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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만나는 법

[시인이 만나는 법] 금태섭 전 국회의원 “지금은 버티는 시절”

“정치인으로서 펼치고 싶은 꿈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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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55·사법연수원 24기) 전 의원이 21대 총선을 앞두고 당내 경선에 나왔을 때(2020년 3월), 그가 패배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상대는 무명에 가까웠고 금 의원 자신은 <법률신문>을 포함한 많은 매체로부터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4년 내리 선정되고 의원들이 가장 영예롭게 여긴다는 백봉신사상도 받는 등 충실한 의정활동을 해온 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는 패배. 뭔가 석연찮은 흑막을 의심할 법도 했지만 금 전 의원은 가타부타 불평 없이 깔끔하게 결과를 수용한다. 그때 그에게서 ‘소쿨’한 걸물이라는 인상을 받은 것은 비단 나뿐이었을까.

아무려나 재선 길이 막힌 그는 지금 뜻하지 않은 야인 생활을 하고 있다. 인터뷰 장소는 한남동에 소재한 그의 변호사 사무실이었는데 원룸 형태의 조그마한 공간은 업무용 오피스라기보다는 작업실이나 개인 서재 느낌이 강했다. 벽면 서가를 가득 채운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보면서 이 정도로 책을 가까이하는 정치인이라면 ‘무조건’ 믿고 가도 좋지 않을까 하는 나른한 몽상이 피어났다. (금 전 의원은 실제로 SNS에 자신이 읽은 책을 자주 언급한다.) 좋아하는 분야를 물었더니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소설을 즐겨 읽는단다. 소설을 통해 인간이 가진 다면성을 헤아리는 직관을 얻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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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전 의원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거쳐 검사로 임용되면서 부친에 이어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된다. 그가 언제부터 법률가의 길을 꿈꾸었는지 궁금했다. 그의 부친은 판사로 일하다가 박정희 정권 때 일어난 사법파동으로 법복을 벗은 금병훈 씨인데, 그런 아버지로부터 어떤 멘토링이나 영향이 있었는지도 알고 싶었다.

“아버지가 판사를 지내셔서 자연스럽게 법을 공부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가족들은 아버지 뒤를 이어서 판사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는데, 정작 아버지는 아무 말씀을 안 하셨어요. 그런데 공부를 해보니까 적성에 맞더라고요. 법학이라는 게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것인데 제 어린 시절 꿈이 탐정이었거든요. 연수원 마쳤을 때 탐정과 가장 비슷한 직업이 검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검사의 길을 먼저 택한 좋아하는 친구의 영향도 있었고 아버지와 다른 걸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금태섭은 어떤 검사였을까. <검사외전> 등에서 묘사된 일면 드라마틱한 캐릭터였을 듯싶은데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모범생’에 가까웠다.

판사인 아버지 보며 공부…검사의 길로
검찰에 비판적 칼럼 쓰다 검사 옷 벗어
중견검사 출신으로 유일하게 민변 가입
안철수 캠프서 대선 상황실장도 맡아


“제가 임용됐던 시점에서 검찰은 정부 수립 후 50년 이상을 진화해온 조직이었어요. 분명 배울 게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첫 5년 동안은 속된 말로 벙어리처럼 아무 말 않고 ‘에프엠(FM)’대로 열심히 일했어요. 검사에겐 6년이 지나면 시험을 쳐서 유학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저도 유학(미국 코넬대)을 다녀왔고, 그러고서 경력이 10년이 넘으니까 조직에 대해 비평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검찰에 대한 비판적 고언이 담긴 칼럼을 <한겨레>에 연재하게 됐는데, 결과적으로 그 일로 12년 동안 입었던 검사복을 벗게 됐죠.”

이후 그의 인생행로는 극적으로 바뀐다. 그는 장기 근속한 중견급 검사 출신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민변’에 가입해 공익을 지원하는 일에 참여한다. 민변 가입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들어가 보니까 검사 출신이 정말 한 사람도 없었고 검찰 선후배들 사이에서 금태섭이 민변에 들어간 게 화제가 됐을 정도였다. 그랬던 민변의 위상이 근년 들어 다소간 흔들린 게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5년과 대선 과정에서 민변이 지나치게 진영 논리에 매몰된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 매달 회비를 자동이체하는 현직 회원이라는 금 전 의원에게 민변에 대한 비평을 요구했다.

“과거 민주주의가 위협받던 시절에 민변의 역할은 아주 중요했고 또 분명히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민변 활동을 열심히 못 한 제가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건 온당치 않을 터인데, 제 생각엔 정치를 떠나서 의제를 잡아주는 게 민변이 해야 할 역할 같아요. 법률가들은 선거로 뽑히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인기 같은 것에 연연할 이유가 없거든요. 그런데 민변 경력을 내세우며 정치에 줄을 대는 사람들이 나왔고, 정치 논리에 지나치게 연동되어 정무적인 판단을 하는 경우들이 있었어요. 이런 부분에 대해선 자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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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금태섭은 박원순 서울시장 캠프, 안철수 대선 캠프에서 연이어 러브콜을 받는다.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인으로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안철수 캠프에서 대선 상황실장을 맡게 되면서다. 사회에 기여할 일을 찾던 그는 멘토단의 일원으로 안철수 후보를 지원하기 시작했는데, 낭중지추의 소여랄까, 역할과 비중이 커졌고 직이 주어졌다. 그런데 정치를 해보니까 이 역시 적성에 맞는다는 걸 알았고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일들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자신이 그때까지 쌓아왔던 사회적 자산을 여기에 다 써도 좋겠다는 판단을 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말을 듣고 보니, 그는 결단과 동시에 몸을 던지는 행동대장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일에 참여하고 그 속성을 생리적으로 체화하면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인지를 섬세하게 실증하는 지장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금 전 의원은 민주당 소속일 때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정지 안에 반대했고, 공수처법에도 다른 목소리를 냈다. 모두가 '예스(Yes)' 할 때 혼자 '노(No)'라고 했던 것. 그런 것이 개인주의자로서의 기질이 농후한 데서 나온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다시 좀 도발적으로 물었다. 개인주의자는 기본적으로 고독을 지향하는 존재이고 정치인은 운명적으로 세를 모아야 사는 존재인데, 개인주의자의 스탠스를 유지하면서 정치를 한다는 건 치명적으로 불리한 것 아니냐고.

“제 성향에는 분명 개인주의적인 면이 있는데요. 사회적으로 기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여전히 강해요. 정치라는 것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으고 협의를 도출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초선의원으로서 그것을 제대로 못 한 것을 인정해요. 요즘 열심히 반성하고 있고요.(웃음) 그래서 다시 정치를 하려고 해요. 기회가 주어지면 하겠다는 게 아니라 저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서 다시 정치를 하고 싶어요. 정치인으로서 펼치고 싶은 꿈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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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금태섭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적잖은 이들에게 이 멘트는 그가 가진 확고한 정치적 의지를 확인시켜주는 반가운 복음이겠다.

근년 들어 정치적 논의에 ‘정의’라는 레토릭이 들어오면서 정치적 정의가 법적 정의를 억압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있었다. 검찰의 수사권한을 경찰에 이첩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도 그랬고, 최근 핵심 이슈로 떠오른 사면복권 논의도 마찬가지다. 정치적으로 정의를 타협하고 거래해서 법적 정의를 무화시키는 일들이 도모되고 있는 징후들이랄까. 법조인이고 정치인이기도 한 금 전 의원 역시 이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정치인들이 반성할 부분입니다. 정치라는 건 수단인데, 이상적인 방향으로 사회를 끌고 가는 리딩 역할을 해야 해요. 그런데 지금은 수동적으로 편승이나 팔로잉을 하고 있죠. 청와대, 여·야 할 것 없이 여론조사에만 기대서 다수가 원하는 방향을 뒤쫓아 가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정치적 정의가 법적 정의에 우선시되고 소수자의 목소리가 묵살되고 있어요. 사회는 다수의 목소리에 의해 점점 획일화되고 여기서 파시즘이 태어나기도 해요. 정치적 정의가 과잉되면 법적 정의뿐 아니라 정치적 정의 역시 망가지게 돼요. 둘 다 동시에 망가지는 거예요. 정치가 법적 정의로는 따지기 어려운 가치를 좇는 역할도 하지만 반드시 자성과 절제가 필요합니다.”

금 전 의원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줄곧 신독(愼獨)과 균형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자신을 삼가면서 양안적으로 사유하는 그 엄밀한 자의식은 학습으로 얻어진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날 때부터 체득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실제로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걸 병적으로 싫어한다고 말했다. 이를 근거 삼아 말하면 그는 염치를 알고 던적스러운 걸 꺼리는 개인주의자이되 열린 개인주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달란트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귀한 것인가.

 

사회가 다수의 목소리로 점점 획일화
정치적 정의가 과잉되면
법적 정의 함께 정치적 정의도 망가져
정치에는 반드시 자성과 절제 필요


법대생과 연수원생 시절, 그는 동기들과 <법률신문>을 펼쳐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스터디를 했다고 한다. 인터뷰에 보인 사뭇 열정적인 태도에는 그런 소이연이 스민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 눈에는 그의 마음밭이 시종여일 넉넉해 보였다. 야인으로 있는 지금의 시기를 “버티는 시절”이라고 표현하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버티는 걸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소실점 밖으로 날아가버린 전직 의원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조바심 없이 버티는 시절을 즐기는 그의 저력이 인상적이었다.

금 전 의원은 좋아하는 소설가로 보르헤스와 나보코프를 꼽았다. 두 사람 모두 전위적 실험을 즐긴 비대중적 작가들이다. 다른 정치인이었다면 정무적 판단으로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국민작가 반열에 오른 소설가의 이름을 댔을 것이다. 여기서 다시 던적스러운 걸 꺼리는 그의 본성 인증.

맹자는 ‘무항산(無恒産) 무항심(無恒心)’을 얘기했다. 거꾸로 해석하면 축적한 산물이 있는 자는 마음에 흔들림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산물이라는 게 물질만을 얘기하는 건 아닐 터이다. 금 전 의원은 매력적인 유무형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초선에 그친, 어떤 정치조직에도 소속되지 않은 불안한 전직 의원임에도 뜨거운 주목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원유가 그렇듯 그가 쌓은 자산의 밀도가 높고 이를 가공할 수 있는 유연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자산이 또 그만의 것이 아니게 될 때 우리는 한국 정치에 피어날 미증유의 희망의 싹을 보게 될 것이다.


김도언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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