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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단

범인은닉·도피죄와 방어권의 관계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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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의 제기

범인은닉·도피죄는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자를 은닉 또는 도피하게 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로서, 국가의 형사사법기능을 보호법익으로 한다. 한편, 방어권은 피의자·피고인이 수사 또는 재판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에 대하여 자기의 정당한 이익을 방어할 수 있는 권리로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 공정한 재판의 원칙을 실현하는 의미를 갖는다. 판례는 피의자·피고인의 방어권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의해 보장된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대법원 2015. 7. 23. 선고 2015다200111 전원합의체판결). 실제 수사 또는 공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형사처벌을 면할 목적으로 한 행위가 본죄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정당한 방어권 행사에 해당하는지가 다투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국가의 형사사법기능이라는 공익과 방어권이라는 사익이 충돌하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충돌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본죄와 방어권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범인은닉·도피죄에 관한 주요 쟁점과 방어권의 관계
(1) 범죄의 주체

형법 제151조 제1항은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자를 객체로 규정하는바, 이러한 구성요건의 해석상 범인은 본죄의 주체에서 제외된다. 이러한 입법 태도의 이론적인 근거를 기대가능성이나 nemo tenetur 원칙에서 찾는 견해가 있지만, 방어권의 보장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본죄의 주체에 범인이 포함된다면 범인이 국가기관의 수사, 재판에 대응하여 자기를 방어할 목적으로 하는 대부분의 행위가 본죄에 해당할 우려가 있고, 이는 방어권을 본질적으로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판례는 자기은닉·도피의 가벌성을 부정하는 근거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지만, 증거인멸죄에 있어서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자기증거인멸의 가벌성을 부정한다(대법원 1965. 12. 10. 선고 65도826 전원합의체판결). 범인은닉·도피죄와 증거인멸죄는 모두 국가의 형사사법기능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범죄라는 점에서 위 판례의 법리는 범인은닉·도피죄에도 적용될 수 있는 논리일 것이다.

다수설과 판례는 범인 본인이 아닌 공범은 본죄의 주체에 포함된다는 태도이다(대법원 1958. 1. 14. 선고 57도393 판결). 일반적인 의미에서 공범이 본죄의 주체에 포함된다는 점과는 별개로, 공범이 다른 공범을 은닉 또는 도피하게 한 행위가 자기 범행을 은닉하는 행위로서의 성격을 갖는 경우에도 본죄가 성립하는지가 문제된다. 이에 대해 판례는 자신의 범행에 대한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없다면 본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태도이다(대법원 2018. 8. 1. 선고 2015도20396 판결). 이러한 판례는 자기은닉·도피를 처벌하지 않는 이론적 근거를 방어권의 보장에서 찾는 태도와 궤를 같이한다. 공범이 다른 공범을 은닉 또는 도피하게 한 행위가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자기은닉·도피와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2) '도피하게 하는 행위'

본죄의 실행행위인 '도피하게 하는 행위'와 관련하여 판례는 범인을 도주하게 하는 행위 또는 도주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용이하게 하는 행위에 한정된다고 본다(대법원 1995. 3. 3. 선고 93도3080 판결). 또한 판례는 참고인의 허위 진술과 관련하여 적극적으로 실제의 범인을 도피시켜 국가의 형사사법의 작용을 곤란하게 할 의사와 단순한 묵비나 허위 진술 이상의 적극적인 행위로 수사기관을 기만·착오에 빠지게 함으로써 범인의 발견, 체포에 지장을 초래할 것을 요구하고(대법원 1987. 2. 10. 선고 85도897 판결), 피의자가 공범에 관하여 묵비하거나 허위로 진술한 경우에도 위의 법리가 그대로 적용된다고 본다(대법원 2008. 12. 24. 판결 2007도11137 선고). 특히 위 사건의 항소심 판결은 공범 관계를 숨기고 허위로 진술하는 행위를 본죄로 처벌하는 것은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및 헌법상 자기부죄금지의 원칙에 비추어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어권은 본질적으로 국가기관의 수사와 재판에 대응하여 행사하는 소극적인 권리라는 점에서 방어권의 범위에 속하는 행위는 판례가 '도피하게 하는 행위'의 의미와 관련하여 요구하는 위와 같은 요건들을 충족하기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방어권은 '도피하게 하는 행위'의 개념을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기준이 된다.

(3) 자기은닉·도피 교사의 가벌성

독일 형법 제258조 처벌방해죄의 경우 범인이 자신에 대한 처벌방해죄의 교사범으로 처벌되지 않는 점은 법문상 명백하다. 이와 달리 우리 형법은 자기은닉·도피 교사의 가벌성에 대해 명문으로 규정한 바가 없다. 그 가벌성을 부정하는 견해는 자기비호의 연장에 불과하다거나, nemo tenetur 원칙의 적용범위 내에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자기은닉·도피와 자기은닉·도피 교사를 동일하게 취급한다. 또한 본죄는 편면적 대향범에 해당하고, 편면적 대향범의 내부참가자 사이에 총칙상 공범 규정이 적용될 수 없다는 이유로 그 가벌성을 부정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본죄는 허위로 진범을 자처하는 경우와 같이 다른 사람의 협력 없이도 구성요건적 행위를 실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편면적 대향범으로 볼 수 없다. 최근 편면적 대향범에 대하여도 최소협력의 원칙에 따라 총칙상 공범 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견해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본죄를 편면적 대향범에 포함시켜 논의할 실익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자기은닉·도피 교사의 가벌성 문제는 필요적 공범 이론과 분리시켜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다.

독일 형법 제258조 제5항과 같은 규정이 없는 우리 형법에서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자기은닉·도피와 자기은닉·도피 교사를 동일하게 취급해야 할 명확한 근거가 없다. 그렇다면 원칙적으로는 공범종속성설에 따라 자기은닉·도피 교사의 가벌성을 인정하되, 기대가능성이 없거나 방어권 행사의 범위에 속하는 사정 등이 인정되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그 가벌성을 부정해야 한다. 물론 자기은닉·도피와 자기은닉·도피 교사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견해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 방어권의 보장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타당한 일면이 있다. 형사소송의 이념과 가치관이 변화함에 따라 방어권의 보장 범위가 확대된다면 그에 따라 자기은닉·도피 교사의 가벌성 인정 범위가 축소될 것이다.

판례는 자기은닉·도피를 교사한 행위를 방어권의 남용으로 볼 수 있을 때에는 범인은닉·도피 교사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3도12079 판결). 이는 원칙적으로 자기은닉·도피 교사의 가벌성을 부정하고, 방어권의 남용에 해당하는 예외적인 경우에 그 가벌성을 인정한다는 취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앞으로는 판례가 원칙적으로 자기은닉·도피 교사의 가벌성을 인정하면서도 방어권 행사의 범위에 속하는 예외적인 경우에 그 가벌성을 부정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변경될 필요가 있다.


3. 방어권을 범인은닉·도피죄의 위법성 단계에서 고려하는 방안 검토

판례는 본죄의 성부와 관련하여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판단기준으로 제시하면서도 방어권이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책임 중 어느 영역에 관련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방어권은 본죄의 주체와 실행행위를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기준이 되고, 범인은닉·도피 교사의 가벌성 인정 범위를 제한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방어권이 본죄의 성립 범위를 제한하는 소극적인 기능을 하는 것으로 이해할 경우 방어권을 위법성 영역에 포함시키는 논의가 가능해진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의해 보장되는 방어권의 범위에 속하는 행위는 전체 법질서 차원에서 허용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방어권을 본죄의 위법성 단계에서 고려하는 방안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 판례는 개인의 헌법상 기본권과 공익이 충돌하는 경우에 헌법상 기본권을 형법 제20조(정당행위)를 통해 이익형량의 형태로 위법성 단계에서 고려하는바(대법원 2017. 10. 26. 선고 2012도13352 판결 등), 이 글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방어권을 위법성 단계에서 고려하는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실제 판례는 본죄에 있어 방어권의 남용이라고 볼 수 있는지 여부는 '범인을 도피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목된 행위의 태양과 내용, 범인과 행위자의 관계, 행위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 형사사법의 작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성의 정도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여(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3도12079 판결), 구체적인 사안에서 이익형량을 통해 방어권을 고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의 이념과 가치관이 변화함에 따라 방어권 보장 범위도 달라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방어권을 형법 제20조를 통해 이익형량의 형태로 위법성 단계에서 고려하는 방안은 형사법 체계의 이념을 적절히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타당성이 인정될 수 있다. 최근에는 헌법상 기본권을 위법성 단계에서 간접적으로 고려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헌법상 기본권으로부터 직접 위법성조각사유를 도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는바, 앞으로 방어권을 본죄의 위법성 영역에 포함시키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발전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효진 교수(아주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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