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로펌

대법원에 묶인 ‘총수일가 일감 몰아주기’ 판결

공정위, 대한항공 총수일가 지분보유 계열사에 과징금

174998.jpg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총수일가 일감 몰아주기 제재 조항을 처음으로 적용해 과징금을 부과한 사건에 대해 서울고법이 '부당한 이익'을 공정위가 증명하라며 제동을 건 판결을 내놓은지 5년째 접어들었지만, 대법원이 최종 판단을 미루고 있어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정위가 서울고법 판결에 불복해 곧바로 상고했지만, 대법원에서는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이 사건이 법조계는 물론 재계 안팎에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에 하루빨리 대법원이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고법 행정2부(당시 재판장 김용석 부장판사)는 2017년 9월 대한항공과 싸이버스카이, 유니컨버스가 공정위를 상대로 낸 과징금 부과 처분 등 취소소송(2017누36153)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이 사건은 대한항공이 2015년 2월부터 11월까지 총수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싸이버스카이와 유니컨버스에 판촉물 업무와 인하대학교 콜센터 업무를 맡기면서 판촉물 매입가격을 인상해 주는 등 부당한 이익을 몰아줬다는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14억3000만원과 함께 시정명령 처분을 받았던 사건이다.
 
서울고법
 “불공정 거래의 증명 책임은 공정위에” 판결

하지만 서울고법은 대한항공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나 그의 자녀들이 소유한 이들 계열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어 일감을 준 것에 대해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위법하다고 봤다. 대한항공이 제공한 이익의 부당성에 대해 공정위 측의 증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사건은 2014년 2월 시행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3조의2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등 금지' 조항이 적용된 첫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이 조항은 공시 대상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의 경우 친족 등 특수관계인이나 특수관계인이 일정 비율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계열회사 등에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기존 공정거래법상 규제 대상인 부당지원행위는 현저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로 한정돼, 사업자가 아닌 특수관계인 개인을 지원하는 경우에는 사실상 공정거래 저해성을 입증하는 것이 어려워 규제가 힘들었다. 이에 공정한 거래를 저해하는지 여부가 아닌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위법성을 판단해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이익 제공을 금지하기 위해 해당 조항이 신설됐다.
 
공정위서 불복 상고
 대법원은 5년째 “법리 검토 중”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시행 이후 특수관계인에게 이익을 귀속시켰으면 거래를 통해 얻는 이익이 얼마인지 등에 관계 없이 그 자체로 부당한 이익이 되는 것이므로, 부당성이라는 독립된 요건을 검토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공정거래법 제23조의2의 입법취지와 목적, 입법경과, 문언내용, 법령 해석의 일반 원칙 등에 비춰 볼 때 '부당성'도 독립된 규범적 요건으로 인정된다"며 "이 조항이 규정하고 있는 '정상적인 거래에서 적용되거나 적용될 것으로 판단되는 조건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불공정 거래행위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같은 법 제23조의 정상가격에 관한 해석론을 참작하되, 입법취지에 맞게 공정거래 저해성이 아니라 경제력 집중 등의 맥락에서 조화롭게 해석해야 하며, 이와 같은 부당성에 대한 증명책임은 공정위에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싸이버스카이가 대한항공으로부터 이득을 본 금액들이 그 기간 매출액의 1%에 불과해 이 사건 거래를 통해 사익을 편취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거래를 통해 얻는 이익이 크지 않는 등 사익편취로 경제력 집중효과가 발생할 여지가 없거나 극히 미미한 경우에는 '부당한 이익'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로펌들 최종판결 없는 상태
 관련 사건 자문 등 애먹어


공정위는 이에 불복해 상고했고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됐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서울고법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하면 공정거래 실무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최종 결론을 내려야 할 대법원이 2017년 이후 5년째 판결을 내리지 않아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공정위는 서울고법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총수일가 일감 몰아주기 혐의 사건에 대해서는 내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강도 높은 과징금 제재를 이어나가고 있다.
 
법원장을 지낸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공정위 측에서는 자신들의 기준이 옳다고 주장하며 그 기준에 따라 계속 과징금 처분을 내릴 수 있다"면서 "민법의 법리가 수학적으로 명확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 대법원은 다른 사건의 진행 경과를 지켜보고 있느라 검토가 늦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이 예민하고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대한항공 사건 하나만 갖고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로펌들은 대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어 관련 사건 자문 등에서 애를 먹고 있다. 로펌들은 일단 구체적인 사건 진행 전이면 자문시 기업들에게 서울고법 판결과 공정위의 태도를 두 갈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미 진행 중인 사건의 경우에는 서울고법 판결을 근거로 부당한 이익이 아니었음을 주장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법조계 안팎
 “신속한 판결로 실무상 혼란 없도록 해야“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만약 서울고법 판단이 맞다고 진작에 판결했다면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을 받지 않았을 기업들이 여럿 있다"며 "대법원이 하루빨리 판결을 내려 실무상 혼란이 없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로펌 변호사는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를 예방하는데 참고할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공정거래팀에서도 계속 대법원 판결을 주목하고 있었는데 5년째 법리 검토 중이라고만 해서 답답하다"며 "대법원 판결이 늦어지는 동안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받았던 기업들은 향후 대법에서 판결이 확정되면 또다시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등 추가적인 절차를 통해 구제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판사는 "일감 몰아주기 조항과 관련한 명시적인 대법원 판결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부당한 이익이나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에 관한 해석·기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대법원이 그에 관한 판단을 빨리해야 실무상 혼선이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공정거래 사건에서도 3심제 도입이 시급하다"는 말도 나온다.
 
한 부장판사는 "고법 판결이 이뤄지고 대법원에 가게 되면, 새로운 증거라든가 사실관계의 제출이 제약되고 법리적인 판단이 이뤄질 뿐"이라며 "만약 3심제에 따라 1심에서 이런 판결이 났다면, 2심에 올라가서 공정위 입장에서도 '부당성'을 입증할만한 새로운 증거와 사실관계를 제출하기가 용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가언·이용경 기자   ganiii·yklee@
 
Next

한 주간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