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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판례

국제형사재판소 '성노예'에 관한 첫 유죄판결 선고

- 같은 부대에 소속된 아동병사를 성노예로 삼은 것도 전쟁범죄 해당 -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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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

2019년 7월 8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소재한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에서 국제재판소 역사상 처음으로 성노예로 인한 전쟁범죄에 대한 유죄판결이 선고되었다. 역사에 걸쳐 종군 성노예는 만연하게 존재해 왔으나 국제법에서는 이에 대하여 침묵해 왔으며 가해자에 대한 책임규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1998년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Rome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이 역사상 처음으로 강간·강제매춘·강제임신 등과 함께 성노예를 인도에 반한 죄뿐만 아니라 전쟁범죄를 구성할 수 있는 범죄로 규정하였고 이에 따라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 가능성에 대한 기대는 높아져 갔다. 마침내 2019년 7월 국제형사재판소 1심 재판부는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전 반군 지도자 보스코 은타간다(Bosco Ntaganda)에 대하여 2002~2003년 콩고 이투리 지역에서 발생한 강간 및 성노예 등으로 인한 전쟁범죄와 인도에 반한 죄에 대한 유죄를 선고하였는데, 여기에 산하 반군단체의 지휘관과 병사들이 같은 부대에 소속된 15세 미만의 아동병사(child soldier, 소년병과 소녀병)를 성노예로 삼은 행위에 대한 책임도 포함되었다. 


은타간다 사건에서 국제적 관심을 끈 주요 쟁점 중 하나는 성노예 피해자가 가해자와 같은 집단에 속한 병사인 경우에도 전쟁범죄가 성립될 수 있는가였다. 국제형사법상 전쟁범죄는 국제인도법의 중대한 위반행위를 의미하며 국제인도법은 전시 상황에서 피아(彼我)의 구별을 전제로 한 상호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기에 기본적으로 적군의 군인 및 적대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자를 보호대상으로 한다. 즉 가해자와 같은 집단에 속한 전투원에 대한 전쟁범죄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 기존의 통설이다. 그런데 세계 각지의 무력충돌에 동반된 성노예의 실상은 같은 집단에 속한 부대원 중 취약계층(주로 여성과 아동)을 상대로도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기존의 법리가 실제 벌어지는 범죄를 포괄해내지 못하는 측면이 있었다. 우리와 가까운 예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수많은 한국 여성들이 일본에 의한 종군 성노예제의 피해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종군 위안부를 대상으로 한 전쟁범죄 성립 가능성에 대한 기존 논의들이 일본군 점령지역에서의 전시 성폭력과 달리 전개된 측면이 있었던 것은 당시 서구 중심의 국제법의 주류적 견해가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보면서 한국인 피해자는 가해 집단에 속한 것으로 간주하였던 것이 배경으로 작용하였음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은타간다 사건의 재판 진행 단계별로 국제형사재판소의 각 재판부는 모두 전시 성노예의 주요 피해자 집단인 아동과 여성에 대한 특별한 보호를 강조하면서 같은 부대에 소속된 아동병사를 성노예로 삼은 것도 전쟁범죄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렸는데 각 재판부가 채택한 해석법 및 논증은 다소 상이한 측면이 있었기에 그 함의 및 타당성에 대한 국제적 담론이 따랐다. 이하에서는 각 재판부가 선고한 주요 결정을 살펴본다.


2. 주요 결정
(1) 전심 재판부(Pre-Trial Chamber), 공소사실 확인결정(2014년 6월 9일)

국제형사재판소의 특수한 절차로 전심재판부에 의한 재판 전 공소사실 확인절차를 들 수 있다. 2014년 6월 9일 전심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성노예 등으로 인한 전쟁범죄 등 혐의에 대한 공소사실 확인결정을 만장일치로 내려 피고인 측에서 제기한 관할권에 대한 항변을 배척하였다. 전심재판부는 아동병사들이 노예 상태에서 '성행위의 대상이 된 그 특정 시점'에 한정해서만 이들이 적대행위에 직접적·적극적으로 가담하였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즉 국제인도법에 따른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적대행위에 직접적·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은 자일 것이 요구되는데 이 사건에서 아동병사들이 처한 강압적 환경과 노예 상태를 고려할 때 아동병사들이 성행위에 종사한 그 특정 시점에는 적대행위에 직접적·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국제인도법상 보호대상자에 포섭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논리는 기존 국제인도법의 법리 내에서 이 사건의 피해자 유형을 포섭해 내는 현명한 해석이라는 평가를 받은 한편 사실상 강압적으로 노예상태에 처한 아동병사에 대하여 어떤 경우에는 적대행위에 직접적·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는 이유로 보호지위를 박탈하고 또 다른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이유로 보호지위를 유지해주는 것이 정당한지 또한 그러한 구별이 사실상 가능한지 의문을 남겼다.


(2) 1심 재판부(Trial Chamber), 관할권 항변에 관한 두 번째 결정(2017년 1월 4일)
이후 1심 재판부는 피고인 측이 제기한 관할권에 대한 항변을 재차 배척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전심 재판부와 달리 기존 국제인도법상 요구되어 온 피해자 자격요건이 국제형사재판소의 관할범죄인 성노예로 인한 전쟁범죄 요건에 아예 포섭되지 않는다는 획기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를 위해 재판부는 로마규정과 확립된 국제법 체제로부터 성노예로 인한 전쟁범죄의 피해자에 대한 자격요건을 도출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였다. 먼저 로마규정에 대하여서는 성노예로 인한 전쟁범죄에 대하여 정하고 있는 로마규정의 문언이{제8조(2)(b)(xxii) 및 제8조(2)(e)(vi)} 피해자를 제네바협약상 '보호대상자' 내지 '적대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은 자'로 명시하고 있지 않은 것이 주요 근거로 제시되었다. 그런데 로마규정 문언은 '확립된 국제법 체제 내에서' 국제적·비국제적 무력충돌에 적용되는 법과 관습에 대한 중대한 위반으로서 자행된 성노예가 전쟁범죄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므로 로마규정을 넘어선 보다 광의의 국제법 체제로부터 성노예로 인한 전쟁범죄 피해자의 자격요건을 도출할 수 있는지도 판단하였다. 재판부는 제네바협약과 추가의정서 등 주요 국제인도법 문서에 대한 목적론적 해석법을 바탕으로 국제재판소 판례, 마르텐스 조항(법규의 부존재를 이유로 비인도적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조항), 국제적십자사의 주석서, 국제법상 강행규범 등에 관한 국제문서를 폭넓게 검토하였는데 확립된 국제법 체제로부터 금지된 전시 성폭력의 피해자 자격을 전투력을 상실한 적군의 군인이나 적대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는 자로 제한하는 요건을 도출할 수 없으며 그러한 제한을 허용하는 것이 오히려 국제인도법의 목적에 위배된다는 해석을 하였다. 


(3) 항소심 재판부(Appeals Chamber), 관할권 항변에 대한 항소심 판결(2017년 6월 15일)

국제형사재판소 항소심 재판부는 재판절차 진행 중에도 다른 재판부가 내린 다양한 결정에서의 실체법·절차법·증거법적 쟁점들에 대한 항소에 대하여도 판단한다. 2017년 6월 15일 항소심 재판부는 상기한 1심 재판부의 결론 및 로마규정의 문언적 해석에 바탕을 둔 주요 논증을 확정하면서 '확립된 국제법 체제'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해석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분석을 하였다. 재판부는 먼저 기존 국제인도법에서 같은 무장단체에 소속된 병사를 상대로 저지른 성노예 범죄 등을 절대적으로 법의 보호로부터 배제시키는 일반규칙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반면 성노예 등 전시 성폭력 금지는 국제인도법에서 오히려 명확하게 확립되었음을 강조하면서 이렇듯 기존 국제인도법에서 확립된 전시 성폭력 금지 원칙은 피해자의 자격을 제한하고 있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즉 로마규정과 확립된 국제법 체제 모두에 따라 성노예로 인한 전쟁범죄의 피해자에게 요구되는 자격요건은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 항소심 판결은 이후 2019년에 1심 재판부가 선고한 유죄판결의 바탕이 되었고 2019년 11월 7일 은타간다는 징역 30년형을 선고받았다.


3. 함의

국제형사재판소의 각 재판부의 결정·판결이 선고될 때마다 전문가들 사이에 상반된 평가가 쏟아졌다. 인권단체들은 전반적으로 재판부가 취한 피해자 중심적인 접근법을 높이 칭송하였는데, 특히 '젠더 정의를 위한 여성 이니셔티브'는 위 판결을 '국제인도법 120년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라고 평가하였다. 그렇지만 1심 재판부와 항소심 재판부가 취한 해석법 및 논증이 국제인도법상 확립되지 않은 보호대상자에 대한 행위도 전쟁범죄를 구성할 수 있다는 법리를 창조한 것과 다름이 없으며 이는 국제인도법의 기본원칙과 국제형사법상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는 판결로서 사법 적극주의의 부당한 행사라는 비판적 견해도 따랐다. 위 판결이 논쟁적인 하나의 선례로만 남을지 아니면 새로운 법리 발전의 초석이 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전시 성폭력에 대한 소송절차가 야기하는 새로운 질문에 대하여 다양한 재판부가 대답해가는 역동적 과정이 전시 성폭력에 관한 국제형사규범의 발전을 선도하는 방향이기를 궁극적으로 범죄 종식과 예방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이혜영 연구위원(사법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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