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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철의 문향(文香) 오디세이

[고승철의 문향(文香) 오디세이] 담대한 기상의 한국 음악인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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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경, 고성현, 우광혁…. 서울대 음대 81학번 동기생 음악인들이다.


조수경은 선화예고를 나와 음대 성악과에 수석 합격할 만큼 일찌감치 재능을 드러냈다. 그러나 대학 1,2학년 때 청춘 방황기를 맞는 바람에 성적 불량자로 제적 위기에 빠져 학교를 중퇴하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심기일전하여 세계 정상급 소프라노 반열에 올랐다. 이름도 예명 ‘조수미’로 바꾸었다.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고성현 성악가를 알 것이다. 지축을 흔들 듯한 우렁찬 바리톤 목소리로 청중의 심금을 울리게 하는 명창이다.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기념 공연에 나서고 있다. 특히 6월 19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베르디 작곡 오페라 '리골레토' 공연에서 주역으로 나온 그는 한국 오페라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의 열창, 열연을 보였다. 1층 1열에서 관람한 필자는 리골레토가 피를 토하듯 절규하며 쓰러지는 마지막 하이라이트 장면을 보고 전율했다. 60세 성악가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뿜었다.

우광혁? 낯선 이름이리라. 그는 작곡과 학생이었지만 노래도 잘 불렀다. 훗날 성악가로도 데뷔한다. 고성현, 우광혁 학생은 목소리가 비슷해 서로 대리출석 대답을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변변한 레슨도 받지 못하고 음대에 진학한 지방 인문계 고교 출신인 고성현, 우광혁은 동지 의식을 느꼈다. 우광혁은 대학 졸업 후 음악잡지 '객석'에서 기자로 일하다 식솔과 함께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작은 트럭을 구해 이삿짐 운반 아르바이트를 하며 음악학을 공부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려 했으나 빈 자리가 없어 거절당했다. 우광혁은 아침마다 아코디언을 들고 나와 유치원 앞에서 경쾌한 동요를 연주했다. 등원하는 아이들이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느라 유치원에 들어오지 않으려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원장은 마침내 입학을 허락했고 원아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연주하며 놀아달라고 부탁했다.

우광혁은 파리의 뒷골목 ‘벼룩 시장’에서 갖가지 고물 민속 악기를 사들여 손질해서 익혔다. 귀국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근무하면서 짬을 내 소외층을 위한 공연에 나섰다. 혼자서 북 치고, 하모니카와 백파이프를 불고, 바이올린을 켰다. 시골 장터 약장수 풍각쟁이를 자처한 그에게 장애인, 독거 노인, 재소자들은 아낌없는 환호를 보냈다. 우광혁은 무용곡을 주로 작곡했는데 이것보다는 가곡 ‘대지의 노래’가 더 돋보인다. 이 노래는 고성현을 위해 지은 노래나 마찬가지다. 웅대한 스케일의 이 곡을 고성현만큼 잘 부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이 노래를 검색해서 들어보면 수긍하리라. 두 뮤지션의 오랜 우정이 아름답다.

조수미, 고성현, 우광혁 등 일가(一家)를 이룬 음악인의 공통점은 담대함이 아닐까. 덩치 큰 서양인 앞에서도 야코 죽지 않고 두 눈을 부릅뜨는 기상!

이런 배포를 가지고 세계 무대에 선 한국 청년 음악인들이 줄지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임윤찬 군도 큰 무대에서 위풍당당한 자태를 보였다. 18세 소년 임윤찬에 앞서 손열음, 문지영도 해외유학을 가지 않은 국내파 실력으로도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우승했다. 고구려 무사 같은 기개를 지닌 한국 음악인들이 서양음악으로도 늠름하게 세계 음악계를 주름잡을 날을 기대한다.


시인·소설가이자 언론인인 고승철 전 나남출판사 사장이 오늘자부터 2주 간격으로 ‘문향 오디세이’ 칼럼을 연재합니다. 경향신문 파리특파원, 동아일보 경제부장 및 출판국장 등을 역임했고 '파피루스의 비밀' '소설 서재필' '개마고원' 등 장편소설과 '학자와 부총리' '김재익 평전'(공저) 등 인물서적을 저술했습니다.

고승철 언론인·저술가(전 동아일보 출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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