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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법원행정처

국민참여재판, 시행 14년 만에 '고사(枯死) 위기'

작년 실시율 12.4%…2007년 도입이후 최저기록

리걸에듀

지난해 국민참여재판 실시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영향도 있겠지만, 제도 시행 7년째인 지난 2014년부터 줄곧 실시건수 등이 내리막 길을 계속 걷고 있어 제도가 고사(枯死) 위기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법관들의 국민참여재판 기피 경향과 더불어 국민참여재판 자체가 피고인이 신청해야만 열리는 '피고인 신청주의'에 의존하고 있어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지적한다. 국민의 사법참여를 확대함으로써 재판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높이겠다는 당초 목적이 사장될 상황인 셈이다. 법조계에서는 사법부의 노력과 함께 제도 개선을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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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부터 실시율↓… 지난해 '역대 최저' =
법원행정처가 최근 발간한 '국민참여재판 성과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참여재판 접수건수는 865건, 실시건수는 96건으로 실시율(미제 건수 제외)이 12.4%에 그쳤다. 2008년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도입된 후 역대 최저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전주혜(55·사법연수원 21기)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법원행정처로부터 제출받은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광주지법과 전주지법에서는 국민참여재판이 1건도 실시되지 않았고, 전국 최대 규모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에서도 겨우 2건만 실시된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의 배제 결정률은

37.8%로 역대 최대치

 

국민참여재판 접수건수와 실시건수는 제도가 처음 시행된 2008년 이후 2013년까지는 매년 증가세를 보였다. 하지만 2014년부터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다 2017년을 기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해에는 접수건수가 2019년보다 235건 증가했지만 실시건수는 79건 감소하며 실시율이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2008년 국민참여재판 접수건수는 233건, 실시건수는 64건으로 29.8%의 실시율을 기록했다. 이후 2009년 30.8%(접수 336건, 실시 95건), 2010년 39.1%(접수 438건, 실시 162건)에 이어 2011년에는 실시율이 51.2%(접수 489건, 실시 253건)에 달했다. 2012년에도 40.5%(접수 756건, 실시 274건), 2013년에는 43.3%(접수 764건, 실시 345건)의 높은 실시율을 보이며 제도가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014년 국민참여재판 실시건수는 271건으로 2013년에 비해 74건이나 줄어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고, 이후 2015년 38.6%(접수 505건, 실시 203건), 2016년 38.9%(860건, 305건)으로 실시율이 잠시 오르기도 했지만, 2017년 37.2%(712건, 295건), 2018년 28.8%(665건, 180건), 2019년 28%(630건, 175건)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실시율이 12.4%로 곤두박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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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제율 역대 최고 =
국민참여재판이 신청되더라도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배제' 결정이 많은 것이 제도 활성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법원은 △배심원·예비배심원·배심원후보자 또는 그 친족의 생명·신체·재산에 대한 침해 또는 침해의 우려가 있어 출석의 어려움이 있거나 이 법에 따른 직무를 공정하게 수행하지 못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또는 △공범 관계에 있는 피고인들 중 일부가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아 국민참여재판 진행에 어려움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성폭력범죄 피해자 또는 법정대리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 경우 △그 밖에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국민참여재판을 하지 아니하기로 하는 결정(배제 결정)을 할 수 있다.

  

피고인 신청에만 의존

재판부도 실시에 소극적


배제율(배제건수를 처리건수로 나눈 비율)이 높으면 그만큼 재판부가 참여재판에 소극적이라는 점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배제율 역시 2017년을 기점으로 좋지 않은 상황이다.

배제율은 2008년 28.4%(배제건수 61건)로 출발했지만, 2009년 24.4%(75건), 2010년 18.1%(75건), 2011년 12.8%(63건), 2012년 18.3%(124건), 2013년 14.8%(118건)를 기록해 비교적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2014년에도 17.5%(107건), 2015년 20.2%(106건), 2016년 19.3%(151건)의 배제율을 보여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017년 24.6%(195건)로 상승한 데 이어 2018년 29.3%(183건), 2019년 29.9%(187건)로 치솟았고, 지난해에는 37.8%(293건)를 기록, 역대 최대치를 찍었다.


◇ "사법의 투명성·공정성 확보… 제도 활성화 대책 마련해야" =
전문가들은 국민참여재판이 지난해 역대 최악의 상황을 맞은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여파가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 이전인 2017년을 기점으로 이미 제도가 점차 사장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제도를 활성화할 만한 법원 내부 동력이 사라진 데다 '피고인 신청주의' 등에 의존한 한계도 있다는 것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지난해 국민참여재판이 저조했던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19일 것"이라며 "하지만 이전부터 법원 안팎에서 제도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꾸준히 나왔던 것이 제도 활성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판사들 사이에서도 이 제도가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공정성, 투명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높지만, 배심원 선정 등 여러 업무가 가중된다는 점에서 효율성이 높지 않다는 비판이 많았다"고 했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 진행 시 법원에서 준비할 몫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신청하는 입장에서) 법원이 국민참여재판 실시에 소극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데, 피고인 입장에서는 판사의 심기를 거스르면서까지 국민참여재판을 고집하기는 어렵다"며 "더불어 국민참여재판에서 열심히 배심원을 설득해 배심원의 평결을 받더라도 이 평결은 권고적 효력 밖에 없어 재판 결과를 기속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점도 고려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법의 투명·공정성 확보"

"활성화 대책 마련해야"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제도 시행 초기에는 국민참여재판 전담재판부를 두고, 국민참여재판 실시건수를 평정 등에 고려하기도 하는 등 적극적으로 독려했지만 이후에는 흐지부지 됐다"면서 "재판 관련 인력 증원도 없이 국민참여재판을 하는 것에 대한 업무 부담이 크다 보니, 판사들이 이를 부담스러워하면서 제도의 고사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 등 추가 카테고리를 만들어 법원이 감당할 수 있는 수의 사건을 '필수적 국민참여재판 대상'으로 삼고 나머지는 신청주의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국민참여재판의 기본적 사건 수를 유지한다면, 국민들이 이러한 제도가 있다는 걸 인지함으로써 제도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로스쿨 교수는 "우리나라도 필요적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해 원칙적으로는 참여재판으로 하되 예외적으로 배제 결정을 통해 참여재판이 아닌 통상재판으로 하도록 하는 제도를 고민해볼 수 있다"며 "전면적으로 모든 범죄에 대해 필수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실시할 수 없으니, 예컨대 살인죄나 공무원 범죄 등 특정 범죄에 대해 필수적 참여재판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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