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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

ESG 투자와 행동주의

미국변호사

[2021.08.03.]



들어가며 - 친환경 행동주의 펀드의 반란

2021년 5월 26일, 미국 최대 석유회사인 엑슨모빌의 주주총회에서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친환경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엔진넘버원이 추천한 이사들 중 3명이 엑슨모빌의 이사로 선임된 것입니다. 엔진넘버원은 엑슨모빌의 주식을 불과 0.02% 보유한 소액주주이지만 이사회의 25%(3명/12명)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엔진넘버원은 엑슨모빌이 기후위기 대응에 실패했으므로 경영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등 기관투자자들과 ISS 등 의결권 자문사들이 엔진넘버원의 손을 들어주면서 주주총회 표대결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흥미로운 이유는, 기존에 재무적 단기차익만을 추구했던 헤지펀드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헤지펀드가 기후위기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모순은 아닙니다. 다만 주식시장에서 기관투자자들의 비중이 커지고, 보다 많은 기관투자자들이 투자 결정 및 주주권 행사의 요소로 ESG를 고려하면서, 가장 수익률에 민감한 헤지펀드마저도 비재무요소(ESG)를 내세워 행동주의 전략을 일부 수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본시장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ESG의 기원 - 2006년 UN 책임투자원칙(PRI)

ESG란 용어의 기원은 200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코피 아난 前 UN 사무총장은 2005년 초 세계적 기관투자자들에 책임투자를 위한 원칙 개발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12개국의 20개 기관투자자들이 이 제안을 수용하였고, 투자산업·정부·시민사회 등에서 70명의 전문가 그룹이 참여하여 2006년 책임투자원칙(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 PRI)을 만들었습니다.


책임투자원칙은 6가지로 구성됩니다.1) 이 중 첫째 원칙은 “우리는 모든 투자분석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ESG 이슈를 반영한다.”입니다. 투자대상기업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ESG 정보를 고려한다는 ‘사전적 전략’입니다. 둘째 원칙은 “우리는 행동주의적 주주(active owner)가 될 것이며, 우리의 주주권 행사에 ESG 이슈를 활용한다.”입니다. 투자 이후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ESG 정보를 활용해 주주권 행사한다는 ‘사후적 전략’입니다. 셋째 원칙은 “우리는 투자 대상에 대해 적절한 ESG 정보를 요구한다”입니다. 이는 사전적 전략과 사후적 전략을 행사하기 위한 전제가 됩니다.


결국 책임투자원칙은 투자 결정 및 주주권 행사 과정에서 재무정보 이외에 ESG라는 비재무정보를 고려한다는 원칙입니다. 책임투자는 곧 ESG 투자(ESG Investing)인 셈입니다. 2006년 책임투자원칙이 수립된 이후, 각국의 연기금, 자산운용사, 의결권 자문사 등이 서명기관으로 참여하면서 ESG 투자는 확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ESG 투자의 리브랜딩 - ‘윤리’에서 ‘리스크-조정 수익’으로

오래전부터 ESG 투자와 유사한 흐름은 있었습니다. 이들은 윤리 투자, 가치 투자 또는 사회책임투자(SRI)라고 불렸습니다. 예를 들어, 18세기 감리교회 설립자인 존 웨슬리(J. Wesley)는 노예 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는 기업에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종교적 신념을 밝혔습니다. 1928년 출시된 세계 최초의 SRI 펀드(Pioneer Fund)는 담배ㆍ주류 등 죄악주(sin stock)를 포트폴리오에서 배제하는 전략을 처음 도입하였습니다. 1970년대 이후에는 베트남 전쟁 및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Apartheid)에 동조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 배제가 확산되었습니다. 이 투자자들은 도덕과 윤리적 가치에 기반하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습니다.


다만, 지금의 ESG 투자는 앞선 ‘윤리 투자’ 류의 흐름과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ESG 투자는 윤리나 가치보다는 ‘리스크-조정 수익’(risk-adjusted return)을 중시합니다. 단적인 예로, 과거에는 석탄산업에 대한 투자를 배제하는 이유로 ‘환경 오염의 중단’이라는 윤리적 동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석탄산업에 소송과 규제 리스크가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배제하여 ‘리스크-조정 수익’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2) 전자가 윤리에 기반해 ‘제3자’(사회)의 이익을 고려하는 투자였다면, 후자는 비재무 리스크를 관리하여 기관투자자들에 돈을 맡긴 ‘고객’(수익자)에게 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투자인 셈입니다.


윤리 투자가 ESG 투자로 전환된 배경에는 자본시장의 ‘기관화’와 영미법상 ‘신탁 법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1950년 상장회사 주식의 6.1%만을 기관들이 소유하였지만, 1980년 그 비중이 40%를 넘었고 최근에는 75%까지 증가하였습니다.3) 그런데 기관투자자는 타인의 돈을 관리하는 수탁자로서 고객에게 충실의무(duty of loyalty)를 부담합니다. 수탁자의 충실의무는 ‘고객의 이익만을 고려’하거나 ‘고객에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방향으로 투자할 것을 내용으로 합니다. 기관투자자의 윤리적 동기가 아무리 선하더라도 고객이 아닌 제3자의 부수적 이익을 위한 투자는 위법할 수 있습니다. 이에 기관투자자들은 ESG를 고려한 투자가 중장기적으로 리스크를 낮춰 수익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게 되었고, 종전의 ‘윤리 투자’ 또는 ‘사회책임투자’는 ‘ESG 투자’로 리브랜딩되었습니다.4)



ESG 투자 시장의 활성화 - 민간 자율기관들의 참여와 정부의 유도 정책

2006년 UN 책임투자원칙이 수립된 이후 최근 15년여 동안 ESG 투자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였습니다. 2020년 기준 책임투자원칙에 서명한 기관은 3,308개로 이들의 운용자산은 약 103조 달러(113,918조 원, 전세계 운용자산의 2/3)에 이릅니다. 실제 전세계 ESG 투자의 규모도 2012년 13.3조 달러(16,173조 원)에서 2018년 30.7조 달러(38,329조 원)로 3배 가량 증가하였습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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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는 민간 자율기관들이 ESG 투자의 흐름을 이끌었습니다. ① 기존 ‘글로벌보고 이니셔티브’(GRI)에 더하여,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 및 ‘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CFD)가 등장하여 재무적 성과와 연계된 ESG 공시 표준과 프레임워크를 만들었습니다. ② 블룸버그 등은 AI를 활용해 기업들의 ESG 데이터를 수집·축적하여 기관투자자들에 제공하였습니다. ③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등은 기업들의 ESG 등급을 평가하여 시장에 공개하였습니다. ④ ISS와 글래스루이스 등은 기업들의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하여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습니다. 기관투자자들은 표준수립기관, 데이터제공기관, 등급평가기관, 의결권자문기관 등의 조력을 받아 ESG 투자를 확대하였습니다.


정부도 ESG 투자를 유도(nudge)하는 정책을 만들었습니다. EU는 2014년 ‘비재무정보 보고지침’(NFRD)을 채택하여 대기업이 환경, 사회와 고용, 인권, 반부패와 관련된 정보를 공시하도록 하였습니다. 2018년에는 ‘지속가능금융 행동계획’을 통해 일련의 ESG 제도 도입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요지는 정부가 지속가능한 경제활동과 그렇지 않은 경제활동을 공식적으로 분류하고(EU 택소노미), 기업은 그에 따라 ESG 데이터를 시장에 제공하며(CSRD), 투자회사는 상품 등에 대한 ESG 정보를 고객들에게 구체적으로 공시하는 것입니다(SFDR). 정부는 사적 영역에서 자본의 흐름을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으로 돌리고, 그린 워싱을 방지하기 위해 자본시장의 질서를 정비하고 있습니다.7)



기관투자자들의 주주권 행사와 스튜어드십 코드

기관투자자들은 ‘투자 결정’(책임투자 1원칙)뿐만 아니라 ‘주주권 행사’(책임투자 2원칙) 시에도 ESG 요소를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기관투자자는 개인투자자에 비해 회사의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고, 주주총회 투표율이 높으며, 중장기수익을 추구하고, 보유주식을 매도하기보다 기업지배구조에 참여하여 경영진을 견제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미국은 3대 기관투자자(BlackRock, SSGA, Vanguard)는 S&P 500 기업 주식의 20% 이상을 보유하면서 전체 의결권의 25% 정도를 행사하고 있습니다.8) 기관투자자들이 진정한 주인(owner)으로서 회사의 의사결정에 관여할 여건이 갖춰진 셈입니다.


2010년 영국에서 제정된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는 기관투자자들의 주주권 행사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기관투자자들의 무관심’을 지적하였습니다. 회사의 지배구조와 내부통제 시스템이 부실함에도 기관투자자들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촉발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영국은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자율규범을 만들어 기관투자자들에게 회사의 리스크를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경영에 관여(engagement)하여 회사의 장기수익을 개선할 책임을 부여하였습니다. 기관투자자가 회사의 ‘주주’로서 지닌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할 때 고객의 돈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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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투자자가 주주권을 행사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투자대상 회사에 공개 서한을 발송하거나, 경영진과 비공개 대화를 시도하거나, 주주제안을 하여 이사 후보를 추천하거나, 위임장 경쟁을 통해 주주총회에서 반대의결권을 행사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블랙록은 CEO 명의로 매년 공개 서한을 발송하여 “SASB 표준과 TCFD 프레임워크에 따라 비재무정보를 공시할 것”,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을 제로로 만들 수 있는 기업 전략을 공개할 것”을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블랙록은 ‘2020년 투자 스튜어드십 연간보고서’10) 에서 지난 1년 동안 환경 이슈에 관하여 1,260회 관여를 하고 55차례 이사직 관련 반대의결권을 행사했으며, 인적자본관리(HCM) 이슈에 관하여 641개 기업을 대상으로 관여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전략 변화(?)

헤지펀드도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기관투자자 중 하나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헤지펀드의 행동주의(activism)는 연기금 등 전통적 기관투자자의 행동주의와 다르게 분류되었습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투자권유 대상을 소수의 고액투자자로 제한하고, 전문 펀드매니저들이 몇 개의 집중화된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면서, 수익률의 20% 정도를 성과보수로 수취합니다.11) 이들은 단기주의(short-termism)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으며, 기업에 자산 매각,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해 주가를 올린 후 보유주식을 매각하여 단기차익을 극대화하는 행동주의 전략을 구사합니다. 헤지펀드의 행동주의는 기업의 중장기수익을 개선하기 위해 경영진과 건설적 대화에 참여하는 연기금의 관여활동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다만 헤지펀드라고 반드시 단기주의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최근 헤지펀드는 장기적 관점에서 ‘운영상 행동주의’(operational activism)에 중점을 두는 경향을 보입니다. 12) 헤지펀드가 주주권을 행사해 이사회에 진출하고, 경영진을 교체하여 회사가 새로운 경영전략을 채택하도록 압박하는 전략을 주로 활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엔진넘버원의 행동주의는 이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전략은 다양하므로 엔진넘버원의 사례를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헤지펀드가 단독으로 행동주의를 성공시키기 어렵고, 위임장 경쟁에서 승리해 이사진을 확보하려면 다른 기관투자자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야 합니다. 많은 기관투자자들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준수하고 있으므로 헤지펀드도 ESG를 고려한 중장기 전략을 고심할 것으로 보입니다.



나가며 - ESG 투자의 전망

지금의 ESG 투자 흐름이 앞으로 계속될지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ESG 투자가 반드시 수익률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려운 점, 경영 관여에 소요되는 비용 대비 효과(중장기수익)가 불분명한 점, 헤지펀드의 높은 수수료를 감안하면 행동주의의 대상이 되는 기업은 시장가치가 현저히 저평가된 기업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는 점 등은 한계로 남습니다. 특히 한국은 기관투자자의 비중이 17~19% 수준에 그치고 다수의 기업에 지배주주가 존재하므로 영미나 유럽의 ESG 투자 경향이 그대로 이어지리라 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ESG 투자는 여전히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의 비재무지표를 점검하고 경영에 관여하면서 기후위기에 대한 시장의 인식이 상당히 바뀌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336개의 기관투자자들이 자발적으로 성명을 발표하여 유급휴가 확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보호, 고용 보호, 공급망과 소비자 관계 유지 등을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13) 기관투자자들의 ESG 투자와 행동주의는 기업들의 ESG 경영을 이끌고 견제하면서 자본시장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다만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정부와 공적 영역의 역할입니다. 책임투자의 흐름을 만든 주체는 UN입니다. ESG 투자가 ‘리스크-조정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정부가 석탄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ESG를 규제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고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할지 보다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ESG 시대 우리나라가 성숙하고 균형 잡힌 정책들을 설계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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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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