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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법원행정처

“진보색채 강화” “재판제도 개선” 평가 엇갈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3주년… 법조계 시각

미국변호사

'좋은 재판'을 모토로 '사법부 개혁' 기치를 내세운 김명수(61·사법연수원 15기) 대법원장이 25일 취임 3주년을 맞으며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김명수 코트(Court)' 출범 이후 대법원 구성과 전원합의체 판결의 진보 색채가 뚜렷해지고, 경력대등부 신설, 장애인 사법지원 정책 등 다양한 제판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사법행정회의 신설 표류,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외풍 차단, 법원 내부 갈등 해소 등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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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법정에 입장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대법원의 진보 색채가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 대법관 구성-전합 판결 '진보색' 뚜렷 =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대법원 전합 판결의 진보 색채가 짙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백년전쟁 사건이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무효, 산재 유족 특별채용 단체협약 유효 등이 대표적이다. 또 김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이 늘어난 만큼 구성원들의 진보화도 가속되고 있다. 

 

지난 8일 이흥구 대법관이 취임하면서 김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구성하는 대법관 13명 중 진보성향 단체인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 대법관은 절반에 육박하는 6명으로 늘었다. 김 대법원장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초대 회장 등을 지냈다. 박정화·노정희·이흥구 대법관 역시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고, 김상환 대법관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김선수 대법관은 민변 회장 출신이다.

 

다큐 ‘백년전쟁’ 제재 부당

전교조 법외노조통보 무효판결 대표적

 

대법원의 진보적 색채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법원 전합은 지난 달 박근혜정부 당시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인정한 전교조에 법외노조 통보처분을 한 것은 위법해 무효라는 판결을 대법관 10(다수의견)대 2(반대의견)의 의견으로 선고했다(2016두32992). 앞서 8월에는 대법관 11(다수의견)대 2(반대의견)의 의견으로 산업재해로 사망한 근로자의 자녀 등 유족을 특별채용토록 한 단체협약 규정은 유효하다고 판결했다(2016다248998).

 

또 지난해 11월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제재한 조치는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2015두49474). 당시 대법관들은 '백년전쟁'이 공정성·객관성 및 사자(死者) 명예존중 의무를 지켰는지에 대해 7(다수의견)대 6(반대의견)으로 의견이 갈리는 등 첨예한 입장차를 보였다.

 

◇ "재판제도 개선 추진은 긍정적" = 김 대법원장 취임 후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을 제도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제도 개선을 추진한 점은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사법부 관료화의 원인이 된 고법부장판사 승진 제도 폐지 및 경력대등 재판부 시행, 대법원 전합 판결 온라인 생중계, 법관에 대한 변호사 평가 제도화 추진, 판결문 공개범위 확대, 장애인을 위한 각종 사법지원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국회는 지난 3월 고법 재판부(部)에 부장판사를 두도록 한 법원조직법 제27조 2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가결해 고등부장 제도 폐지를 입법화했다. 대법원은 내년 2월 정기인사부터 고법부장판사 직위 폐지 및 윤리감사관 개방직화 등을 시행할 예정이다. 사법부 관료화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 온 고법부장판사 승진 제도가 폐지돼 판사들이 승진에 얽매이지 않게 됨으로써 법관의 독립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승진 제도 폐지 이후 판사들의 근무 의욕 고취를 위한 대안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경력 대등재판부 시행

대법원 전합 온라인 생중계 등 

긍정 평가

 

지난 2019년 2월에는 차관급 예우를 받는 고법부장판사 3명으로만 구성된 '경력대등재판부'가 사법 사상 처음으로 서울고법에 탄생했다. 또 법조경력 15년 이상 부장판사 이상 법관 3명으로 구성된 경력재판부도 확대되고 있다. 경륜있는 중견 법관들이 충실한 심리를 통해 재판의 질을 향상시키고 국민의 권리 보호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김 대법원장은 또 지난 8월 대법원 전합 선고부터 온라인 생중계를 실시하는 등 공개변론이나 1심 중요사건 재판 중계를 확대해 재판의 투명성 제고도 꾀하고 있다.

 

아울러 김 대법원장이 이끄는 사법행정자문회의는 '좋은 재판'을 구현하기 위해 법관에 대한 변호사 평가 도입 및 판결문 공개범위 확대 등을 안건으로 정해 논의 중이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비용 국고부담 실시 등 장애인을 위한 사법지원 정책도 내놨다.


◇ "사법개혁 여전히 미진… 판사들 사기 저하도 문제" =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대법원장의 임기가 절반이 지난 상황이지만 사법개혁은 미진하다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의 진원지로 지목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는 대신 새로운 사법행정기구로 사법행정회의와 법원사무처를 신설하기 위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꺼냈지만, 국회의 무관심 속에 표류 중이다.

 

김 대법원장은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려고 2019년 9월 사법행정자문회의를 출범했지만, 사법부 개혁에 대한 국회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셀프 개혁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 김 대법원장이 사법행정자문회의 의장을 직접 맡아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상고제도 개편 논의 역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김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취임하며 상고제도 개편과 관련해 각계 의견을 두루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지난 1월 사법행정자문회의 산하에 상고제도개선특별위원회를 출범하고 바람직한 상고제도를 연구·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에 접수되는 상고사건이 연간 4만건을 훌쩍 넘는 현실을 고려하면 거북이 걸음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면서 초래된 법원 내부 갈등 심화와 판사들의 사기 저하는 물론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 문화 확산과 고법부장 승진제 폐지 등에 따른 판사들의 업무 의욕 저하도 풀어야 할 숙제다.

 

사법행정회의 신설

법원내부 갈등 해소 등은 

풀어야 할 숙제로

 

실제 2020년 상반기(1~6월) 전국 법원 민·형사 합의부 1심 미제 사건 수가 최근 10년 동안 최대를 기록했다. 민사 본안 합의사건의 미제 사건 수는 5만건을 돌파했고, 형사 합의사건 미제 사건 수는 1만건을 넘었다.

 

최근 정치권이나 여론 등에 의한 잇따른 사법부 독립 침해 우려 상황에 대한 김 대법원장의 결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최근 8.15 광화문 집회를 기점으로 코로나19가 재확산되면서, 집회를 허가한 판사에 대한 해임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또 여당은 감염병예방법상 집회제한이 내려진 지역의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면서 법안 명칭에 해당 집회를 허가한 판사의 이름을 붙였고, 이어 정세균 국무총리가 광복절 집회를 허가한 법원을 비판해 법조계 안팎에서는 사법부에 대한 공격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또 주요사건 재판이나 영장 발부 여부를 둘러싸고도 정치적 진영 논리에 따른 도 넘은 사법부 비난이 이어지면서 법원 안팎의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이를 의식한 듯 지난 11일 제6회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사에서 법원 내부 구성원들에게 "판결에 대한 합리적 비판을 넘어 근거 없는 비난이나 공격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으로 재판에 더욱 집중해, 재판을 통해 우리 사회의 핵심 가치가 수호되고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아쉽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 부장판사는 "정치권 등의 도 넘은 사법부 독립 침해 시도에 대법원장이 내부 구성원들에게만 재판에 집중하라고 얘기하고, 외부에는 이렇다할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은 크게 아쉬운 대목"이라며 "보다 적극적으로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지 말 것을 요구하거나 유감을 표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법원 내부 구성원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고법부장판사, (지법)부장판사, 평판사로 이어지는 세대별 구조에서 판사들 사이에 소통이 사라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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