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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2020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18. 국제거래법

국제재판관할권 판단기준은 한국과의 실질적 관련성 여부
중국소재 자회사 채무불이행에 대한 국제재판관할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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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제재판관할권의 판단기준(대법원 2021. 2. 4. 선고 2017므12552 판결)

가. 사실관계

원고와 피고는 모두 캐나다 국적으로 2013년 7월 혼인신고를 하고 캐나다 퀘벡주에서 거주하였다. 피고는 대한민국에서 일시적으로 체류하다가 캐나다로 돌아가는 생활을 수회 반복하던 중 2015년 8월 다시 대한민국에 입국한 이후 이 사건 원심재판이 진행되는 중에도 대한민국에 거주하였다. 원고는 2014년 12월부터 2015년 1월까지 대한민국에 체류하였으나 그 전후에는 캐나다에 거주하였다. 피고는 원고와 결혼한 이후 대한민국 부산 소재 아파트를 매수하였으며 대한민국에 아들과 자매가 거주하고 있다.

원고는 2015년 3월 피고를 상대로 서울가정법원에 이혼과 재산분할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피고의 신청으로 이 사건은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으로 이송되었고, 대한민국 법원의 국제재판관할권 유무에 관한 의견을 제시해달라는 법원의 요청에 대하여 피고는 아무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원심은 국제재판관할권이 인정된다는 전제에서 이혼 및 재산분할 등에 대하여 심리하였고, 재산분할청구에 대하여는 국제사법에 따라 원·피고의 본국법인 캐나다 퀘벡주 민법을 적용하여 분할대상과 가액을 정한 다음 재산분할의 비율과 방법을 정하였다.

나. 판결요지

국제사법 제2조 제1항은 "법원은 당사자 또는 분쟁이 된 사안이 대한민국과 실질적 관련이 있는 경우에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 이 경우 법원은 실질적 관련의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 국제재판관할 배분의 이념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실질적 관련'은 대한민국 법원이 재판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을 정당화할 정도로 당사자 또는 분쟁이 된 사안과 관련성이 있는 것을 뜻한다. 같은 조 제2항에 따르면 국제재판관할권을 판단할 때 국내법의 관할 규정을 가장 기본적인 판단 기준으로 삼되, 해당 사건의 법적 성격이나 그 밖의 개별적·구체적 사정을 고려하여 국제재판관할 배분의 이념에 부합하도록 합리적으로 수정할 수 있다.

  

가사사건은 일반 민사사건과 달리 신분관계에 관한 사건이거나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재산, 권리, 그 밖의 법률관계에 관한 사건으로서 사회생활의 기본 토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가사사건에서의 '실질적 관련'의 유무는 국내법의 관할규정 뿐만 아니라 분쟁의 원인이 되는 사실관계가 이루어진 장소, 해당 사건에 적용되는 준거법, 사건 관련 자료 수집의 용이성, 소송수행의 편의와 권익보호의 필요성, 판결의 실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재판상 이혼과 같은 혼인관계를 다투는 사건에서 대한민국에 당사자들의 국적이나 주소가 없어 대한민국 법원에 국내법의 관할 규정에 따른 관할이 인정되기 어려운 경우라도 이혼청구의 주요 원인이 된 사실관계가 대한민국에서 형성되었고 (부부의 한쪽이 대한민국에 상당 기간 체류함으로써 별거상태가 형성되는 경우 등), 이혼과 함께 청구된 재산분할사건에서 대한민국에 있는 재산이 재산분할대상인지 여부가 첨예하게 다투어지고 있다면 대한민국과 해당 사안 간의 실질적 관련성을 인정할 여지가 크다.

다. 해설

본건은 원고와 피고가 모두 캐나다 국적이고 혼인 이후에도 캐나다 퀘벡주에 주소를 두고 있는 사안에서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이혼 및 재산분할 사건이 대한민국과 실질적 관련성을 가진다고 보았다. 그 근거가 된 사정은 첫째, 피고가 이 사건 소 제기 당시에 대한민국에 생활의 근거를 두고 실제 거주하는 등 대한민국에 실질적인 생활기반을 형성한 점, 둘째, 이 사건에서 주로 다투어졌던 부분은 이혼 사유와 관련하여 피고가 악의적 유기 등으로 원고에게 정신적 고통을 입히고 원고 재산을 편취하였는지 여부였고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피고의 재산이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였다는 점, 셋째, 원고가 대한민국 법원에 재판을 받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여 청구하였고, 피고도 이에 응소하고 상당기간 본안에 관한 실질적인 변론과 심리가 이루어진 점, 넷째, 요증사실을 반드시 캐나다 현지에서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사안이어서 대한민국 법원의 국제재판관할을 부인하는 경우 소송경제에 심각하게 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이었다. 국제재판관할권은 병존할 수도 있고, 비록 준거법이 캐나다법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이 사건 소와 대한민국 법원의 실질적 관련성이 부정되지 않는다는 판시는 기존 판례 입장에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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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청구 주요 사실관계와 재산분할 대상이 

한국에 있다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이혼소송 관할은 

우리나라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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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외국 소재 자회사의 채무불이행에 대한 국제재판관할(대법원 2021. 3. 25. 선고 2018다230588 판결)

가. 사실관계
원고들은 중국에 본점을 두고 있는 중국 회사이고, 피고는 부산에 본점을 두고 있는 대한민국 회사이다. 피고는 자본금을 출자하여 2000년 9월 중국법에 따라 A전자를 중국에 설립하였고, 현재 A전자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원고들은 A전자에 대한 물품대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100% 주주인 피고도 중국 회사법에 따라 연대책임을 부담한다고 주장하며 피고를 상대로 대한민국 법원에 금전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원심은 물품공급계약의 당사자들인 원고들과 A전자가 모두 중국 회사이고, 계약 체결, 물품 공급과 대금 지급이 중국에서 이루어졌으며, 관련 서류가 모두 중국어로 작성되어 심리에 필요한 중요 증거방법이 대부분 중국에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민사소송법상 특별재판적도 인정하기 어려워 대한민국과 실질적 관련성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이러한 사안의 분쟁에 관해 A전자의 주주인 피고가 대한민국 회사라는 우연한 사정만으로 대한민국 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을 인정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재판관할에 관한 예측가능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보아 이 사건 소를 각하하였으나 대법원은 국제재판관할권을 인정하고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나. 판결요지

민사소송법 제2조나 제5조 제1항이 피고의 주된 사무소나 영업소가 있는 법원에 소를 제기하도록 하는 것은 관할 배분에서 당사자의 공평에 부합하기 때문이므로 국제재판관할에서도 피고의 주된 사무소가 있는 곳은 영업관계의 중심적 장소로서 중요한 고려요소가 된다.

피고의 재산이 대한민국에 있으므로 원고들이 승소할 경우 당사자의 권리구제나 재판의 실효성 측면에서 대한민국 법원의 국제재판관할을 인정하는 것이 재판의 적정과 신속 이념에 부합한다.

다. 해설

대법원은 비록 이 사건 소의 배경이 된 계약 및 채무불이행 사실이 중국에서 중국어로 중국회사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원고들이 대한민국 회사인 피고를 상대로 중국 회사법상 모회사의 연대책임을 청구원인으로 대한민국 법원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면 대한민국 법원의 국제재판관할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법인인 피고가 대한민국에 주된 사무소나 영업소를 두고 영업활동을 할 때에는 대한민국 법원에 피고를 상대로 재산에 관한 소가 제기되리라는 점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았고, 재산이 있는 곳의 특별재판적을 인정한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보았다.

     

중국 회사법에 따르면 법인격부인이나 미납 출자금 존재, 출자금 불법회수를 근거로 모회사에 연대책임을 구할 수 있는 바, 비록 준거법이 중국법이고 요증사실에 대한 증명이 어려울 수 있더라도 이 사건 소와 대한민국 법원 사이의 실질적 관련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고, 증명이 부족할 경우에는 대한민국 법원에 소를 제기한 원고들의 불이익으로 돌아갈 것이므로 우리 법원의 입장에서는 이를 심리하여야 한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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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문서로 체결된 관할합의가 

민소법상 서면요건 구비한 경우 유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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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자문서로 이루어진 관할합의(서울고법 2020. 6. 9. 선고 2019나2044652 판결)
가. 사실관계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자인 원고는 피고와 사이에 피고가 제공하는 '콘텐츠 스토어'에 원고가 개발한 앱을 등록하여 배포하는 내용의 개발자 배포계약을 전자적 방식으로 체결하면서 그와 관련하여 발생한 모든 법적 문제에 관하여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법원을 전속관할로 하기로 하는 관할합의를 전자문서 계약 조항에 포함하였다. 원고가 등록한 앱이 음란물 정책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배포 정지 및 삭제 조치가 이루어지자, 원고는 대한민국 법원에 피고를 상대로 위 조치의 해제를 청구하면서 (1) 위 전속적 국재재판관할 합의는 민사소송법 제29조 제2항에서 정한 '서면에 의한 관할합의'가 아니고, (2) 대한민국 공정거래법 위반을 청구원인으로 주장하는 이 사건 소송에도 외국법원을 전속관할로 하는 관할합의가 적용된다고 보는 것은 공정거래법의 취지에 비추어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에 반하여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나. 판결요지

전자적 방식으로 체결된 국제거래 계약에 포함된 전속적 국제재판관할합의가 유효한지 여부는 국제사법 제2조 제2항에 따라 민사소송법 제29조 제2항 등 '국내법의 관할규정'을 참작하되 국제재판관할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판단하여야 한다.

국제재판관할합의의 방식은 법정지법에 따라 판단할 사항으로서 본건 법정지는 대한민국인데, 대한민국의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은 제4조에서 "전자문서는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자적 형태로 되어 있다는 이유로 문서로서의 효력이 부인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으며, 민사소송 등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은 제13조 제1항에서 전자문서에 대한 증거조사에 관하여 정하고 있다. 이러한 법률 규정들에 따라 전자문서는 민사소송법 제29조 제2항에 정한 관할합의에 필요한 서면요건을 구비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이 사건 앱에 대한 배포, 이용 정지 및 삭제조치가 공정거래법에서 금지되는 불공정거래 행위라는 원고 주장의 사실관계와 법률사항에 대한 판단문제는 이 사건 관할합의에서 적용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 사건 개발자 배포계약에 따라 발생한 법적문제'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므로 이 분쟁에 대하여 관할합의가 적용되지 않을 이유가 없고, 단지 원고가 공정거래법 위반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외국법원에 전속적 관할을 인정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

다. 해설

제1심 및 제2심 판결은 전자문서는 민사소송법 제29조 제2항에 정한 관할합의에 필요한 서면요건을 구비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보았고, 이 사건 소송에 제출된 관할합의도 전자문서로 제출되었는데, 전자문서에 대한 증거조사방법에 의해 관할합의의 존재를 명확히 인정할 수 있었다고 보고 원고의 청구를 각하하였는데, 대법원도 2020년 10월 15일 원고의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하여 확정되었다(2020다238424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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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회사가 

중국에 있는 회사의 지분 100% 보유한 

한국회사 상대로 미지급 물품대금 지급 청구한 경우 

한국 법원에 국제재판 관할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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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중재인 선임결정 및 중재판정부 판정권한에 대한 심사 결정(서울중앙지법 2018비합30171, 2020카기418 결정)
가. 사실관계

피신청인 A회사는 발전기를 화력발전소 건설공사 주계약자인 신청외 B회사에 공급하였고, B회사는 A회사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을 피보험자로 하는 조립보험계약(Erection all risks insurance, 이하 'EAR')을 국내 보험회사인 신청인 C회사와 사이에 체결하였다. EAR 약관에는 보험회사와 피보험자 간의 분쟁해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조항을 두었다.

"보험회사 및 피보험자 간에 손해 또는 보상 금액 결정이 상이한 경우, 해당 사안은 손해보험중재위원회(Non-Life Insurance Arbitration Committee)에 회부됩니다."

A회사는 B회사에게 발전기의 인도를 완료하였으나 발전기 내부 부품이 파손되는 사고가 발생하여 A회사는 복구 비용을 지출하였다. A회사가 보험금을 청구하였으나 C회사는 위 사고가 EAR의 보장 범위에 포함되지 아니한다는 등의 이유로 지급을 거절하자, A회사는 위 분쟁해결조항을 근거로 중재요청서를 제출하면서 중재신청인측 중재인의 선임을 통지하고 피신청인측 중재인 선정을 요청하였으나 C회사는 위 분쟁해결조항이 유효한 중재조항이 아니라는 등의 이유로 중재인 선임을 거부하였다.

이에 A회사는 대한민국 법원에 피신청인측 중재인선임 신청을 하였고, 이에 대해 C 회사는 본건 분쟁해결조항이 실존하지 않는 기관에 중재를 회부하도록 되어 있어서 유효한 중재조항이 아니고, 설령 유효하다고 하더라도 중재법 제2조 제1항에 따르면 중재지가 우리나라인 경우에 한하여 우리나라 중재법이 적용될 수 있는데, 이 사건 분쟁해결조항이 중재지를 지정하지 않고 있는 이상 중재법이 적용될 수 없어 법원이 중재인 선임권한을 가지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나. 중재인 선임결정의 요지(서울중앙지법 2018비합30171 결정)

분쟁해결조항에 중재지를 우리나라로 하는 내용이 없으므로 이 사건 중재인 선임신청은 우리나라 중재법이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적용대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국제재판관할권에 관한 국제사법 제2조에 따라 우리나라가 이 사건의 당사자 및 분쟁이 된 사안과 실질적 관련성이 인정되므로, 우리나라 법원은 중재인 선임을 구하는 이 사건에 대하여 재판관할권을 가진다.

중재합의의 유효성이 다투어지는 경우에 이에 대한 1차적 판단 권한은 해당 중재절차를 진행하는 중재판정부에 있다는 것이 중재법 제17조 제1항의 취지이다. 이 사건과 같이 본격적인 중재절차의 진행에 앞서 법원에 중재인 선임을 구하는 경우에는 최종적인 중재합의의 유효성은 별론으로 하고 일응 중재조항으로 볼 여지가 있는 이른바 중재유사조항이 존재하는 이상, 법원이 선제적으로 중재합의가 무효라고 보아 중재인 선임 신청을 배척할 수는 없다.

다. 중재인 선임 후 중재절차의 경과

법원은 피신청인측 중재인을 선임하는 결정을 하였고, 기선임된 중재인들은 의장중재인을 합의로 선임하여 3인의 판정부를 구성하고 중재절차를 진행하였는데, 중재 피신청인 C회사는 본건 분쟁해결조항이 유효한 중재합의가 아니므로 판정부는 관할권을 갖지 못한다는 이의를 제기하고 본안 심리에 앞서 선결문제로 관할 여부에 대한 중간판정을 신청하였다. 중재판정부는 심리를 거쳐 위 분쟁해결조항이 유효한 중재합의라는 취지의 중간판정을 내렸는데, C회사는 위 분쟁해결조항에 중재의사가 명백하게 나타나 있지 않은 점 등을 주장하며 중재법 제17조에 따라 판정부의 판정권한에 대한 법원의 심사를 구하는 신청을 제기하였다.

라. 법원 결정의 요지(서울중앙지법 2020카기418 결정)

이 사건 분쟁해결조항은 '중재에 회부하여야 한다'는 등 '중재'를 분쟁해결의 방법으로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문구는 포함하고 있지 않지만, 분쟁이 발생한 경우 "shall be referred to the decision of the Non-Life Insurance Arbitration Committee"라 정하고 있는데, 위 'Arbitration'은 '중재'를 의미하는 영미법상의 법률용어임이 명백하고, 'shall be referred to'는 '회부되어야 한다', 즉 '중재에 회부되어야 한다'고 번역될 수 있다.

당사자가 합의하여 작성한 조항을 무시하는 것보다 가능한 효력을 유지하도록 조화롭게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 점, 중재합의의 주된 목적은 중재를 시행할 기관에 있다기보다는 중재로써 분쟁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인지 여부에 있다는 점, 이 사건 중재합의조항에 규정된 중재기관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판정부를 구성하여 중재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법률상 가능하고, 실제로 이미 이 사건 중재판정부가 구성되어 중재절차가 진행 중인 점 등에 비추어 보면, 'Non-Life Insurance Arbitration Committee'라는 중재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정만으로는 중재합의로서의 효력을 부정하기 어렵다.

마. 해설

본 사안은 중재지에 관한 합의가 없는 경우에 한국 법원이 중재인선임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여부에 관해 국제사법 제2조의 국제적 재판관할권에 따른 기준을 적용했다는 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중재합의의 유효성이 다투어지는 경우에도 한국법원이 이에 대한 판단을 자제하고 1차적 판단권한은 해당 중재절차를 진행하는 중재판정부에 있다고 판시한 것은 당사자 자치의 원칙과 Competenz-Competenz 원칙에 충실한 판시였다고 보인다. 또 본 사안은 그동안 보험업계에서 문제되었던 EAR 약관상 분쟁해결조항에 대하여 법원이 그 효력을 인정하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서 실무상 큰 의미를 가진다. 특히, 법원은 존재하지 않는 기관을 중재기관으로 정해 놓았다 하더라도 당사자 사이에 중재로써 분쟁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사가 확인될 수 있다면 그 중재합의의 유효성이 인정되며, 실제 중재절차의 진행에 필요한 사항은 중재법에 의하여 보충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중재법 제17조 제8항에 따라 법원의 위 결정에 대하여는 항고가 허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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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지에 관한 합의가 없는 경우 

법원의 중재인선임권한 행사여부는

국제사법에 규정된 국제적 재판관할권에 따른 

기준 적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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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홍콩법원의 대한민국 중재판정 집행결정(HCCT 7/2021 [2021] HKCFI 865)
가. 사실관계

사모펀드인 원고는 홍콩회사인 피고와 사이에 2017년 1월 전환사채발행계약을 체결하고 전환사채를 인수하였는데, 계약에 의하면 피고가 그 해 연말까지 상장하지 않으면 원고는 전환사채의 조기상환을 청구할 수 있었다. 연말까지 피고가 상장하지 아니하자 원고는 조기상환청구권을 행사하고, 2019년 2월 대한상사중재원에 중재를 제기하였다.

중재신청서를 수령하고도 피고가 중재인 선임에 동의하지 않자, 대한상사중재원이 직접 판정부를 구성하였다. 원고가 주장서면을 제출하였으나 피고는 지정된 기한이 지나도록 주장서면을 제출하지 않았다. 2020년 3월 판정부는 화상방식으로 구술심리를 진행한 다음 2020년 9월 원고 청구를 전부 인용하는 중재판정을 내렸다. 피고가 판정을 이행하지 않자, 원고는 2021년 1월 15일 홍콩법원(High Court of 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Court of First Instance)에 중재판정 집행신청을 제기하였다. 홍콩법원은 신청서에 첨부된 서증과 증인진술서를 토대로 심리한 다음 1월 19일 집행명령을 내렸다. 홍콩법상 중재판정 집행명령은 송달로부터 14일이 경과한 후부터 집행이 가능하며, 만일 14일 기간 중에 이의가 제기된 경우에는 이의에 대한 법원 결정이 내려진 후부터 집행이 가능하다.


중재절차에 응소하지 않았던 피고는 홍콩법원의 집행명령을 송달받고 2월 17일 이의를 제기하였다. 이의 사유는 중재인 선임통지 및 중재절차의 통지를 받은 적이 없었으므로 사안에 대해 변론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중재판정의 집행이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배된다는 주장이었다. 이의신청에 따른 심문기일은 3월 31일에 진행되었고 구두변론을 거쳐 같은 날 집행결정이 내려졌다.

나. 결정요지

중재판정의 집행은 패소당사자가 홍콩 중재법 86조에 규정한 근거를 입증한 경우에만 거부될 수 있고, 집행절차규칙(Order 73) Rule 10(6A)에 따라 이의신청인은 신청서에 첨부해야 할 증인진술서에 이의사유를 분명히 기재해야 한다. 중재판정의 지위에 불확실성이 없도록 이의근거에 관해 분명한 통지를 받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집행거부의 증거는 이의신청 시점에 제출되었어야 하므로 피고의 추가적 입증을 허용하기 위해 기일을 속행할 이유가 없다.

다. 해설

본건 대한상사중재원 중재판정은 중재지가 홍콩이어서 홍콩 중재법이 집행결정 절차에 적용되었다. 홍콩 중재법은 UNCITRAL의 2006년 모델 중재법에 따라 개정된 것이므로, 같은 모델법에 따라 2016년 개정된 우리 중재법의 판정 집행절차에 관해서도 참고할 가치가 있다. 개정 전 중재법은 중재판정은 변론절차를 거쳐 집행판결에 의하여 집행되도록 규정하고 있었으나, 2016년 중재법 개정에서 중재판정에 기초한 집행은 판결이 아닌 결정으로 하게 되었다. 개정의 취지는 보다 엄격한 절차가 요구되는 변론 대신에 심문을 거쳐 집행결정에 의하도록 함으로써 우리나라 중재판정 집행을 국제 기준에 맞게 간소화하여 중재 친화적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본건에서 홍콩법원의 판정 집행명령은 신청인이 제출한 신청서와 소명, 집행명령서 초안을 토대로 4일 만에 내려졌다. 피고가 집행명령에 대한 이의신청을 했지만 1회의 구술심리를 거쳐 약 45일의 짧은 시일 내에 집행결정이 내려졌다. 이 결정은 한국의 중재절차에 대한 국제적 존중을 보여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영국, 싱가포르등 영미법 국가들에서 통상적으로 진행되는 중재판정 집행절차의 실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가 중재판정 집행결정 절차를 운용함에 있어서 이러한 다른 뉴욕협약 체결국들의 집행절차를 참고하여 집행거부의 증거를 조기에 제출하도록 중재판정 집행결정절차에 관한 보다 상세한 규칙을 만드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윤병철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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