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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법원행정처

31년 만에 법정 선 형제복지원 피해자… "사회적·시대적 아픔 있는 사건"

대법원, 비상상고 사건 공판기일 진행

미국변호사

"인간의 권리는 평등하다고 했습니다. 물론 박종철군은 대학을 다니는 지성인이고, 저희들은 수용소에 갇힌 부랑인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 모든 것을 알도록 해 줬으면 합니다. 멀쩡했던 사람들 약을 먹이고, 병신이 되게 만들고. 정말 억울합니다."

 

불법감금과 강제노역 등 인권 유린으로 얼룩졌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들이 31년만에 다시 법정에 섰다. 형제복지원의 만행으로 평생을 고통 받았던 피해자들의 한(恨)이 31년만에 해소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15일 숨진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씨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한 비상상고 사건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박정희정권 당시 부산에 설립된 형제복지원은 부랑인 선도 명목으로 내무부(현 안전행정부) 훈령 410호(1987년 폐지)에 따라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운영됐다. 형제복지원은 장애인, 고아 등 3000여명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강제노역과 학대 등을 일삼았다는 의혹을 받는다. 복지원 공식집계로만 500여명 이상이 사망했다. 

 

복지원 원장인 박씨는 특수감금 및 업무상횡령 등 혐의로 기소됐지만, 법원은 횡령 혐의만 인정하고 특수감금죄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훈령에 따라 복지원이 운영됐기 때문에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형법 제20조는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박씨는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뒤 지난 2016년 6월 사망했다.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와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는 2018년 박씨에 대한 당시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상상고를 권고했고,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은 이를 수용해 그해 11월 비상상고 신청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비상상고는 신청기간에 제한이 없고 판결을 받은 자가 사망했을 때도 허용된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과거 대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고경순(48·사법연수원 28기) 대검 공판송무부장은 "형법 제20조에서 정한 '법령에 의한 행위'는 합법·합헌에 따른 것을 의미한다"며 "(훈령은) 신체·거주의 자유를 침해하고, 피해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해 기한 없이 강제수용하게 한 것은 과잉금지 원칙 및 적법절차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해자들 감금이 내부무 훈령에 따라 정당하다고 본 것은 형법 제20조를 잘못 해석·적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피해자측 대리인으로 출석한 박준영(46·35기) 변호사는 "1987년 5월말 형제복지원이 폐쇄되면서 3000명이 넘는 수용자들은 어떠한 사과나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뿔뿔히 흩어졌다"며 "일부는 다른 시설로 보내졌고 새 시설에서 강제노역과 구타에 시달리다 사망했다"고 말했다.

 

이어 "형제복지원에서 풀려난 이들로 인해 부산일대가 부랑인들의 소굴이 됐다는 부정적 여론때문에 피해자들은 피해를 주장하지 못하고 형제복지원 출신임을 감췄다"며 "지워진 피해자들은 우리 주변에서 사라졌고, 일부는 지금도 여전히 장애인수용시설, 정신병원, 노숙인시설 어딘가에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고 사회적,시대적 아픔이 있는 사건"이라며 "대법원으로서도 신중하게 재판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상상고는 대법원에서 단심제로 진행된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과거 판결의 법령위반 사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대법원은 ‘파기’를 선고할 수 있을 뿐 그 효력을 박씨에게 미치게 할 순 없다. 박씨가 이미 사망한 데다, 형사소송법이 피고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변경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원 판결이 파기되면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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