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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법원행정처

美 연방대법원 대법관 '이념지형' 어떻게 바뀔까

긴즈버그 대법관 별세… 후임 인선에 이목 집중

미국변호사

"'대법원에 여성이 몇 명이나 있어야 충분할까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9명 전원'이라고 대답하면 사람들은 놀란다. 하지만 전원이 남성일 때에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루즈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진보·여성운동의 아이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이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18일(현지시각) 미국 연방대법원에 따르면 긴즈버그 대법관이 췌장암 전이에 따른 합병증으로 워싱턴에 있는 자택에서 별세했다. 미국 대선을 약 6주 정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긴즈버그 대법관 후임 인선이 연방대법원의 이념 지형을 바꿔놓을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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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5일 우리 대법원 초청으로 방한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운데) 대법관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강당에서 김소영(55·사법연수원 19기·왼쪽) 대법관과 대담 형식으로 강연하고 있다.

 

◇ '루즈 베이더 긴즈버그'는 누구 = 긴즈버그 대법관은 1933년 한 유대계 집안의 둘째 딸로 태어나 코넬대를 거쳐 1956년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했다. 당시 하버드 로스쿨에는 전체 학생 500명 중 여학생이 긴즈버그 대법관을 포함해 9명 뿐이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로스쿨을 졸업한 그는 이후 럿거스 대학 법학교수,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 미국 연방항소법원 판사 등을 역임하고 빌 클린턴 정권 시절인 1993년 미국 역사상 여성으로서는 두번째로 연방대법관에 임명돼 27년간 일해왔다.


美 여성 연방대법관으로 두 번째

 27년간 '진보의 아이콘'

 

긴즈버그 대법관의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온 것은 1999년 대장암이 발병하면서다. 화학치료로 대장암을 이겨낸 듯 싶었으나 2009년에는 췌장암이 발병해 수술을 받아야 했고 2018년 폐암, 2019년 췌장암 등 모두 5차례나 암과 싸웠다. 고령의 나이에 암 투병을 하면서도 그는 연방대법관 자리를 내려놓지 않았다. 연방대법원이 보수 5, 진보 4로 나뉜 상황에서 그가 종신직인 연방대법관 자리를 건강을 이유로 퇴임하는 경우, 대법원 이념 지형이 보수 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다수 의견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은 긴즈버그 대법관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추앙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를 '노토리어스 B.I.G'라는 랩퍼의 이름을 차용해 '노토리어스 R.B.G(긴즈버그 이름의 첫글자 모음)'라 부르며 응원했다. 2018년에는 긴즈버그 대법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가, 지난해에는 긴즈버그 대법관이 변호사 시절 성차별적 관행을 깨뜨린 판결을 받아 낸 사건을 다룬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이 개봉해 국내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여성 성차별 시정 

'소수의견 대변인' 역할도 톡톡히

 

◇ "나는 반대한다"… 세상을 바꾼 '소수의견' = 긴즈버그 대법관은 변호사로서, 그리고 대법관으로서 일생 동안 여성·이민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판결을 이끌고, 사법부 유리천장을 깨뜨리는데도 상징적 역할을 했다. 또 성소수자나 인종차별 문제에서 이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내며 기꺼이 '소수의견'의 편에 섰다. 

 

그는 첫 직장이었던 럿거스 대학 법대에서 교수로서 '여성과 법'이라는 수업을 개설하고, 여성 교수들의 월급이 남성 동료들보다 낮다는 사실을 알고 '동일 임금' 운동에 나서 여성 교직원들의 급여인상을 이뤄내며 여권 신장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2년에는 여성 최초로 모교인 컬럼비아대 로스쿨의 교수가 됐다.

 

인권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의 여성 인권운동 프로젝트에서는 수석 변호사를 맡아 각종 소송을 주도하며 성불평등에 관한 판례를 바꾸기도 했다. 1973년 긴즈버그 대법관은 '샤론 프론티에로 소송'을 맡아 연방대법원에서 처음으로 구두변론을 진행했다. 샤론 프론티에로가 '여군'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성 동료들과 같은 주거, 의료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자 소송을 낸 사건이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샤론 프론티에로를 대변해 9명의 남성 대법관들을 상대로 변론을 펼쳐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았다. 

 

긴즈버그 대법관 생존시

 보수 5명, 진보 4명으로 분류

 

비혼 남성이 혼자 어머니를 돌보고 있을 경우에는 여성이 돌볼 때와 달리 간병인 비용에 대한 세금 공제를 받지 못하는 사건에서는 남성을 변호해 최초로 성별에 의한 차별이 위헌임을 공표하는 판결을 받아냈다.

 

연방대법관이 된 뒤에도 성차별적인 관행들을 바꿔나갔다. 대표적으로 157년간 남성 생도의 입학만 허용하던 버지니아군사학교의 여성 입학 불허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며 교육에 있어서의 차별을 시정했고, 여성의 결정권을 존중하는 낙태를 옹호했다.

 

'소수의견 대변인'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2013년 '셸비 카운티 대 홀더'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이 5대 4로 소수인종에 대한 참정권 차별 감시를 위해 만들어진 법률인 '투표권법'을 무효화하는 결정을 내리자 "투표 과정에서 인종차별은 여전히 존재하는데 오늘 판결은 폭풍이 몰아치는데도 우산을 버린 꼴"이라며 분노를 담은 소수의견을 낭독했다. 또 연방대법원이 남녀 임금차별 문제를 소급해서 소송할 수 없다고 판결을 내리자, 강한 반대의견을 내고 의회가 소송 시점 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의 '릴리 레드베터 법'이라 불리는 공정임금법을 통과시키도록 촉구했다.

 

보수 우위지만 

로버츠 대법원장 "진보 지지" 이변 만들어

 

◇ 후임 인선에 관심…연방대법원, '보수 우위' 점하나 = 긴즈버그 대법관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 전역에서 애도의 물결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후임 선정을 놓고 보수파인 공화당과 진보파인 민주당의 팽팽한 '기싸움'이 시작됐다. 미국 연방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 인준만 받으면 건강 등의 이유로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한 평생 동안 일할 수 있는 종신직이기 때문에 긴즈버그 대법관의 후임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사법부의 이념 지형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긴즈버그 대법관의 사망 전 9명인 연방대법관은 그 동안 보수 5명, 진보 4명으로 분류됐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해 새뮤얼 엘리토, 클래런스 토머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임명한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등 5명의 대법관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반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스티븐 브라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 4명은 진보 성향으로 평가 받는다.


트럼프

대전 前 후임 지명 공언   

 보수 경향 판사 유력

 

대법원에서 보수 성향이 우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긴즈버그 대법관의 후임 인선에 미국 정계가 주목을 하고 있는 이유는 로버츠 대법원장 때문이다. 그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추진하던 건강보험개혁법인 '오바마케어' 등 보수와 진보의 견해가 팽팽하게 맞서는 사안에서 연이어 진보 진영의 손을 들어주며 '이변'을 만들어냈다.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후임으로 보수 성향의 대법관을 지명하고 공화당이 53명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원에서 인준을 받게 되면 연방대법원의 이념 지형은 보수 진영 쪽으로 다시 추(錘)가 기울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기자들과 만나 "다음 주에 대법관 후보를 지명할 것이다. 아주 재능있고 훌륭한 여성이 될 것"이라며 오는 11월 3일 대선 전에 후임 인선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염두에 두고 있는 후보자들로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낙태 반대론자로 유명한 에이미 코니 배럿 제7연방고등법원 판사와 바버라 라고아 제11연방고법 판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번 후임 인선이 이민정책, 낙태할 권리, 성소수자 권리 등 보수와 진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미국 내 중요한 사회적 논쟁들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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