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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창

[미술의 창] 미술은 시각이 보내는 초대장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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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면서 미술 전시회에 오라고 권유할 때가 많다. 그런데 수줍고 겸손한 뉘앙스로 이런 답이 돌아오곤 한다. “미술 전시는 가고 싶은데 미술에 관해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라서요….” 미술 전시를 보려면 미술에 관해 사전 지식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미술 경험은 전문 지식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눈으로 보는 것이 먼저다. 음식에 대해 모르더라도 먹어보면 맛을 아는 것과 같다. 메뉴판에 자세하고 멋지게 쓰여진 설명을 봐야만 맛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맛을 느끼면서 또는 맛을 느낀 뒤 음식에 대해 설명을 듣는 것이 훨씬 좋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미술사나 미술이론에 관해 해박한 지식이 없어도 미술을 즐길 수 있다. 더구나 사전 지식이 미술 경험을 훼방 놓을 때가 종종 있다. 자기도 모르게 미술 작품을 자신의 지식을 확인하는 재료로 간주하면서 보기보다 분석에 치우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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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디자인 스토리인

 

인간에게 시각뇌(visual brain)는 뇌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인간은 시각적 존재(visual creature)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신경미학자인 세미르 제키는 시각이 인류가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얻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 중 하나이며, 시각뇌에는 단순히 보는 것만이 아니라 보는 대상을 개념화하는 능력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많은 현대인들은 미술에 대한 지식이 시각보다 어쩐지 우위에 있는 고급 능력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의 시각 체계는 언어가 생기기 전부터 수천만년에 걸친 진화 과정을 통해 인류가 습득하며 갈고 닦은 능력이다.

‘보기’를 통해서 인간은 주변에 무엇이 위험한지를 분별해 내야 했다. 황혼 무렵 숲속의 초록색이 단순히 풀잎의 초록인지 아니면 포식 동물이 둔갑을 한 초록인지를 구별할 수 있어야 생존이 가능했다. 그래서 초록색 안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 볼 수 있는 예민한 능력이 시각에 장착될 수 있도록 발전되어 왔다. 그것 뿐인가. 사람의 미소가 나에 대한 친근함의 표현인지, 아니면 비웃음이나 노여움을 위장한 것인지도 얼굴 표정을 보면서 식별해야 한다. 인간의 시각은 대상을 보고 소화하고 즉각적으로 판단하는 뇌 능력으로 진화되었다.

 

미술 경험은 보는 것이 먼저

뇌에 연결되면서 상상력 촉발


훌륭한 미술작품을 보면

피곤하고 소진된 뇌를 일깨워

 
미술은 이러한 고차원의 복합적 시각 경험에 기반한다. 미술 작품을 구성하는 색, 형태, 질감(texture), 구조, 뉘앙스 등은 눈을 통하여 들어와서 뇌의 시각 체계를 자극한다. 뇌의 여러 곳에서 불꽃들이 피고 그 온기가 연결되면서 연상과 상상을 촉발한다. 미술가들은 시각 경험을 둘러싼 이 위대한 비밀을 보통 사람들보다 더 민감하게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그림이나 조각에 옮겨 보려고 애쓴다. 훌륭한 미술 작품은 감각과 생각을 응축적으로 자극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훌륭한 미술 작품을 보면 피곤하고 소진된 뇌를 깨우는 한잔의 커피처럼 색다른 원기가 마음에 퍼진다. 미술은 당신의 시각이 당신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다. 지식의 눈치를 보지 말고, 인류의 시각 능력에 자부심을 갖고 미술을 보자.

 


케이트 림 (아트플랫폼아시아 대표)

 

[ 케이트 림 ]

· 1964년 生, 연세대학교 영문과 졸업
· 아트플랫폼아시아(Art Platform Asia, www.artplatformasia.org) 대표, 미술 저술가, 큐레이터.

· 현재 싱가포르 거주

 

· 주요 전시 및 행사
- 한중일 그룹전 'The 5th Neo-Moroism'(북경, 2018), 국제미술포럼 'Fracturing Conceptual Art: The Asian Turn'(아시아의 反개념예술: 예술 작업으로의 복귀) 주최(서울, 2016년), 'In the Absence of Avant-garde reading'(북경, 2014), '인도 중국 현대 미술전: 풍경의 귀환'(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2013, 공동기획) 등을 기획했다.

· 주요 저술
- 박서보: 단색화에 담긴 삶과 예술(2019, 마로니에북스), Language of Dansaekhwa: Thinking in Material(2017, Fracturing Conceptual Art: The Asian Turn, Art Platform Asia), Five Hinsek: A Prelude to Dansaekhwa(2018, Korea: Five Artists, Five Hinsek - White, Tokyo Gallery + BTAP), Making sense of Comparative Stories of Art: China, Korea, Japan(2022년 가을 출판 예정), Kim Taek Sang: Layers of Color, the Breadth of Light(2017, CAA), 조영남 대작(代作) 스캔들의 원죄(2016, 월간중앙), Park Seo-Bo: from Avant-Garde to Ecriture(2014, BooksActually, Singapore, 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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