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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블록체인 기술의 민사 관계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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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블록체인 기술, ICO에서 민사 거래로 확대

지난 수년간 블록체인 기술이 지금까지 일반인들의 뜨거운 관심 대상으로 된 것은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암호화폐 내지 암호화 자산, 특히 암호화폐공개 절차로서의 ICO(initial coin offering)이며,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을 포함한 민사거래 영역은 아니었다. 한편, 탈중앙화(decentralized)된 보안기술로서의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로 인한 자유정신을 실현하는 측면을 보이기보다는, 마약거래나 자금세탁, 불법 외환거래 수단으로 활용되어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블록체인은 일반 민사거래적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 글에서는 암호화자산의 거래를 둘러싼 민사적인 문제의 현실 사례를 몇 가지 들어 보고, 스마트 계약이라는 도전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민사법 체계가 준비하여야 할 응전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 주제에 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김제완, '블록체인과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 민사법학과 법조실무에 던지는 도전과 응전 - 비가역적·탈중앙화 거래에 관한 민사법적 쟁점과 법률가의 역할', 비교사법 제28권 4호(2021)"을 참고하기 바란다.


Ⅱ. 블록체인과 스마트 계약의 민사거래 적용상 쟁점

현재까지 각론적으로 블록체인이나 스마트 계약의 적용가능성에 대하여 논의되고 있는 분야는 광범위하다. 주식거래와 회사의 운영이나 인수합병(M&A)에서도 불록체인 기술과 스마트계약의 적용가능성이 검토되고 있고, 선하증권에의 활용 문제도 논의된 바 있다. 블록체인은 국제무역에도 응용될 수 있는데, 무역조건의 해석에 관한 국제규칙인 인코텀즈(incoterms)를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하여 진행한 '인코체인(Incochain)'도 있다. 저작권 관리에서의 활용가능성도 논의되고 있으며, 특히 블록체인을 이용한 미술품의 분할판매는 매우 흥미로운 현상 중의 하나이다. 부동산 거래에도 스마트계약의 도입가능성이 매우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와 같은 거래과정에 개인정보보호는 몰론이고, 공법적인 규제와 형사법적 쟁점, 나아가 국제거래적인 측면의 쟁점들도 함께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블록체인 기술과 스마트 계약에 의한 거래는 그 목적 내지 대상이 '정보'이다. 블록체인에 올릴 수 있는 정보를 대상으로 하여야 하며, 블록체인에 올릴 수 없는 실물자산은 거래의 대상이 되기 힘들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서 부동산 거래에 블록체인이나 스마트 계약이 적용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많은 중요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필자가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몇 가지 단계 내지 쟁점을 구분하여 각각 살펴야 한다는 점이다. 즉, ① 부동산 계약의 '체결'에 대하여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될 수 있는지, ② 부동산 등기부를 블록체인에 올리는 것이 적절한지, ③ 등기부 자체가 아니라 일반인에게 발급되는 등기부등본을 블록체인에 올려 배부하는 것이 적절한지, ④ 부동산 거래 계약의 체결에 아닌 '이행'까지도 스마트 계약의 방식으로 가능한지, ⑤ 부동산 등기명의의 이전이 코드화를 통하여 자동화되는 것과 관련하여 토지거래허가 등 공법상의 규제 문제 등이 그것이다.

나아가 부동산 등 실물자산의 민사거래에 대하여 블록체인과 스마트 계약이 좀 더 활발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는 실물자산의 증권화의 활용을 들 수 있는데, 증권화된 권리는 상대적으로 블록체인에 올리는 것이 용이하고, 코드화되어 스마트 계약으로 거래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존에도 저당권부 채권에 대한 유동화증권(MBS)이나 자산유동화증권(ABS), 부동산 투자회사(REITs), 특수목적회사(SPC) 법리 등은 이미 부동산에 관한 물권이 증권화되어 코드화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Ⅲ. 암호화자산에 관한 거래에 관한 민사 분쟁의 양상

블록체인과 스마트 계약에 의한 일반 민사 거래에 있어서의 분쟁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DAO 해킹과 하드포크(hard fork) 사례에서는 '스마트계약을 통하여 체결'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계약의 유효 무효에 영향을 미치는 민법 규정이나 계약 법리가 당연히 배제되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였다. Quadriga의 창업자의 사망 사례에서는, 암호화 자산의 상속인이 망인의 패스워드나 복구 키를 모를 경우 해당 암호화폐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한지를 포함하여, 암호화자산의 물건성(物件性)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였다. 우리나라는 암호화폐 Remiit token 거래에 관한 분쟁에서 암호화폐 인도의 동시이행판결을 명한 사례가 있는데, 여기서는 암호화폐를 금전이 아닌 동산과 마찬가지로 인식하고 있으며, 암호화폐에 대한 강제집행 방법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

스마트 계약의 해석에 관하여는 '선의 무과실'이나 '중대한'이라는 요건을 포함한 조항의 경우 컴퓨터가 이를 판단하기 어렵고, 불특정 개념도 코딩할 수 없다는 점 등도 지적된다. 한편, 이른바 '암호화폐를 매개로 한 거래'에 관련하여, 암호화폐는 법정화폐라고 할 수 없으므로, 이를 매매라고 보아야 하는지 또는 교환이라고 보아야 하는지도 문제된다. 나아가 해킹사고가 발생한 경우의 민사책임에 관하여 책임의 요건과 주체 및 손해의 산정 등도 중요한 문제이다.


Ⅳ. 민사법 체계와 이론에의 도전과 응전

블록체인 기술과 스마트 계약은 현재의 우리 민사법 체계에 두 가지 측면에서 도전을 제기한다. 그 중 하나는 분쟁의 절차와 강제집행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암호화자산이나 스마트 계약이 대두 자체가 역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민사법 체계에 미치는 영향이다.

블록체인과 스마트 계약 관련 거래에서 강제집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탈중앙화된 거래가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코드의 지배(rule of code)'가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전면 배제하지는 못한다. 다만, 분쟁의 해결을 법원 대신 중재에 의하는 이른바 built-in 방식의 '스마트 중재'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암호화 자산이 가지는 특성을 고려한 강제집행 관련 법제 및 법리의 정비가 필요하다. 기이행된 부분의 반환(返還)에 관한 이행의 확보방안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전자거래의 활성화에 에스크로(escrow) 제도가 기여한 바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암호화자산이나 스마트 계약이 대두 자체가 역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민사법 체계에 던지는 도전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거래 대상의 물건성(物件性) 도그마이다. 블록체인 기술에 의한 거래에서 거래의 대상인 자산이 암호화되면서 전통적인 시각에서 법적인 의미의 물건성이 흔들리기 시작하며, 물건과 정보가 상호 전환되는 현상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대체불가능 토큰(NFT)과 메타버스(metaverse), '실물자산에 대한 디지털 인도(DDPG)' 방식의 대두는 전통적인 유체물 도그마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한다. 미국에서는 물건 내지 재산에 관하여 이를 '정보에 대한 교환과 보관에 관한 시스템으로 파악하는 이론체계(a theory of property as an information communication and storage system)'가 시도되고 있다. 한편, 스마트 계약을 일종의 조건부 계약의 성격을 가지는데, 우리나라 민법상의 조건을 비롯한 이른바 부관의 법리는 스마트 계약 시대에 맞추어 좀 더 현실화될 필요가 있다.


Ⅴ. 블록체인과 스마트 계약 시대의 '바보들(Morons)'

NFT를 통해 암호자산화되었던 예술품 '바보들(Morons)'은 예술품 경매장에서 경매를 진행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 작품인데, 그 그림에는 "이것을 실제로 사는 너 같은 바보들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아(I can’t believe you morons actually buy this)"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액자가 있다. 디지털 정보에 불과한 NFT를 거액에 사는 사람이 바보인지, 또는 첨단 과학기술 기법에 문외한인 기존 예술품 애호가들이 바보인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지적할 것은, 법률가들과 법학자들도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첨단 과학에 무지몽매해서도 안 되지만, 무비판적으로 환호해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스마트 계약의 경우에도, 이것이 불법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하여 교각살우(矯角殺牛) 해서도 안 되지만, 스마트 계약의 독자적 특성만을 주장하며 법적인 규율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율리시즈가 바다를 지나면서 사이렌 요정들의 유혹을 견뎌내기 위해 자신과 부하들을 배의 돛대에 스스로 결박하도록 명령하였듯이, 스마트 계약이 안전하게 활용되려면 법적 신뢰성과 안정성이 인정되어야 하며, 블록체인 기술도 인간에 의한 유의미한 통제(meaningful human control)를 통하여 비로소 법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김제완 교수(고려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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