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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2020년 분야별 중요판례분석] 4. 민법 下(채권)

채권자는 채무자의 공유물분할청구권 대위 못한다
해군본부, 제주기지 반대 글 삭제… 국가배상 대상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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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유물분할청구권의 대위행사(대법원 2020. 5. 21. 선고 2018다879 전원합의체 판결)

(1) 사실관계

A의 채권자인 원고는 무자력인 A를 대위하여 A와 피고가 공유하는 아파트에 관한 공유물분할청구권을 행사하였다. 원고로서는 A의 공유지분을 경매하는 경우에는 압류채권자의 채권에 우선하는 근저당권 등 부담을 제외하면 남는 금액이 없어 채권을 만족받을 수 없으나 아파트 전체를 대금분할하는 경우에는 채권을 일정 정도 만족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2) 판결 요지
채권자가 자신의 금전채권을 보전하기 위하여 채무자를 대위하여 부동산에 관한 공유물분할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은 책임재산의 보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채권의 현실적 이행을 유효·적절하게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보기 어렵고 채무자의 자유로운 재산관리행위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되므로 보전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 또한 특정 분할 방법을 전제하고 있지 않은 공유물분할청구권의 성격 등에 비추어 볼 때 그 대위행사를 허용하면 여러 법적 문제들이 발생한다. 따라서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금전채권자는 부동산에 관한 공유물분할청구권을 대위행사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이에 대해 위와 같은 공유물분할의 방법에 따르면 채무자인 공유자에게 배분될 몫이 남을 수 있는 경우에는 채권자가 채무자의 재산권에 속하는 공유물분할청구권을 대위행사하여 채권의 현실적 이행을 유효·적절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반대의견 있음).


(3) 분석
대상판결은 종래 판례를 변경하고 공유물분할청구권 대위행사의 보전의 필요성을 부정하였다. 하지만 원고는 무자력인 A의 아파트 공유물분할을 통해서만 자신의 채권을 만족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공유물분할청구권의 대위행사는 채권의 이행 확보에 필요한 수단이었다. 또한 채권자대위권은 본래 채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피대위권리를 행사하는 권리로서 그 범위에 있어서는 채무자에 대한 간섭을 이미 예정하고 있으므로 위와 같은 공유물분할청구권의 대위행사 사실만으로 A의 자유로운 재산관리행위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라고 보기 어렵다. 결국 대상판결에서 주목해야 할 이유는 다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공유자 중 어느 누구도 공유물의 분할을 희망하지 않는데도 단순히 금전채권자의 채권 보전을 위하여 채무자의 재산뿐만 아니라 다른 공유자의 공유지분 전부가 경매되는 것은 채무자를 포함한 공유자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특정 분할방법을 전제하고 있지 않는 공유물분할청구권의 성격 등에 비추어 볼 때 그 대위행사를 허용하면 여러 법적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채무자가 아닌 제3자의 이해관계 또는 법원의 분할방식 결정에 대한 재량 보호는 일반적인 보전의 필요성 논의에는 등장하지 않는 특수한 요소들이다. 그 특수성은 공유물분할청구권의 특수성에서 비롯되었다. 결국 대상판결은 이러한 특수성에 착안하여 보전의 필요성을 부정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공유물분할청구권의 대위행사에 관한 보전의 필요성이 늘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도 보전의 필요성을 부정한 결론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공유물분할청구권은 피대위권리 적격을 가진다. 또한 원고는 그 공유물분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고서는 채권을 일부라도 만족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도 대위행사가 불허된다면 사실상 공유물분할청구권의 피대위적격을 늘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공유물분할가능성은 공유관계에 내재하는 것이고 그 분할청구권의 대위행사는 규범적으로 공유자가 직접 분할청구권을 행사하는 것과 동등하게 평가될 수 있다. 즉 이는 공유자가 법적으로 감수해야 할 위험이다. 또한 법원이 대금분할을 명할 것을 기대하고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한다고 법원의 분할방법 결정에 관한 재량이 제약되지도 않는다. 만약 대금분할이 불가능하다면 보전의 필요성을 부정하면 충분하다. 프랑스에서도 공유물분할방법 채택에 관한 법원의 자유재량이 인정되나 이와 무관하게 공유물분할청구권의 대위행사가 허용된다. 이는 일본의 재판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2. 집합건물 공용부분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대법원 2020. 5. 21. 선고 2017다220744 전원합의체 판결)
(1) 사실관계

집합건물인 상가건물의 구분소유자 중 1인인 피고는 자신의 전유부분을 넘어서 공용부분인 1층 복도와 로비에도 영업시설을 설치하여 이를 마치 전유부분처럼 독점적으로 사용·수익하였다. 집합건물 관리단인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공용부분 인도 및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하였다.

 
(2) 판결 요지
구분소유자 중 일부가 정당한 권원 없이 집합건물의 복도·계단 등과 같은 공용부분을 배타적으로 점유·사용함으로써 이익을 얻고 그로 인하여 다른 구분소유자들이 해당 공용부분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면 공용부분을 무단점유한 구분소유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공용부분을 점유·사용함으로써 얻은 이익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 해당 공용부분이 구조상 이를 별개 용도로 사용하거나 다른 목적으로 임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더라도 무단점유로 인하여 다른 구분소유자들이 해당 공용부분을 사용·수익할 권리가 침해되었고 이는 그 자체로 민법 제741조에서 정한 손해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법리는 구분소유자가 아닌 제3자가 집합건물의 공용부분을 정당한 권원 없이 배타적으로 점유·사용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이에 대해 필수적 공용부분은 별개 용도로 사용하거나 다른 목적으로 임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므로 구분소유자 중 일부나 제3자가 점유·사용하였더라도 이로 인하여 다른 구분소유자에게 차임 상당 이익을 상실하는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반대의견 있음).


(3) 분석
대상판결은 종래 판례를 변경하고 공용부분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인정하였다. 이 사건에서는 여러 부당이득 유형 중 침해부당이득이 문제된다. 침해부당이득에서의 손해는 배타적으로 할당된 법적 이익의 침해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침해 상태는 그 자체로 손해를 구성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침해부당이득에서 이득과 손해는 동전의 양면 또는 물체와 그 거울상(mirror image)의 관계에 있다. 집합건물도 마찬가지이다. 집합건물 구분소유자들은 공용부분을 공유한다. 공유도 물건을 사용·수익·처분할 수 있는 소유권의 속성을 지닌다. 따라서 공용부분 공유자들은 그 부분을 그 용도에 따라 사용할 수 있고(집합건물법 제11조) 규약에 달리 정한 바가 없으면 그 지분비율에 따라 공용부분에서 생기는 이익을 취득한다(집합건물법 제17조). 그런데 공유자 중 1인이 공용부분을 배타적으로 무단사용하면 그 범위에서 다른 공유자들에게 할당된 법적 이익으로서의 사용·수익권이 그 무단사용 공유자에게 귀속되는 듯한 왜곡 상태가 발생하고 이로써 다른 공유자들의 사용·수익권이 침해된다. 이러한 상태는 곧 부당이득법상 손해를 구성한다. 다른 공유자들에게 실제로 손해가 발생하였는지, 목적물을 제3자에게 임대하여 차임을 얻을 수 있었는지를 별도로 따질 필요가 없다. 대상판결은 부당이득의 성립요건인 손해의 의미를 좀더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규명하면서 특히 유형론의 연장선상에서 침해부당이득의 본질을 더욱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판결이다. 다만 반대의견이 제기한 세세한 문제점들 가령 공용부분의 사용·수익권 침해에 따른 부당이득액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 관리단과 구분소유자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의 상호관계가 무엇인지 등은 향후 판례의 축적을 통하여 더욱 명확히 해야 할 부분이다.


3. 해군본부 게시판 항의글 삭제에 따른 배상책임(대법원 2020. 6. 4. 선고 2015다233807 판결)
(1) 사실관계

정부의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에 관해 야당과 시민단체 등이 반대하던 중 그 반대운동의 일환으로 원고들을 비롯한 다수인은 해군본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해군기지 사업 중단을 요청하는 취지의 유사한 글들을 하루에 100여건 이상 게재하였다. 해군본부 담당자는 이처럼 유사한 내용의 항의글들이 '해군 인터넷 홈페이지 운영규정'의 삭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아 임의로 이를 삭제하였다. 원고들은 표현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대한민국을 피고로 하여 국가배상을 청구하였다.

 
(2) 판결 요지
일반적으로 국가기관이 자신이 관리·운영하는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에 대하여 정부의 정책에 찬성하는 내용인지, 반대하는 내용인지에 따라 선별적으로 삭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배치되므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원고들이 작성한 항의글은 군의 정치적 중립성 요청에 따라 이 사건 운영규정에서 정한 게시글 삭제사유인 '정치적 목적이나 성향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자유게시판의 일반적인 존재 목적, 기능, 게시판 운영 원칙의 삭제 사유, 이 사건 사업에 대한 결정 주체 및 다른 게시글의 방해효과 등과 아울러 해군본부에게 게시물을 영구히 또는 일정 기간 보존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는 볼 수 없는 점, 이 사건 삭제 조치는 표현행위 자체를 금지하거나 제재한 것이 아니라 결과물을 삭제한 것일 뿐이고 삭제 이유를 밝히는 입장문도 공개적으로 게시하는 등 반대의견 표명을 억압하거나 여론을 호도·조작하려는 시도로 볼 수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삭제 조치의 경우에는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위법한 직무집행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3) 분석
대상판결은 국가기관의 자유게시판에 게재한 글을 행정규칙인 운영규정에 따라 삭제하는 것이 위법한 직무집행인지를 다루었다. 우선 대법원은 운영규정상 삭제 사유인 '정치적 목적이나 성향이 있는 경우'는 군의 정치적 중립성 요청을 구체화한 것인데 원고들의 글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가급적 넓게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군의 정치적 중립성 요청은 군에게 요구되는 것이지 국민의 정치적 표현을 막는 근거가 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어떤 글이 정치적 목적이나 성향을 띠는지 구별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이를 심사하여 삭제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군의 정치적 목적이나 성향이 나타날 우려도 있다. 그것이야말로 군의 정치적 중립을 해치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정치적 목적이나 성향이 있는 경우'를 게시글 삭제 사유로 삼은 운영규정이 적절한지 의문스럽다. 한편 대법원은 이 사건 사업의 시행 여부를 결정할 권한은 국방부장관에게 있으므로 이 사건 사업 시행에 항의하더라도 국방부장관이나 국무총리 또는 대통령에게 하는 것이 적절하지 결정권이 없는 해군본부나 그 기관장인 해군참모총장에게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국민이 해군기지 건설사업에 대한 의견을 해군 자유게시판에 개진하는 것은 적절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이 사건에서는 게시글의 내용이 아니라 게시 방법 및 그 방법이 게시판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 국가기관이 운영하는 게시판은 공공재이고 그 게시판을 수많은 글로 뒤덮어 사실상 사유화하는 행위는 합리적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 행위는 자신의 표현의 자유를 만족시킬지는 몰라도 다른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실질적으로 무력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기관은 애당초 자유게시판을 개설하지 않을 수도 있고 개설 후에 폐쇄할 수도 있으며, 게시판 용도를 정할 수도 있다. 게시글을 영구적으로 보존할 의무도 없다. 그러므로 게시글의 내용이 아닌 게시판 용도, 게시 방법 등에 대한 합리적 규제는 허용되어야 한다. 만약 게시판을 개설하는 순간 표현의 자유 때문에 이러한 조치를 전혀 취할 수 없게 된다면 국가기관은 아예 게시판을 개설하지 않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궁극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더욱 좁히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원고들에게는 위와 같은 주장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되거나 공개된 다른 장소나 방법들을 활용하여 표현의 자유를 개진할 수 있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사건 운영규정에는 동일인 또는 동일 내용의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는 근거가 있었고 해군본부의 항의글 삭제는 여기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요컨대 항의글을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처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지 않으나 적어도 위와 같은 조치가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국가배상책임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4. 약가 인하와 불법행위(대법원 2020. 11. 26. 선고 2018다221676 판결)
(1) 사실관계

원고는 A 회사의 자회사로서 A 회사의 특허의약품을 국내에서 독점판매하고 있었다. 그 특허의약품은 건강보험공단의 요양급여대상으로서 판매제품의 약가 일부를 공단으로부터 지급받고 있었다. 한편 피고는 국내 제약회사로서 위 특허의약품의 특허 만료 후 복제의약품을 판매하겠다고 신청하여 보건복지부장관 고시로 요양급여대상 결정을 받았다. 그런데 특허법원이 위 특허의 진보성 결여를 이유로 특허무효판결을 선고하자 피고는 그 판결이 상고로 미확정인 상태에서 위 복제의약품을 즉시 판매하겠다고 신청한 뒤 그 국내 판매를 시작하였다. 이처럼 복제의약품이 시장에 진입함에 따라 관련 규정 및 지침에 의거하여 보건복지부장관의 고시로 위 특허의약품의 약가가 20% 인하되었다. 그 후 대법원이 특허법원의 판결을 파기하여 결국 특허는 유효로 확정되었다. 그러자 원고는 피고가 특허기간 중에 복제의약품을 판매함으로써 공단으로부터 받는 약가가 인하되어 영업이익이 상실되었다며 피고를 상대로 그 상당액의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다.

 
(2) 판결 요지
대법원은 원고의 독점적 통상실시권을 부정하는 한편 피고의 판매예정시기 변경신청은 제도적으로 허용된 적법한 행위인 점, 원고 제품의 약가 인하는 보건복지부장관의 고시를 통해 결정되었던 점, 그러한 고시가 위법한 처분이라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점, 약가 인하로 입게 된 원고의 불이익은 이러한 제도를 채택한 결과에 따라 불가피하게 발생한 것인 점 등의 이유를 들어 피고 행위의 위법성이나 피고의 행위와 원고 제품의 약가 인하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도 부정하였다.

 
(3) 분석
대상판결은 피고의 행위가 위법성과 인과관계 등 불법행위 성립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든다. 이 사건에서 피고는 특허기간 중에 타인의 특허를 침해하여 복제의약품을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므로 피고는 그 특허침해행위로 인하여 특허권자가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또한 원고가 그 특허품의 국내 독점판매권 또는 이에 준하는 영업권을 가진 자였다면 피고의 위법한 특허침해행위로 인해 원고가 입은 손해도 배상해야 마땅하다. 대상판결은 원고의 불이익은 약가 인하 제도를 채택한 결과에 따른 것이므로 원고가 원고 제품의 상한금액에 관하여 갖는 이익은 이러한 제도의 테두리 내에서 보호될 수 있을 뿐이고 그 제도에서 정한 절차에 따른 결과가 원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더라도 이를 피고의 책임으로 돌릴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약가 인하 제도는 적정한 약가를 설정함으로써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건전화하여 원활한 요양급여를 지속적으로 보장하는 목적을 가진 제도일 뿐 사인(私人) 간의 특허침해 및 관련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문제까지 규율하는 제도는 아니다. 보건복지부장관은 약가 인하 시 특허분쟁 관련 소명을 받기는 하나 특허침해에 대한 심리나 판단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제도는 이러한 손해배상 문제는 특허법 또는 민법에 따라 그들 간에 별도로 또는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 해결해야 함을 전제로 설계된 것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장관이 약가 인하를 시행한 후 제네릭의약품이 특허침해제품으로 밝혀지면 그때부터 인하된 상한금액을 본래의 금액으로 회복하나 인하 시점부터 회복 시점까지 인하로 입은 손해를 회복해 주지는 않는다. 이 부분의 손해는 민사법리에 따라 별도 민사소송에서 회복되어야 한다.

 
대상판결에서는 피고의 복제의약품 판매와 원고의 손해 사이에 보건복지부장관 고시가 개재되었다는 점이 위법성이나 인과관계 판단에 중요하게 고려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전처분이나 판결·행정작용 등이 중간에 개입되더라도 불법행위가 인정된 사례들은 많다. 제약회사인 피고는 자신이 복제의약품의 판매예정시기를 앞당겨 시장에 이를 조기출시하면 원고의 특허의약품 약가가 거의 자동적으로 인하되리라는 점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피고가 이러한 사태를 유발한 측면도 있다. 이 경우 자신이 유발한 보건복지부장관 고시를 방패삼아 자신의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특허권을 침해한 것으로 밝혀진 피고의 행위에 위법성이 없다거나 그 행위와 원고의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한 대상판결에는 찬성하기 어렵다. 대상판결은 유효성 분쟁 중인 특허 때문에 복제의약품의 시장 진입이 늦어지면 국민건강보험은 특허의약품에 고가의 약가를 상환해야 하고 국민들도 복제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이 저하된다는 점을 고려한 판결로 이해되나 위와 같은 공익이 특허침해의 토대 위에서 구현되어서는 안 된다. 특허 제도를 인정하는 이상 특허가 무효라고 믿고 무단으로 특허 발명을 이용하는 자는 자신의 위험 부담 아래 그렇게 하는 것이고 사후에 특허침해로 밝혀진 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은 부담하게 하는 것이 맞다. 또한 위와 같은 복제의약품의 조기 개발과 시장 진입이 가지는 공익이 그토록 크다면 이는 별도 입법을 통해 반영해야 한다.


5. 사정변경과 임대차계약의 해지(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다254846 판결)
(1) 사실관계

원고는 주택건설사업에 필요한 견본주택 건축을 위해 피고로부터 토지를 임차하였다. 특약사항으로 견본주택 건축이 임대차 목적이라는 점, 피고는 인허가 관련 서류를 제공한다는 점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견본주택 건축신고가 반려되어 견본주택 건축이 어려워졌다. 그러자 원고는 착오·약정해지·사정변경 등을 주장하며 이미 지급한 보증금 및 1년 차임의 반환을 구하였다.

 
(2) 판결 요지
대법원은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고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예견할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하여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있다는 종래 법리를 재확인한 뒤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인정한 원심법원의 판단을 그대로 수긍하였다.

 
(3) 분석
대상판결은 공간된 판결 중에는 고유한 의미의 사정변경 원칙을 실제로 적용하여 계약 해지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다. 사정변경 원칙은 당사자 간에 계약으로 배분되지 않은 현저한 사정변경 위험을 사후적으로 배분하는 원칙으로서 판례에 의해 승인되어 왔다. 그러나 실제로 사정변경원칙을 적용하여 계약 해제나 해지를 인정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한 점에서 사정변경 원칙을 적용한 원심판결을 수긍한 대상판결은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판례 법리에 따르면 사정변경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된 것을 넘어서서 당사자가 이러한 사정변경을 계약 성립 당시 예견할 수 없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당사자가 인허가를 받지 못하는 사태를 예견할 수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허가 좌절은 일반적으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사건에서 당사자들은 견본주택 건설이 계약 목적이라는 점을 명시하면서 인허가에 관한 특약사항까지 두고 있었다. 따라서 당사자는 인허가가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고 그 인허가 여부는 행정관청에 달려 있으므로 인허가를 못 받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었음을 예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는 사정변경 원칙이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만 보충적 해석을 시도해 볼 수는 있다. 이 사건에서 원고와 피고는 견본주택 건축이 가능하다는 점을 계약의 당연한 전제로 삼았다고 보이나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하여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약정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견본주택 건축이 불허되리라는 점을 알았더라면 위와 같은 사실관계에 비추어 이를 계약의 해지사유로 합의하였을 개연성이 크다. 그렇다면 예견할 수는 있었으나 계약에서 규율하지는 않았던 견본주택 건축 불가능이라는 사태에 관하여 계약의 공백이 존재한다고 보아 당사자의 가정적 의사에 따라 보충적 해석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사정변경 원칙을 적용하지 않고도 대상판결과 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었을 것이다.

 

 

권영준 교수 (서울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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