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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국제소송에서의 '관할권'과 '소(訴)의 허용성'에 관한 소고(小考)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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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 론

국제사법재판소(약칭 'ICJ')를 포함하여 국제재판소에서 소송이 진행될 때 제기되는 '선결적 항변(preliminary objections)' 중 '관할권(jurisdiction)'과 '소(訴)의 허용성(admissibility)'은 흥미로운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국제재판소의 관할권은 그 국제재판소를 창설한 국가들에 의해 규정(規程) 등을 통해 혹은 (그 국제재판소에 문제의 분쟁을 회부한) 분쟁당사국들 자신에 의해 부여된다. 하지만 자신의 관할권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국제재판소는 소의 허용성을 부인하며 소송의 진행을 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의 허용성 문제는 관할권 문제만큼 중요한 문제이다.

특히 유엔해양법협약 같은 조약 내에 포함된 관할권 조항이 '물적 관할권(jurisdiction ratione materiae)'을 한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 분쟁당사국(들)이 국제재판소에 회부한 분쟁이 (이미) 부여된 물적 관할권 내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다소 모호하다면 그 국제재판소는 바로 관할권을 부인할 것인지 혹은 관할권은 인정하나 소의 허용성을 부인할 것인지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직면할 수 있다. 관할권과 소의 허용성에 관한 이론적 논의, 특히 그 '구분'을 전제로 했을 때 최근 국제해양법재판소(약칭 'ITLOS') 특별재판부 및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가 선결적 항변 절차를 끝낸 2021년 모리셔스-몰디브 사건과 2020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사건은 비판의 여지가 상당하다. 이 두 사건은 지난 100년 가까이 국제재판소 판례를 통해 인정되어 온 관할권과 소의 허용성의 구분을 무시하고 '선결적 항변'이라는 우산 아래에서 그 구분의 적용과 함의를 경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Ⅱ. 관할권과 소의 허용성의 구분
1. 국제재판소 판례가 인정하는 관할권과 소의 허용성의 구분

국제재판소의 역사를 되짚어 보았을 때 관할권과 소의 허용성의 구분은 ICJ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상설국제사법재판소(약칭 'PCIJ') 시절부터 인정되었다. 예를 들어, 결론적으로 소의 허용성이 부인되지는 않았지만 1925년 Certain German Interests in Polish Upper Silesia 사건에서 PCIJ는 이미 소의 허용성을 관할권과는 구분되는 문제로 인식했다. 그리고 1939년 Panevezys-Saldutiskis Railway 사건에서 PCIJ는 에스토니아가 국내구제수단 완료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리투아니아의 소의 허용성에 대한 항변을 받아들여 소의 허용성을 부인했다. 이러한 PCIJ의 관할권과 소의 허용성의 구분은 ICJ에 의해서도 받아들여졌다. 특히 이탈리아가 프랑스, 영국, 미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1954년 Monetary Gold 사건은 관할권과 소의 허용성의 구분을 인정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관할권과 소의 허용성의 구분에 관한 고전적 논의의 핵심은 '구분' 그 자체에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고전적 논의는 관할권에 대하여는 인적, 물적, 시간적, 장소적 관할권을 구분하여 검토하고, 소의 허용성에 대하여는 소의 허용성이 부인되는 사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과 같은 평면적인 논의에 머물도록 할 뿐이다.

2. 최근 논의의 정리 및 함의

국제소송 전문가인 유발 샤니(Yuval Shany) 히브리대 교수는 관할권은 어떤 국제재판소가 자신에게 회부된 분쟁을 판단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의 문제로 볼 수 있는 반면에, 소의 허용성은 그러한 관할권의 행사를 거절할 그 국제재판소의 '재량(discretion)'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설명은 즉각적으로 소의 허용성 여부를 판단할 재량을 부여하는 (국제)법적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즉, 소의 허용성을 부인하기 위해서는 국제재판소에게 그러한 '재량'을 부여할 수 있는 관련 조약 내 특정 조항 또는 관련 (국제)법 규칙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Ⅲ. 소의 허용성 관련 법 규칙과 국제재판소의 재량

국제법상 어떤 법 규칙이 소의 허용성 관련 법 규칙인지를 살펴보면 소의 허용성을 부인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법 규칙이 실제로 국제재판소의 재량을 담보하고 있는지가 확인될 수 있다. Shany 교수는 국제재판소가 소의 허용성을 부인하기 위해 원용할 수 있는 세 가지 법적 근거를 제시했다.

첫째, 국제재판소가 자신의 관할권을 행사하지 않을 재량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수권'이 언급된다. 이러한 수권은 법적 절차의 남용 방지를 언급하고 있는 유엔해양법협약 제294조 제1항 같은 법적 근거를 통해 부여될 수 있다.

둘째, 어떤 특정 사건에서 관할권을 행사하지 않을 국제재판소의 '고유의 권한(inherent power)'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러한 고유의 권한을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개념 또는 근거로 Shany 교수는 '사법기능(judicial function)', '소송경제' 등을 언급했다. 즉, 어떤 특정 사건에서는 사법기능 등을 이유로 재량적으로 관할권을 행사하지 않을 국제재판소의 고유의 권한이 인정될 수 있는데, 이러한 권한의 행사를 통해 소의 허용성이 부인된다.

셋째, 특정 조약 내 조항이 아닌 '국제관습법'에 근거하여 관할권이 행사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언급된다. 대표적인 예로는 국제관습법 내에 존재하는 국내구제수단 완료의 원칙 등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소의 허용성 관련 법 규칙이 실제로 소의 허용성을 부인하기 위한 국제재판소의 재량을 담보하고 있는지가 정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소의 허용성 관련 법 규칙마다 국제재판소에게 부여하는 재량이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엔해양법협약 제294조 제1항이 함축하고 있는 법적 절차의 남용 방지와 제295조가 규정하고 있는 국내구제수단 완료의 원칙은 그 적용에 있어 (국제재판소의) 재량의 정도가 같지 않다는 뜻이다. 전자는 국제재판소에게 소의 허용성을 부인할 상당한 재량을 부여하나 후자는 그 정도의 재량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Ⅳ. 관할권과 소의 허용성을 구분하는 이유

다른 각도에서 관할권은 국제재판소의 권한과 관련된 문제로, 반면에 소의 허용성은 분쟁당사국들 간 좀 더 일반적인 절차적 관계와 관련된 문제라고 치환되어 설명될 수 있다. 따라서 관할권과 소의 허용성이 구분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아래와 같이 관할권과 소의 허용성을 구분하는 세 가지 정도의 이유가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관할권과 소의 허용성은 각 문제가 제기되는 선·후 '순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구분되어야 한다. 즉, 일반적으로 먼저 관할권이 존재한다는 점이 확인되어야 다음으로 소의 허용성 문제가 다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관할권과 소의 허용성을 순서의 관점에서 구별하면 오히려 소의 허용성은 관할권과는 관련이 없음에도 절차를 진행하는 데 있어 검토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다양한 주제를 포함하는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금반언(estoppel)조차 소의 허용성 맥락에서 논의되기도 한다.

둘째, 관할권과 소의 허용성은 진행되고 있는 절차의 '종료'와 '정지'의 관점에서 구분될 수 있다. 이는 만약 국제재판소에 회부된 어떤 분쟁에 대한 관할권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지어진다면 절차는 '종료'되는 반면에, 소의 허용성이 부인된다는 것은 소송이 허용되지 않는 이유가 사라진다면 절차가 재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절차의 '정지'를 가리킬 뿐이라는 의미이다.

셋째, 국제재판소는 반드시 자신의 관할권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나 소의 허용성의 경우 반드시 이 문제가 검토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관할권과 소의 허용성은 구분된다. 즉, 관할권은 (분쟁당사국들이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더라도) 국제재판소 자신이 확인해야 하는 문제이나 소의 허용성을 국제재판소 자신이 반드시 다루어야 할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할권 문제를 검토할 주도권은 국제재판소에 있으나 소의 허용성 문제는 (국제재판소 자신이 아닌) 주로 분쟁당사국들에 의해 제기되며, 이는 다른 측면에서 국제재판소가 소의 허용성 문제에 관한 한 이 문제를 국제재판소 자신의 '재량' 하에 다룰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V. 결 론

위에서 논의된 것처럼 관할권과 소의 허용성은 그 개념에 있어서도 그리고 그 적용에 있어서도 명백히 그 구분에 실익이 있다. 특히 관할권이 인정된 상황에서도 '소의 허용성' 관련 논의를 통해 국제재판소는 본안으로 나아가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선택의 전제조건은 소의 허용성 관련 법 규칙이 존재해야 하고, 이 법 규칙을 해석하면서 그 국제재판소의 재량이 행사된다는 것이다.

결국 소의 허용성 중심으로 국제재판소가 선결적 항변 문제를 다루게 되면, 이는 그 국제재판소에게 본안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재량적 선택의 여지가 넓어진다는 의미이다. 더 나아가 특히 영토주권에 관한 분쟁이 결부된 분쟁의 (유엔해양법협약 제288조 제1항의 의미 내에서) 관할권 인정 여부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관할권 인정을 전제로 소의 허용성을 판단하면서 본안으로 나아갈 것인지의 문제를 다시 한 번 고려할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제공될 수 있다.


이기범 교수(연세대 로스쿨)

종합법무관리솔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