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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연구논단] 우리 민법전의 명백한 오류(Ⅲ)

- 표제와 항목 제목 -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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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같은 제목의 글을 2019년 12월 5일자 및 2020년 11월 23일자의 법률신문에 실은 바 있다. 근자에 우리 문법에 밝은 어느 분이 우리 민법전의 문법상 오류를 지적하였다는 '민법의 비문'이라는 책을 발간하여 일부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나는 어디까지나 우리 민법의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한 문법상의 오류가 아니라 민법의 규정내용을 이해하는 데 영향을 미칠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한 시각에서 이번에는 민법전 규정의 표제를 살펴보기로 한다(스위스의 민법·채무법은 독일민법과는 달리 표제가 아니라 난외항목을 붙이고 있다. 이들의 법해석상 의미에 대하여는 법학방법론에서 논의가 있는 바이다). 또한 이 기회에 장·절·관의 제목 중 어느 것에 대하여도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2.
민법 제639조(이하 법명은 생략한다)는 그 제1항 본문에서 "임대차기간이 만료한 후 임차인이 임차물의 사용수익을 계속하는 경우에 임대인이 상당한 기간 내에 이의를 하지 아니한 때에는 전(前)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임대차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는데, 동조의 표제는 '묵시의 갱신'이라고 되어 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2의 표제도 그러하다). 임대차계약을 갱신하기로 하는 당사자들의 합의는 명시적으로도 할 수 있지만, 묵시적으로도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여기서 갱신 합의가 묵시적으로 있었다고 하여도, 의사표시의 합치가 있었던 것이고 단지 그것이 문서 등으로 명시적으로 행하여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위의 제639조는 합의가 없는 경우에도, 즉 법률행위의 해석상 갱신의 합의가 인정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도 그 규정 소정의 객관적 요건들이 갖추어지면 합의의 존재를 '의제'한다고 하는 것으로서, 묵시적 합의와는 그 성질 내지 차원을 확연히 달리한다. 즉 위 규정은 임대차계약의 묵시적 갱신에 대한 것이 아니고, 법의 힘으로 임대차계약의 갱신을 의제하는 것으로서 법정갱신(法定更新) 또는 갱신의제를 정한 것이다. 이것은 "취소할 수 있는 법률행위에 관하여… (일정한 객관적) 사유가 있으면 추인한 것으로 본다"고 정하는 제145조에 대하여 '법정추인'이라는 표제를 붙이고 있는 것과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럼에도 일부의 교과서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위 규정상의 갱신을 '묵시의 갱신 또는 법정갱신'이라고 설명하는 등으로 얼버무리고 있다.

이상은 고용계약에 있어서 "고용기간이 만료한 후 노무자가 계속하여 그 노무를 제공하는 경우에 사용자가 상당한 기간 내에 이의를 하지 아니한 때에는 전(前) 고용과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하여 고용계약의 법정갱신에 대하여 정하는 제661조가 그 표제를 '묵시의 갱신'이라고 붙이고 있는 것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3.
제544조는 계약해제권의 발생에 대하여 '당사자 일방이 그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에 상대방이 최고를 거쳐서 계약을 해제할 권리를 취득함을 정한다. 그 표제는 '이행지체와 해제'라고 되어 있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인데, 우리 학설은 거의 예외 없이 위 규정은 채무불이행유형 중 이행지체를 이유로 해제권이 발생하는 경우를 정한 것으로 설명하고, 예를 들면 불완전급부를 이유로 하는 계약해제권의 발생에 대하여는 '민법에 규정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제544조는 단지 '당사자 일방이 그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라고만 한다. 여기서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였다'는 문언은 적어도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 감각으로는 '채무를 제때에 이행하지 아니하였다'는 사태와는 오히려 거리가 있지 않은가? 만일 그것이 이행지체의 사태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예를 들어 '채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아니하였다'는 유형, 즉 불완전급부도 포함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제544조는 -제546조에서 정면에서 별도로 정하여진 이행불능을 우선 제외하고는- 채무불이행에 관한 일반규정인 제390조에서 말하는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 즉 채무불이행 일반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계약의 해제가 제390조 소정의 법률효과인 손해배상에 비하여 당사자들에게 훨씬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말하자면 본원적(本源的)인 구제수단이므로, 그와의 균형상 여기서의 채무불이행을 '중요한(material)' 것에 한정한다는 것은 해석상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 역시 채무불이행 일반에 공통하여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이고, 제544조가 이행지체의 유형에 한정되어 적용된다는 의미일 수는 없다. 이와 같이 제544조는 채무불이행 일반에 관한 규정으로 이해하고, 그 표제는 잘못이라고, 적어도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어쩌면 표제에 고착되어 제544조의 문언을 충분히 중시하지 아니한 우리 학설의 태도가 오히려 문제라고 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이에 대하여는 일본민법의 추이를 살펴보는 것이 참고가 된다. 일본민법전은 애초 표제가 없었다. 그러다가 2004년 11월에 이르러 민법전의 가독성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행하여진 이른바 '민법의 현대어화(또는 구어화)' 개정에서 비로소 전면적으로 표제가 붙게 되었다. 이때 우리 민법 제544조와 문언을 완전히 같이하는 동법 제541조('당사자 일방이 그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 표제를 '이행지체 등에 의한 해제권'이라고 하여 '등'을 붙여서, 동조가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해제권 발생 일반에 관한 규정임을 명확하게 하였던 것이다.


4.
우리 민법전은 편·장·절·관의 항목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 항목에 붙인 제목 중에 내가 법전을 들출 때마다 불만을 느끼는 곳이 있다. 그것은 제3편 제2장 제1절(계약 총칙)의 제3관이다. 그 제목은 '계약의 해지, 해제'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그 도합 11개의 조는 계약의 해제를 중심으로 규정이 마련되어 있고, 해지에 특유한 규정은 단 하나 제550조('당사자 일방이 계약을 해지한 때에는 계약은 장래를 향하여 그 효력을 잃는다')뿐이다. 그렇다면 제목은 주된 것을 앞에, 그렇지 않은 것을 뒤에 놓아서 '계약의 해제·해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해제와 해지 양자에 대하여 정하고 있는 제543조, 제547조, 제551조는 규정 내용에서도, 표제에서도 해지를 해제보다 앞세우고 있다. 예를 들면 제551조는 "계약의 해지 또는 해제는 손해배상의 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고 정하면서, 그 표제가 '해지, 해제와 손해배상'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이들 역시 본문도, 표제도 순서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해지'는 의용민법에 없던 용어를 우리의 입법자들이 민법의 제정과정에서 창작해 낸 것이다. 그것도 계약의 '청약'과 같이 당시의 민법 교수들의 의견('민법안의견서', 156면 참조. 민법안에는 '(계약의) 요청'이라고 하였던 것을 이들의 의견을 국회 본회의의 심의 단계에서 대변한 이른바 '현석호 수정안'에 좇아서 받아들였다)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1948년 9월부터 정식으로 활동한 법전편찬위원회에서 마련한 민법안에서부터 그러한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서 채택하였다. 이는 중화민국 민법이나 만주국 민법에도 찾아볼 수 없는 순전히 우리 입법자들의 창작이다(독일민법전에는 주지하는 대로 해제(Rucktritt)와 구분되는 해지(Kundigung)의 용어가 정면에서 채택되어 있다. 한편 일본의 山田晟, ドイツ法律用語辭典, 개정증보판(1993), 393면은 후자를 '解約告知'라고 번역하고, 三豬信三, 獨逸法律類語異同辨(1935), 12면은 단지 '고지' 또는 '해약고지'라고 한다. 우리 민법 제635조 이하의 임대차 규정 및 제659조 이하의 고용 규정에 채택되어 있는 '해지통고' 또는 '해지의 통고'라는 표현은 일본민법 제617조 등에서의 '해약의 신청(申入)' 또는 위에서 본 일본 문헌에서의 '해약고지'와 관련되는 측면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민법은 '해제의 통고'라고는 하지 않는다. 한편 일본민법은 임대차에 관한 제620조에서 "임대차의 해제를 한 경우에는 그 해제는 장래에 향하여만 그 효력이 생긴다"고 정한다. 제620조는 제630조, 제652조, 제684조에서 고용, 위임, 조합에 준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상의 창작성이 '해제'와의 관계에서 그 우선성을 뒷받침할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의용민법, 즉 2017년 개정 전의 일본민법 및 그 개정 후의 일본민법은 모두 그 제목을 단지 '계약의 해제'라고만 달고 있었고, 달고 있다. 독일민법도 일찍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장절관 등 항목의 제목으로는 '해제'만을 규정하고 있다(제2편 제3장, 즉 계약 총론의 제5절. 제346조부터 제354조까지). 또 프랑스민법은 2017년의 대개정으로 새로 채무불이행의 일반적 효과를 정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효과의 하나로 '해제(resolution)'를 포괄적으로 인정한다(제3편 제1부속편 제4장 제5절의 제4부속절, 즉 제1224조부터 제1230조까지). 이러한 배경에서 보면, 우리 민법이 계약의 해제 외에 해지를 별도로 정하는 것은 어쩌면 자랑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순서는 역시 해제의 뒤로 가야 할 것이다.


양창수 석좌교수 (한양대·전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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