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연구논단

민간조정의 의의와 활성화 과제

미국변호사

177796.jpg

Ⅰ. 서론

조정은 각국에서 법원의 사법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소송 외에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분쟁해결절차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도입되었다. 민사, 형사 분쟁 등 다양한 생활 관계의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로 조정이 활용되고 있으며, 국내 분쟁뿐만 아니라 국제 분쟁의 해결에도 조정의 활용이 장려되고 있다. EU는 2008년 국제 민·상사조정지침(Directive 2008/52/EC)을 채택하여 시행하고 있으며, UN 총회는 2018년 12월 20일 '조정에 의한 국제화해 합의에 관한 UN협약'(일명 '싱가포르조정협약')을 채택하였는데, 2020년 9월 12일 동 협약이 발효되어 국제상사조정의 결과로 화해 합의가 도출되면 집행을 원하는 당사자가 집행목적물이 소재하는 동 협약 당사국의 법원에 그 화해 합의의 집행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국제중재와 마찬가지로 싱가포르협약의 발효로 국제상사조정의 결과인 화해 합의의 승인과 집행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국제 상사 분쟁 해결에 있어 국제조정의 활용이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은 2019년 8월 7일 동 협약에 서명하였으나 아직 비준 전이며, 동 협약의 국내 이행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민간조정에 관한 관심이 환기되고 있다.


Ⅱ. 민간조정의 의의와 국내 현황

국내 조정제도는 법원조정이 주를 이루고, 다수의 분쟁조정위원회 조정제도도 시행되고 있는데, 민간조정은 그 필요성과 효용성에 대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었다. 민간조정은 민간이 주도하는 사적 조정(私的 調停)을 의미하는데, 사적 조정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제52조)을 제외하고는 민간조정을 명시적으로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법은 없다. 그러나 변호사법 제109조는 비법조인이 금품, 향응 또는 그 밖의 이익을 받거나 받을 것을 약속하고 법률 사무를 하는 행위에 대하여 벌칙 규정을 두고 있어 민간조정을 실시하는 데 있어 법적 장벽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조정제도 자체에 대해 일반 대중이 잘 모르고, 민간조정에 대한 법조계의 이해와 관심도 부족하며, 중재와 같은 국가적 차원의 입법적, 정책적 지원도 없다. 그러다 보니 민간조정에 대한 신뢰수준이 낮은 편이고, 민간조정인 양성을 위한 교육과 활용의 기회도 매우 적다. 한국의 경우 대한상사중재원이 민간조정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한국조정학회와 공동으로 조정전문가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2020년에는 국제상사분쟁을 조정하는 민간기관인 국제조정센터(KIMC)가 출범하였다. 이에 비해 외국, 특히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영리, 비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조정 서비스 기관들이 많이 있는데, 예를 들어 AAA, JAMS, CIArb, CEDR, ICC ADR센터, SIMC 등이 있다.


Ⅲ. 조정의 목적과 원리

우리나라는 민사조정법을 포함하여 조정의 근거가 되는 개별 법률에 '조정' 자체를 정의하고 있지 않으나 외국의 국내법이나 국제조약은 조정을 명확하게 정의하여 조정의 목적과 원리를 분명하게 하고 있다. 독일 조정법에 따르면, 조정은 당사자가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조정인의 지원으로 그들의 분쟁을 자발적이며, 자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비밀이 유지되고, 구조화된 절차로 정의된다. EU조정지침에 따르면, "조정은 그 명칭이 무엇이든, 둘 이상의 분쟁당사자들이 조정인의 지원으로 분쟁 해결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그들 스스로에 의해 시도되는 구조화된 절차"를 의미한다. 싱가포르조정협약은 사용된 표현 또는 절차가 수행되는 근거와 무관하게, 분쟁당사자들이 그들에게 어떠한 해결을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 않는 제3자 또는 제3자들의 지원을 받아 그들 분쟁의 우호적인 해결에 도달하기 위해 시도하는 절차를 조정으로 정의하고 있다. 조정에 관한 그러한 공통된 정의에 비추어 보면 조정의 목적은 분쟁의 우호적 해결을 도출하는 것이고, 그러한 절차의 주체는 조정인이 아닌 당사자가 되어야 하며, 조정인의 역할은 (구조화된) 절차 내에서 당사자의 분쟁 해결을 지원하는 것이다. 조정은 사법적 절차가 아니므로 비공식적인 분위기에서 당사자들의 필요와 상황에 맞는 분쟁 해결을 모색할 수 있으며, 조정인은 조정 목적에 부합하게 조정절차 관리하고,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지원하며, 가능한 결과를 고려하여 당사자들에게 최선일 수 있는 적합하거나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도록 지원할 수 있다.


Ⅳ. 법원조정과 민간조정의 차이
법원조정과 민간조정은 모두 당사자들이 조정절차에 참여 여부, 조정절차에서 제시되는 조정안에 대해 수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사자의 자율성이 존중된다. 그러나 국내 법원조정과 민간조정은 조정의 목적, 절차 진행, 비용, 성립된 조정의 효력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국내 법원조정의 경우 분쟁을 공정, 적정, 신속하게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고, 법원이 선임하는 조정인과 배정한 조정시간과 장소에서 조정이 수행된다. 조정위원으로 위촉되는 요건에 조정 교육 이수나 조정 전문성을 갖출 것이 요구되지 않으며, 비법조인도 조정위원으로 조정절차에 참여할 수 있으나 절차를 주도하는 것은 주로 법조인이다. 주로 분쟁 사안에 대한 법적 평가를 기초로 한 조정안을 마련하여 당사자를 설득하는 평가적 조정 방식이 활용된다. 따라서 조정절차는 조정인 중심으로 진행되며, 절차 내에서 당사자가 문제를 해결하는 적극적인 주체로 인식되지 않으며 당사자에게 어떠한 역할이 요구되지 않는다. 당사자가 부담하는 조정비용은 소송 인지액의 1/10로 매우 저렴하고, 조정위원은 조정 당사자가 아닌 법원에서 수당을 받는다. 조정위원의 수당은 법원 예산상의 한계로 매우 적어 조정이 봉사 차원의 활동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민사조정법에 따라 성립된 조정은 재판상 화해의 효력을 갖는다.

외국의 민간조정의 경우 조정절차는 당사자 중심으로 진행된다. 당사자는 조정인 선정에 대한 합의, 조정절차의 수행에 대한 합의, 조정으로 해결될 쟁점의 범위 결정, 자신의 해결책 개발, 분쟁의 일부 또는 전부 해결 및 조정의 종료 등 조정 전반에 걸쳐 완전한 참여와 의사결정의 자유가 보장된다. 조정인은 중립적인 지위에서 당사자들의 필요와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도록 지원하며, 분쟁 해결을 위한 당사자 사이의 협상을 촉진함으로써 당사자들에게 맞춤형 해결책에 이르게 하는 촉진적 조정 방식이 주로 활용된다. 조정인은 조정의 교착상태를 극복하고, 진전시키는 다양한 조정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민간조정에서 조정의 질을 확보하기 위하여 조정인은 반드시 일정 시간 이상의 조정 교육을 받을 것이 요구되고, 조정인이 반드시 법조인일 필요는 없으나 법조인을 포함하여 특정 분야의 자격을 갖춘 전문가가 선호된다. 민간조정기관은 기관의 조정 규칙과 조정인 명부, 조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과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조정인의 행위규범을 갖추고 있다. 조정에 대한 일반대중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하여 EU의 경우 유럽조정인행위규범, 조정제공기관을 위한 유럽행위규범을 각각 채택하여 자발적 준수를 장려하고 있다. 민간조정의 비용은 조정 서비스 기관, 조정인의 수와 수준, 조정시간, 관리비용, 행정적, 기술적 지원 여부, 국제조정의 경우 번역과 통역 비용 발생 여부에 따라 다양하며, 조정인은 당사자에게 조정비용을 받는다. 외국에서는 저렴하거나 무료인 법원조정에 비해 민간조정이 고품질의 조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민간조정을 통해 해결 합의가 도출된 경우, 당사자 간 화해계약의 효력을 갖는다.


Ⅴ. 민간조정의 활성화 과제

민간조정은 기존의 법원조정의 구조적, 예산상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당사자 중심의 새로운 분쟁해결의 패러다임으로 분쟁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해결하며, 우리 사회의 상생의 분쟁 해결 문화를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또한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국제소송이나 국제중재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법적 제약 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관할권 중립적이며, 사업적 관계를 단절시키지 않으면서 시간, 비용 효과적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

민간조정의 활성화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시민 중심의 사법을 구현하는 국가 정책적 의제로서 장려되어야 한다. 국가적 차원의 통합적인 온라인 분쟁 해결지원 시스템을 통해서 개인이나 기업이 해당 분쟁을 해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분쟁해결절차를 사전에 체크하고, 관련 조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 민간기관과 원스톱으로 연결되도록 조정절차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민간조정 활성화를 위한 과제로 첫째, 조정 친화적 분쟁 해결 문화 조성을 위한 국가적 로드맵 수립, 둘째,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조정 촉진 의무 부과 및 조정을 통한 분쟁 해결 장려, 셋째, 조정기본법 제정, 넷째, 조정인 양성 교육 및 민간조정 서비스 산업 육성, 다섯째, 조정에 있어서 변호사의 역할 및 참여 강화, 여섯째 법원조정제도와의 연계 등을 들 수 있다.


이로리 교수(계명대 법학과)

종합법무관리솔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