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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법원, 특허법원

‘언택트 시대’ 대안 ‘영상재판’… 한국은 아직 초보 단계

권순형 서울고법 부장판사 워크숍서 주제 발표

미국변호사

"부드러운 단색 옷을 입으세요." "말할 때는 화면이 아닌 웹캠을 봐야 합니다." "카메라를 눈높이보다 약간 높은 곳에 배치하세요." 

 

미국 텍사스주 법원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는 '성공적인 영상 재판을 위한 팁'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해외 각국의 법정 풍경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배심원 선정 절차(미국)는 물론 사형 선고(싱가포르)까지 영상재판을 통해 진행하는 나라들이 생겨나고 있다. 전대미문의 전염병으로 '언택트(untact)'가 지구촌 뉴노멀(New Nomal, 새로운 표준)로 떠오른 시대,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가 법조계가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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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주 항소법원에서 영상재판을 통해 대리인들이 구두변론을 하고 있다. 뉴욕주 항소법원 홈페이지에서는 구두변론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과거 진행된 변론 동영상도 시청이 가능하다.

  

◇ 코로나 시대, 영상재판과 우리 법원의 미래는 = 최근 권순형(53·사법연수원 22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영상재판과 전자소송 및 법원의 미래를' 주제로 발표했다. 서울고법(원장 김창보)이 영상재판을 주제로 개최한 재판장 워크숍에서다. 권 부장판사는 올 3월 판사실에서 처음으로 민사 변론준비절차를 진행, 원격영상재판을 실시한 전문가다. 

 

권 부장판사는 "코로나19 감염의 사전 예방책으로 평소 법정 출석을 최소화하는 재판 운영이 필요하고, 일부 감염자 발생 시 해결방안으로 법정재판을 다소라도 보완할 수 있는 재판 방식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영상재판이 제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뚜렷한 법적근거 규정 없이 

민사소송규칙에 따라 진행

 

그는 "영상통화 방식의 변론준비기일을 통해 증인신문 외에 나머지 절차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법정 출석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만약 법정재판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막연히 재판을 연기하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영상재판을 통해 각종 심리를 지체없이 진행해 변론종결이 가능하도록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영상재판의 활성화로 변론준비절차가 충실하게 이뤄진다면 자연스럽게 변론기일에 집중심리가 이뤄지게 되므로, 법원 및 당사자 모두에게 바람직하다"며 "처음부터 사건을 심리하고 각종 증거조사를 진행해야 하는 1심보다, 1심의 판단을 기초로 특정 쟁점에 관한 주장·공방 위주로 진행되는 항소심 심리과정에서 영상재판을 활용하는 것이 보다 적합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영상재판이 코로나19 시대를 헤쳐나갈 중요한 키(Key)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증인 등 법원출석 최소화

 

◇ 이미 '인터넷 법원'까지 설립한 中… 美·英·獨 등도 영상재판 = 현재 영상재판의 선두 주자는 중국이다. 중국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이미 인터넷 법원을 설립해 영상재판을 시작했다. 2017년 8월 항저우를 시작으로 베이징, 광저우에도 인터넷 법원이 설립됐다. 

 

인터넷 법원은 인터넷 상거래 관련 사건 등을 전속적으로 관할하고 영상재판을 통해 재판을 진행하도록 했는데,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일반 법원에서도 민·형사 사건에 관계 없이 이 영상재판 방식을 원용했다.

 

중국은 ‘인터넷 법원’ 설립

 

미국에서도 코로나19를 계기로 영상재판이 활성화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 3월 코로나19가 창궐하자 역사상 최대규모의 경기부양 법안인 '코로나바이러스 지원·구제·경제안정을 위한 법안(The coronavirus Aid, Relief, and Economic Security Act)'을 마련해 시행했다. 

 

영상재판 때 마다 

통신장비 점검 등 확인 절차도 복잡

 

이 법안에는 형사재판에 영상재판을 허용하면서 그 절차적 요건을 규정한 내용들이 포함됐다. 법안은 △미국 연방사법위원회가 비상사태로 연방법원의 기능이 일반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거나 △정상적 재판업무에 지장을 받고 있는 해당 지방법원장은 법무장관의 신청이 있거나 담당 판사의 요청이 있는 경우 △중죄의 경우 대면재판이 공공의 건강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경우 등의 상황에서 영상재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미국 연방법원 행정처는 개정 가이드를 통해 언론과 일반 국민은 코로나 사태 동안 진행되는 영상재판에 접근할 수 있지만, 법정 촬영 및 방송을 금지한 연방형사소송규칙은 그대로 유효하므로 영상재판을 부적절하게 녹화하거나 재방송하는 개인은 처벌될 수 있다고 밝혔다. 

 

영국에서도 3월 '코로나바이러스 법안 2020(Coronavirus Act 2020)'을 시행해 영상 및 음성 재판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영국 대법원은 홈페이지에서 구두변론을 생중계하고 있는데, 대법관들은 자택·사무실에서 가발을 쓰지 않고 법복을 입지 않은 채 재판을 진행한다. 소송대리인도 자택이나 사무실에서 재판에 참여한다. 

 

독일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이미 영상재판 규정을 두고 있었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 이 규정을 활용해 영상재판을 실시하고 있다. 이 밖에 호주와 인도, 싱가포르에서도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영상재판을 확대하고 있다.


영상 증언 신뢰성 보완 필요

 

◇ 우리나라, 'IT 강국 무색' 뚜렷한 법적 근거도 없어 = 하지만 우리나라의 영상재판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변론준비절차를 제외한 변론절차에 대해서는 영상재판과 관련한 뚜렷한 법적 근거규정이 없다. 변론준비절차를 영상재판 방식으로 할 수 있게 한 것도 최근 민사소송규칙 개정에 따른 것이다. 'IT 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한 변호사는 "중국에서는 영상재판으로 1심 판결이 나오는 데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사건이 신속하게 처리되고 있다"며 "우리 법원도 언택트(untact, 비대면) 시대에 맞춰 변론준비절차 등에 한정돼 있는 영상재판 대상을 확대해 당사자의 편의와 신속한 재판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 부장판사는 "현재 외국에서 하고 있는 영상재판은 미국에서는 이미 예전부터 시행 중인 3자간 전화통화 방식의 재판절차 협의의 일종으로 보이기 때문에 획기적인 변화가 온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이조차도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현재의 재판방식은 IT 강국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라고 꼬집었다.

 

변론 준비절차 등에 한정된 영상재판 대상도 

확대 필요

 

영상재판과 관련한 다양한 보완책 마련도 필요하다.

 

실제 영상재판을 진행해 본 한 판사는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거나 더 심해진다면 영상재판의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다만 판사들이 하루에도 수십 건의 재판을 진행할 때가 많은데, 법정에서 영상재판이 진행된다면 그때마다 통신상태 점검이나 당사자들의 연결상태 등 준비·확인절차가 번거롭기 때문에 실제로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물적·제도적 인프라를 잘 갖추는 등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민사사건은 당사자 개인간의 분쟁이기 때문에 영상재판으로 해도 무방할 것으로 보이지만, 형사사건은 다르게 생각할 부분이 있다"며 "형사재판은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차적 요건을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위증(거짓말)에 대한 인식이 미국 등 해외 선진국에 비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영상재판에서 증언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다양한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제3자가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 할 가능성도 고려돼야 한다"며 "영상재판에 사용되는 스마트 기기 등의 카메라 렌즈에 보이지 않는 사각에서 제3자가 코칭을 하거나, 소송당사자나 증인 등이 누군가로부터 감시나 협박을 받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영상재판은 법원이나 법무법인 등에서 자격 있는 제3자의 참관 하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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