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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군사법원

한정위헌 기속력 두고 헌재·대법원 대립 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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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간 대립이 격화되면서 법조계에서는 애꿎은 국민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헌재가 한정위헌 결정에 따르지 않은 대법원 판결을 잇따라 취소하고 있지만, 대법원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정작 당사자는 양 기관 사이에서 핑퐁처럼 오가며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헌재, 역대 세 번째 법원 판결 취소 = 헌재는 21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GS칼텍스와 AK리테일, KSS해운의 재심청구를 기각한 2013년 대법원 판결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2013헌마496 등). GS칼텍스는 서울 역삼세무서가 구 조세감면규제법(1990년 개정 이전의 법률) 부칙 제23조에 따라 707억여 원의 세금을 부과하자 소송을 냈고, 2심에서 승소했지만 대법원에서 파기되자 파기환송심 중 해당 부칙에 대한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2012년 5월 "구 조세감면규제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구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제23조가 실효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며 한정위헌 결정을 했다. 이후 GS칼텍스는 법원에 세금부과 취소소송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되자, 헌재에 재심 기각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헌법소원을 냈다. 104억여 원과 65억여 원의 세금을 부과받은 AK리테일과 KSS해운도 같은 취지의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헌법이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권을 헌재에 부여하고 있으므로 법률에 대한 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부인하는 법원의 재판은 그 자체로 헌재 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권을 헌재에 부여한 헌법의 결단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재심기각 결정들은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부인해 헌법재판소법에 따른 청구인들의 재심 청구를 기각한 것인데, 이는 청구인들의 헌법상 보장된 재판청구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헌법재판소법 제75조 제3항에 따라 취소돼야 한다"고 했다.

다만 헌재는 위헌결정 이전에 확정된 법원의 판결과 법원의 재판을 거쳐 확정된 행정처분인 과세처분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지 않아 부적법하다고 판단해 각하했다.


헌재 “헌법적 결단에 정면 위배”

대법원 “취소결정 수용 못해”

헌법재판소법 개정 등

근본적 대책 없으면 갈등 되풀이 될 듯


◇ 과거 '재판 취소' 당사자 구제 어떻게 됐나 = 과거에도 헌재가 대법원의 재판을 취소하는 결정을 두 차례 내린 적이 있다. 1997년과 지난 달이다. 헌재는 1997년 이길범 전 의원의 소득세 부과 사건과 관련해 사상 처음으로 대법원 판결을 취소했다(96헌마173). 당시에도 헌재가 과세 근거가 된 세법 조항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법원이 한정위헌의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고 재판을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헌재의 재판 취소 결정이 있었지만 당시에도 대법원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대법원과 헌재가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며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국세청이 양도소득세 체납을 이유로 압류하고 있던 이 전 의원 등의 재산 압류를 해제하고 공시지가를 초과해 부과했던 세금도 취소했다. 이에 이 전 의원 등도 양도소득세 부과와 관련해 헌재와 법원에 냈던 헌법소원과 소송을 모두 취하하며 사건이 일단락됐다.

◇ 대안은 없나 = 25년 전과 마찬가지로 대법원은 헌재의 판결 취소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21일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실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의에 "한정위헌 결정은 헌법과 법률에 없는 용어로 그 자체가 명확한 개념표지를 갖고 있지 않고, 충족요건 등에 관한 통일된 설명도 없다"며 "법원의 구체적 법률 해석·적용 자체를 심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헌법상 허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법률해석에 관해 두 기관이 견해가 다를 경우에도 헌재는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뿐, 한정위헌 결정의 형태를 이용해 법원의 구체적 법률 해석·적용 권한을 제한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면서 "헌재는 법원 외에 존재하는 제4의 국가기관일 뿐 최고법원이 아니다. 헌재가 법률의 해석지침을 제시하고 따르도록 하는 것은 우리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사법권의 독립, 대법원의 최고법원성,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권한배분 등을 모두 부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헌법재판소법 개정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양 기관의 갈등은 되풀이될 것이라며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이는 사법의 충돌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현행법상 없다"며 "한정위헌 등 변형 결정의 기속력을 헌법재판소법 등에 명시하는 방법이나 독일처럼 재판소원을 인정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노희범(56·27기) HB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도 "양 기관이 존재하는 이유는 헌법을 수호하고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권리를 구제하기 위함"이라며 "국회에서 입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다.

반면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해 한정위헌이나 재판소원 허용한다면 (그것이) 위헌적인 법률이 될 수 밖에 없다"며 "헌법 제103조에 따라 구체적인 사건에서 어떠한 법률해석이 헌법에 합치되는 해석인가를 포함하는 법령의 해석·적용에 관한 권한은 대법원을 최고 법원으로 하는 법원에 전속하기에, 헌재가 그 권한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위헌"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도 "이미 사법절차를 통해 법원의 판단이 끝난 것이기 때문에 더이상 구제할 권리가 없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박수연·박솔잎 기자 

sypark·solip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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