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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제처,감사원

“영업비밀 제출하라니…” 기업들 국감 때마다 ‘진땀’

의원들 ‘노동환경 개선’ 등 명분으로 무차별 요구

미국변호사

A기업은 최근 국정감사 기간 동안 모 국회의원실 자료제출 요구때문에 진땀을 뺐다. 이 의원실에서 A사 근로자들의 근로환경을 확인해야겠다면서 근로계약서 제출 등 자료 제출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A사 측은 난감했지만 의원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노사 갈등이 깊어진 터라 의원실에 제출한 계약서가 유출되거나 다른 용도에 쓰이진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했다.

 

B그룹 역시 비슷한 문제로 곤혹을 치렀다. 다른 국회의원실에서 회사 대표의 사생활과 관련된 자료 제출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해당 의원실은 재판이 진행 중인 인물과 그룹 대표의 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대표가 어디서, 누구와 식사를 했는지 등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B그룹 측은 사생활과 관련된 기록이라 제출할 수 없다고 설명했지만, "그룹 대표에게 사생활이 어디 있느냐"는 의원실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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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사는 또다른 의원실로부터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자료 제출을 요구받아 당혹스러웠다. 해당 의원실은 로열티와 마진율 등에 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는데, 이는 경쟁사에 유출되면 안 되는 영업비밀이자, 거래 기업 간에도 비밀유지 서약을 한 내용이라 공개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하면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관련 자료 일부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요구거부 땐 불이익 올까

 ‘울며 겨자먹기’ 제출도

 

2021년 국정감사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 가운데 이처럼 국회의원들의 자료제출 요구에 시달리는 기업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국정감사는 입법부인 국회가 국정 전반에 관한 조사를 행하는 것으로 원칙적으로 행정부처 등 국가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지방자치단체도 국정감사 대상이지만 특별시와 광역시, 도 등 광역자치단체만 대상이고 그나마 감사범위는 국가위임사무와 국가가 보조금 등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한정된다. 하지만 이처럼 '갑질 근절', '노동환경 개선' 등 갖가지 이유로 사기업에 무차별 자료 제출을 요구하거나 대표 등 임직원 출석을 요구하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심지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에 대한 국회의원 자료제출 요구를 일률적으로 금지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기업들이 부당한 자료제출 요구에 대해서는 거부할 수 있는 사유를 명확히 설정하고 이의 제기 절차를 신설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국회의원들의 자료제출 요구가 남발되는 것은 이를 막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의 자료제출 요구 남발 제한 

규정도 없어

 

현행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8조는 '감사 또는 조사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계속 중인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아니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기업이 자료제출 요구에 응할지 여부는 원칙적으로 해당 기업의 자율에 맡겨져 있지만 국회의원과 그가 소속된 정당 등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거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재계의 반응이다. 영업비밀 유출 등을 우려해 자료 제출 요구에 불응하고 싶어도 자칫 의원실에 밉보이면 오너 등 대표가 국정감사장에 불려나가거나 다른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자료제출 요구를 받으면 의원실의 의도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하고 자료제출 범위를 두고 의원실과 협의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감독기관인 행정청을 통해 자료 요구를 해오는 경우도 있다. 국회의원들이 해당 기업을 관할하는 행정청에 기업 자료를 요구하면 행정청이 기업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전달하는 식이다. 기업 입장에선 감독기관의 요구라 이 역시 거부하기 어렵다.


전문가들

 “거부사유 명확히

 이의제기 장치 필요”

 

이 때문에 의원실과 기업 사이에 완충지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원회나 기구를 신설해 이의제기 등 최소한의 불복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통해 자료 제출 요구 남발을 줄이고, 기업이 영업비밀 등을 제출하지 않을 수 있는 정당한 퇴로를 열어 줘야한다는 것이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기업 입장에서는 영업비밀 등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싶어도 의원실에서 아니라고 하면 반박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국회에 의원실과 기업 사이의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원회나 기구를 신설해 자료 제출 요구가 정당한 것인지를 판정하는 등 최소한의 불복 절차를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로펌 변호사는 "사후적으로라도 국회의원들의 자료제출 요구가 정당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시민단체 등의 평가가 의무화된다면 국회의 자정 효과를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변호사는 "국민의 대표로서 자료를 요구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업들을 상대로 군기 잡듯이 자료제출을 요구하거나 제공된 자료가 유출돼 기업에 피해가 발생한 경우 등에 있어서는 패널티를 주는 방안을 강구하는 등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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