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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면제’ 법리에 뒤집힌 위안부 피해자 소송

서울중앙지법, 日상대 손배청구 소송 각하 파장

리걸에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1심에서 서로 엇갈린 판결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일본 국가의 배상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이 나왔지만, 석달여 만인 지난 21일 같은 법원 다른 재판부는 일본에 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위안부 피해자들이 낸 소송을 각하했다. 이번에 패소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은 법원을 비판하며 이 사건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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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패소판결을 받은 직후 ICJ에 제소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 '국가면제' 적용 여부따라 결론 엇갈려 =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민성철 부장판사)는 지난 21일 이용수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6가합580239)에서 "이 사건 소를 각하한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각하는 소송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본안심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재판부는 '주권국가는 다른 나라의 재판관할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국제법상의 원칙인 '국가면제' 법리가 이 사건에도 적용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대한민국은 외국을 상대로 한 민사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에 관해 법률을 제정한 적이 없고,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에 상호간의 민사재판권 인정 여부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적도 없다"며 "일본에 대한 '국가면제' 인정 여부는 오로지 '국제관습법'에 따라 판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설령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권리구제의 필요성 등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해야 할 현실적인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존 국제관습법에서 인정되지 않은 새로운 예외의 창설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국가면제를 확대하는 것은 전적으로 대한민국의 국익에 미칠 유·불리를 냉정하게 고려해 세밀하게 정해야 할 사항으로서 기본적으로 행정부와 입법부의 정책 결정이 선행돼야 할 사항이자, 이러한 의사결정이 없는 상황에서 법원이 추상적인 기준만을 제시해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국제법상 주권국가는 

다른 나라 재판관할권에서 면제

 

재판부는 ICJ의 '페리니 판결'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ICJ는 2012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의해 체포돼 9개월여간 강제노역을 한 이탈리아 국적의 루이지 페리니가 자국 법원에서 독일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한 것에 대해 독일이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법을 위반했다"며 제소한 사건에서 국가면제를 인정했다. 당시 ICJ의 다수의견은 "무력분쟁 과정에 법정지국의 영토 내에서 외국의 군대 또는 그와 협력하는 외국의 국가기관에 의해 이루어진 행위나 강행법규 위반으로 인한 심각한 인권 침해 행위에 관해 '국가면제'를 부정하는 것이 각국의 입법 판결 등에 의해 일반적인 관행에 이를 정도로 뒷받침된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대다수 국가의 법원은 이러한 사안에 대해서도 국가면제를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같은 사례를 언급하면서 "국가면제에 관한 현재의 국제관습법과 달리 일본에 대해 국가면제를 부정하게 되면 판결의 선고 및 그 이후의 강제집행 과정에서 일본과의 외교관계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법원 민사34부(당시 재판장 김정곤 부장판사)는 지난 1월 8일 이옥선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6가합505092)에서 "일본은 원고들에게 1억원씩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소송에 대응하지 않던 일본이 항소하지 않아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국가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국가면제 적용은 유감”

 

당시 재판부는 "우리 국민인 원고들에게 계획적·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일본제국의 반인도적 범죄행위는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할지라도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대한민국 법원에 일본에 대한 재판권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면제 이론은 주권국가를 존중하고 함부로 타국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도록 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지, 국제 강행규범이라는 절대규범을 위반해 타국의 개인에게 큰 손해를 입힌 국가가 국가면제 이론 뒤에 숨어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형성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판결이 엇갈린 데 대해 법조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는 "국가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인권적 준칙이 성립돼야 한다는 측면에서 국가면제 이론을 적용한 이번 판결은 많이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 변호사는 "이 문제는 외교적 해법으로 풀어야 할 문제이지 사법적 판단에 의존할 일은 아니다"며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깝지만, 법리는 원칙대로 적용돼야 법적 안정성은 물론 우리 사법시스템에 대한 대외신뢰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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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브루노 시마 미시간대 로스쿨 교수(前 ICJ 재판관), 김현정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 행동 대표, 신희석 연세대 법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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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가 22일(현지 시간) 하버드대 로스쿨 인권옹호 학생회(HLS Advocates for Human Rights)에서 공동주최한 온라인 웨비나에 영상메시지를 보내 '위안부 문제의 ICJ 회부'를 촉구하고 있다.

 

 ◇ ICJ 제소 가능성과 전망은 = 지난 21일 원고패소 판결이 선고되자 이용수 할머니는 "결과가 좋게 나오든 나쁘게 나오든지 간에 국제사법재판소로 꼭 간다"면서 "이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위안부 문제 ICJ 회부 추진위원회도 "여성인권 감수성과 개인의 재판권을 외면한 재판부가 일본의 범죄 행위에 사실상 면죄부를 부여했다"면서 "ICJ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받을 것을 거듭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이 단체 대변인인 김현정씨는 "21일 판결에 대한 항소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면서 "일본이 저지른 인권침해 사실을 가장 권위있는 ICJ에서 인정받는 것이 할머니들에게는 진정한 명예회복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타깝지만 법리는 원칙대로 적용돼야 

대외신뢰 보장”


하지만 이 사건이 실제로 ICJ에 회부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과 일본 양국이 사전에 ICJ의 강제관할권을 수락했다면 어느 한 국가의 제소만으로도 재판이 열릴 수 있지만, 한국과 일본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치적·외교적 해법 모색이 어렵다면 ICJ에서라도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 22일 하버드대 로스쿨 인권옹호 학생회가 주최한 온라인 웨비나에서 ICJ 재판관 출신의 브루노 시마 미시간대 로스쿨 교수는 위안부 문제의 ICJ 회부 가능성을 전망했다. 그는 "이 사건을 ICJ에 회부하기 위해서는 당사국인 한국과 일본이 사법관할권에 대한 특별합의를 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라며 "ICJ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 위안부 합의로 이 문제가 이미 해결된 것이라는 일본 측 주장이 맞는지부터 중점적으로 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피해자들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의사 밝혀 

귀추 주목

 

◇ 승소로 확정된 1차 위안부 소송… 강제집행 가능할까 = 한편 지난 1월 확정된 승소 판결에 따라 피해자들이 일본으로부터 어떻게 배상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도 주목된다.

 

이계정(49·사법연수원 31기)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지난 1월 판결은 일본에서 승인돼야 일본에서 집행이 가능하다"며 "집행이 가능한 경우에도 국가에 대한 강제집행은 제약사항이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안에 있는 일본 재산에 대해서는 우리 관할에 있기 때문에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면서 "다만, 과연 압류할 수 있는 일본 국고금이 우리나라에 있는지가 문제인데, 이런 점 등을 감안하면 실제로 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사실상 낮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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