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연구논단

소수의견에 관한 비교법적 검토

- 하급심에서의 소수의견 기재를 중심으로 -

미국변호사

172233.jpg

I. 서론

대륙법계 국가는 정해진 법적 명제를 선언하고 그 명제에 사실관계를 대입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것을 법관의 역할로 본다. 그러나 보통법계의 법원은 당사자의 노력과 입증에 따라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도 달라질 수 밖에 없고, 시대를 관통하는 금과옥조의 법률이 아니라 판사들이 동료들과 공유하는 편견마저 판례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대륙법과 보통법의 이러한 차이가 부각되는 주제가 소수의견의 명시 여부이다. 소수의견은 현재 많은 대륙법계 국가에서도 이를 인정하고 있으나, 소수의견 기재가 자리잡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고, 최근 각종 국제재판소에서 소수의견 허용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재점화된 바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하급심 판결문에서 소수의견을 기재한 사례가 논란이 된 바 있는데, 이는 앞서 설명한 대륙법과 보통법에서 소수의견을 바라보는 각 태도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하 그 배경과 허용 여부에 관해 살펴본다. 상세한 논증은 졸고 '소수의견에 관한 비교법적 검토', 사법(56호, 2021.6.) 795면 이하를 참고하길 바란다.


Ⅱ. 소수의견에 관한 찬반론

소수의견에 대한 찬반론의 논거는 ① 법관의 독립성 보장, ② 판결과 법원의 권위와 설득력 유지, ③ 동료적 협력관계유지 등으로 대별된다. 같은 논거를 들어 찬성론은 소수의견이 이를 강화해 준다고 주장하고, 반대론은 약화한다고 주장하는 점은 흥미롭다. 소수의견 반대론의 주요 논거는 다음과 같다. ① 합의의 비공개성을 유지해야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재판의 독립성이 유지된다. 법원의 단일한 견해 표명은 판사 개인이 아닌 법원 내지 합의체를 부각시킴으로써 외부의 부당한 영향력과 판사 개인에 대한 보복가능성으로부터 판결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연대인데 소수의견은 이를 약화시킨다. ② 소수의견은 판사들 사이에서도 결론에 관한 다툼이 있고 다른 결론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주어 법적인 안정성과 판결의 신뢰성을 해한다. 특히 법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새로운 법을 적용하는 사건일수록 소수의견은 판결의 안정성과 판결에 대한 승복을 어렵게 만들며, 더 많은 소송을 양산한다. 실제로 이는 유럽사법재판소(CJEU)에서 소수의견제도를 채택하지 않은 이유가 되었다. ③ 소수의견은 재판부의 동료적이고 협력적 분위기를 해친다. 소수의견 기재를 허용하면 법관은 이른 시기에 설득과 토론을 멈추고 자기 주장만 되풀이하면서 감정대립이 격화될 수 있다. 반면, 소수의견 찬성론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① 소수의견은 개별 법관의 내부적 독립성과 사상 및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며, 외부로부터의 독립성은 법관 임기의 장기화, 재임용제도 폐지 등 별개 수단으로 달성할 수 있다. ② 소수의견은 법원의 판단에 반대하는 개인·집단에게도 그들의 생각과 이익이 무시되지 않았고, 이를 충분히 고려하고 논의하였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알려주어 판결의 권위와 설득력이 높아진다. ③ 소수의견은 오히려 동료적 협력관계를 증진시킬 수 있고, 향후 다수의견이 될 수도 있는 법적 결론에 대한 논거를 제시해 줄 수도 있으며, 입법적인 보완이 바람직한 사안에서 공론을 촉진시키고, 사회변화를 선도하거나 대비하게 할 수 있다. 각 논거에서 알 수 있듯이, 찬성론은 긍정적 이상론의 입장에 서 있고, 반대론은 부정적 현실론에 서 있다. 그러나 현실은 완벽히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으며, 어떤 제도이든 당해 사회의 현실에 가장 부합하는 형태로 운용되어야 한다. 타국의 사례는 우리 현실에 맞는 방법에 관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


Ⅲ. 법원의 소수의견 기재에 관한 각국의 태도

먼저 영미법계를 보면 영국에서 판결은 전통적으로 개별의견제도에 의한다. 개별의견제도에서는 합의체를 구성하는 법관의 의견이 개별적으로 공표될 뿐, 다수의견과 소수의견 방식의 판결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영국법상 항소법원 형사부의 판결에서는 재판장이 지시하는 경우가 아닌 한 반대의견의 기재가 금지된다. 미국에서도 초기에는 개별의견제도에 따라 각 법관이 개별의견을 법정에서 구두로만 공표하였으나, 마셜 대법원장이 기관으로서 대법원의 단일 의견을 표명하는 관행을 확립하였다. 이후 소수의견을 별도로 기재하는 사례는 점차 증가하였고, 아무런 법률이나 내부 규정이 없지만 당연한 방식으로 인정되고 있다. 하급심에서도 소수의견의 기재가 인정되나 대부분의 하급심 법관들은 소수의견 기재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 외 웨일즈,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뿐만 아니라 영미법계에 속하는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남아프리카공화국 및 기타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도 소수의견의 기재와 공개는 허용된다. 단, 아일랜드에서는 특이하게도 헌법 사건에 대해서는 소수의견 공개가 금지된다.

대륙법계 중 독일에서는 1877년 재판소구성법 제정 당시 소수의견 허용여부에 관해 견해가 나뉘었으나, 소수의견은 독일과 이질적 제도이며 각 재판관의 의견이 아니라 추상적인 재판관의 독립과 국가·재판소의 권위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소수의견을 기재하지 않는 안이 최종 채택되었다. 이후 독일 헌법재판소가 '슈피겔 판결'사건에서 최초로 합헌 의견과 위헌 의견을 별개로 기재하면서 큰 논란의 발단이 되었고, 1968년 독일 법학자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투표를 한 결과 '헌법재판소, 대법원과 기타 일부 법원에서는 반대의견의 기재를 허용하되, 다른 모든 법원에서의 기재는 반대'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의회는 헌법재판소의 소수의견 기재만 허용하고 대법원을 비롯한 다른 법원에 대해서는 결국 소수의견을 허용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법을 개정하였다. 프랑스에서는 법관의 합의 비공개 원칙에 따라 소수의견 기재를 금지하며, 합의의 비공개 위반행위는 형법상 처벌대상이 된다. 국사원은 판결이 전원일치인지 아닌지를 공개하는 것조차도 금지된다고 판시하기도 하였다. 그 외 이태리와 헝가리에서 일반 법원의 소수의견은 공개되진 않지만 기록될 수 있고, 밀봉되어 항소심 법원만 접근할 수 있다.

이상의 사례를 보면 다음의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헌법재판소를 별도로 두고 있는 국가에서는 헌법재판소와 일반 법원을 분리하여 전자에서 소수의견 기재만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일반 법원에서 소수의견 기재를 허용하더라도 형사사건은 그 적용대상에서 배제하는 사례가 있다. 셋째, 소수의견의 기재를 허용하는 사건에서도 기재 방식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 그 제한 방식은 익명성, 밀봉 후 제한적 공개 등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넷째,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최고법원이 아닌 하급심 법원에서 소수의견을 기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Ⅳ. 우리나라 하급심에서의 소수의견 기재 허용가능성

대륙법계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법체계에 비추어 볼 때 아래와 같은 이유로 하급심에서의 소수의견 기재는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고, 현행 법원조직법 제15조에 의해 대법원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허용된다고 생각된다. 첫째, 본래 소수의견 제도는 1심은 배심제에 의하고(따라서 법관의 소수의견이 문제될 여지도 없다), 항소심은 의회에서 담당하였던 영국의 개별의견제도가 미국으로 건너가 변형된 독특한 발전과정에서 유래한 것이다. 반면,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합의의 비공개 원칙을 명시하는 규정을 두고 이를 엄격히 준수해 왔다. 둘째, 소수의견 제도는 위헌법률심사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헌법재판은 헌법이라는 추상적 대원칙에 근거하여 국민이 직접 선출한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정당성을 심판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도의 가치 판단과 사회통합적 기능이 강조될 필요성이 더 크다. 셋째, 영미법계에서 상소제도는 본래 2심이 기본이었고, 2심은 사후심으로서 법률심만을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대륙법계에서도 항소심을 속심이 아닌 사후심으로 운영하는 경우 항소심의 판단이 최종적 판단일 가능성이 높고, 항소법원이 대법원에 준하는 기능을 분담할 필요가 더 크지만,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또한 영미법계와 대륙법계는 법관의 선발과 교육방식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대륙법계가 소수의견의 기재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온 것도 이러한 종래의 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실체법, 절차법적 측면 뿐만 아니라, 법률 교육과 법관 선발제도 등의 많은 부분에서 영미법계를 빠르게 혼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제에 ① 민사 사건의 항소심에서, ② 단순한 사실관계가 아닌 법리적인 문제에 한하여, ③ 합의부 구성원 전원이 소수의견의 공개에 찬성하는 경우 소수의견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판결에는 모든 구성원이 서명날인하되, 소수의견에는 해당 법관의 이름만 표시하는 것으로 법에 명문의 규정을 마련하는 것도 개선방법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경우라면, 하급심에서의 소수의견이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논란을 촉발하지 않고, 민감한 사건에서 법관이 개별 의견 표명을 강제당하지 않도록 하면서도, 당사자가 절차적인 만족감을 얻고 상고심에서 더 충실한 공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순기능이 강조될 수 있을 것이다.


조인영 교수 (연세대 로스쿨)

종합법무관리솔루션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