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대법원, 법원행정처

법조계 “제약사에 불이익 강요…형평성 측면서 문제”

‘약가인하 환수법’ 무엇이 문제인가

리걸에듀

'약가인하 환수법(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는 이유는 이 법안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을 보호하기 위해 제약사 등의 재판 받을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의 효력을 형해화시킬 우려가 높을 뿐만 아니라 이 같은 불이익을 제약사 등에게만 강요해 평등원칙이나 형평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 많다. 법조계에서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안 심사 권한이 축소되는 가운데, 비슷한 내용의 입법시도가 방치될 경우 정부기관에 대한 사법통제가 느슨해지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175823.jpg

◇ "사법시스템 전복 우려"… 국회 법사위서 일단 제동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위원장 박광온)는 지난 10일 전체회의를 열고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대안으로 일괄 상정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심의했다. 법사위는 법안에 포함된 위헌 요소 등을 고려해 일단 법안을 법안심사제2소위원회에 넘겨 추가 검토하기로 했다.

개정안은 요양급여 부정 수급을 통제하면서 건강보험재정 누수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을 한 데 묶고 있다. △요양급여 대상자에 대한 본인여부 확인 강화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는 사람에 대한 징수 근거 마련 △보험료 체납자에 대한 독촉을 전자문서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 마련 등이다.


제약사 소송남용으로 

공단 재정손실 발생 이유지만

제약사가 패소하면 집행정지 결정은 

사실상 무의미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신설 조항인 '제101조의2'이다. 이 조항은 제약사가 본안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집행정지 기간 동안 공단이 지급한 요양급여비용과 집행정지가 결정되지 않았다면 공단이 지급해야 할 요양급여비용의 차액을 공단에 발생한 손실로 간주해 공단이 징수할 수 있도록 했다. 제약사들의 소송남용으로 공단에 재정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이 같은 제도는 기존 집행정지 제도와 배치되는 것이다.


제소 물론 항소도 주저 

결국 재판청구권 침해 해당

 

현행 행정소송법 제23조는 행정청 처분의 정당성을 법원이 심리하는 기간 동안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집행정지 제도를 두고 있다. 법원은 직권이나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행정처분의 효력·집행·절차 등의 전부나 일부를 정지 결정할 수 있다. 집행정지 결정 또는 기각 결정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즉시항고를 할 수 있다. 원고가 본안소송에서 패소하더라도 집행정지 결정의 효력은 그것대로 유효하며 소급해 사라지지 않는다. 대법원도 2020년 "항고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본안소송에서 패소 확정 판결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집행정지 결정의 효력이 소급해 소멸하지는 않는다"고 판결(2020두34070)한 바 있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제약사 등이 본안소송에서 패소하면 집행정지 기간 동안 벌어들인 수익의 상당 부분을 환수당하게 된다. 사실상 집행정지 결정이 없었던 것과 같은 셈이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본안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공단으로부터 징수당할 것을 우려해 제소는 물론 항소나 상고 등에 주저할 우려가 크다"며 "이는 결국 재판청구권을 침해당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175823_1.jpg

◇ 법원행정처도 "신중검토" 의견 =
법원행정처도 최근 이 법안에 대해 국회에 신중 검토 의견을 제출해 사실상 반대했다.

법원행정처는 의견서에서 "개정안과 같이 제약사 등이 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해 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후 본안소송에서 패소한 경우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이 있었던 기간 동안 마치 처분의 효력이 정지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 기간 동안 공단에 발생한 손실 상당액을 추징하는 것은 현행법상의 집행정지 제도의 취지와 상충되고,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의 효력을 형해화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집행정지 기간 동안 건강보험공단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면, 집행정지 심리 단계에서 이를 소명해야 한다"며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에 대해서는 항고나 집행정지 취소를 신청하는 방법으로 불복하는 것이 현행법 체계에 부합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사 입법례도 찾기 어렵다"며 "평등원칙과 형평성을 고려했을 때 (이 법이 시행될 경우) 적용을 받는 제약사와 비(非)제약사를 다르게 취급할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집행정지 소급적 무효화는 

굉장한 행정 편의적 발상  


◇ 법조계 "사법체계 무력화" 우려 =
지난 10일 열린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사실상 (제약사는) 집행정지 신청를 하지 말라는 법안"이라며 "집행정지 제도가 무력화될 우려가 있다. 현행 소송법 체계를 완전히 무시하는 법이 국회에 올라왔다는 것 자체가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어 "집행정지는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개정안은) 위헌적 법안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 유상범 의원도 "필요성에는 일부 공감하지만, 행정적 필요에 의해 민사소송의 대원칙을 흔들어버려서는 곤란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류근혁 보건복지부 2차관은 "집행정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집행정지를 전제로 법안을 만들었다"며 "본안판결의 결과에 따라 반드시 돌려줘야 되는 부분과 (공단이) 돌려받을 수 있는 있는 부분을 구분했다"고 설명했다.

한 변호사는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을 절약하기 위해 법원의 적법한 결정을 임의로 뒤집고 사법적 통제로부터 벗어나려는 위헌적 발상"이라며 "보건복지부가 법원으로부터 제동이 걸릴 부담 없이 약가인하 처분을 발동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앞서 발의된 유사 법안들은 법사위에서 충분히 걸러졌는데, 또 다시 비슷한 법안이 법사위 전체회의에까지 상정됐다"며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 권한이 축소되면서 법 체계의 틀을 흔드는 법안 발의가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다른 변호사는 "재심이나 집행정지 취소 판결을 받아야 할 사안을 소급적으로 무효화하겠다는 굉장히 행정편의적인 발상"이라며 "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오리지널 특허를 가진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복제약을 만드는 국내 제약사를 상대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장은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국부 유출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며 "국민건강보험법 외에 식품위생법 등에도 유사한 시도가 이어지면, 헌법상 국민의 재판청구권이 형해화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종합법무관리솔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