도 조금 특별하게 여성의 관점에서 미술사를 이해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책을 읽다보면 나와 닮은 작가 한 명쯤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김소리 변호사 (법률사무소 물결·밝은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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